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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에 이어진 지방 순회전시회 이야기

부산전시회 개막식
 부산전시회 개막식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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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신세계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여기서 성공이라는 것은 세 가지 관점에서다. 첫째 문은희가 그 동안 작업해 온 대표적인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둘째 화단에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화가임에도 화단의 원로․중견작가들이 찾아 긍정적인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셋째 언론에서도 문은희의 특별한 재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문은희는 지방전시회를 추진하게 되었다. 지방 화단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 예술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또 문은희는 그 동안 자식들 키우고 작품 활동 하느라 국내를 여행해 본 적이 없었다. 지방전시를 통해 우리나라 산천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첫 지방전시가 1976년 부산에서 열리게 되었다.

문은희가 그린 석불선생 스케치
 문은희가 그린 석불선생 스케치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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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1월 부산호텔 화랑에서 열렸는데, 서울 신세계미술관 전시작품 대부분이 다시 전시되었다. 이때 전시제목은 문은희 동양화․도화(陶畫) 작품전이었다. 개막식에 테이프를 끊은 사람이 박영수 부산시장, 한국미술협회 부산지부 고문 오제봉 화백, 석불 정기호 선생 등이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석불 선생은 동장(銅章)과 서각(書刻) 그리고 전각(篆刻)의 대가로 마산과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서울 전시에 이어 부산전시도 찾아주었다. 석불 선생과의 인연은 그가 돌아가신 1989년까지 계속 되었다.

부산 전시에 이어 마산 전시가 11월 크리스탈호텔 화랑에서 열렸다. 마산전시를 연 것은 크리스탈호텔 사장 부부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마산 전시에 이어 순천 전시가 라이온스회관에서 열렸다. 순천 전시는 남편의 동생뻘 되는 황의빈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황의빈은 대학교 다닐 때 문은희 화백 집에서 기거한 인연이 있다.  

붉은 산은 끓어오르는 정열의 표현이다

산(1976)
 산(1976)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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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문은희작품전 이후에도 문은희는 산수를 즐겨 그렸다. 그런데 이때는 수묵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채색이 두드러진다. 동양적인 기법에 서양적인 채색이 들어가면서 그림이 화려해진다. 그러나 그 채색은 화려함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표현에의 욕구 즉 정열의 표현이었다. 그 때문에 녹색으로 표현되는 산수 대신 붉은색으로 표현되는 산수화를 그린 것이다.

1976년에 그린 산(山)은 서울 북쪽 산의 모습이다. 근경에 등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북악산과 인왕산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경으로 골짜기가 있고, 원경으로 좀 더 높고 긴 산줄기가 있다. 그렇다면 중간의 골짜기는 평창동에 해당하고, 원경의 산줄기는 북한산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은희는 그렇게 상정하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가을(1976)
 가을(1976)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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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문은희의 산수화는 인상주의적이 아니고 표현주의적이다. 늘 보던 대상에 대한 인상보다는 내면을 통해 표출되는 표현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근경에 있는 산은 골산(骨山)이어서 암릉미가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그 바위산을 오르며 자연을 즐긴다. 중경에는 숲이 두드러진다. 원경의 바위산 위로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사실적인 그림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76년에 그린 또 다른 그림 '가을'은 단풍을 화려하게 표현했다. 이 그림에서는 산수보다는 나무가 중심이다. 왼쪽 두 그루는 평지에 위치한다. 왼쪽 나무는 붉은색과 노란색 단풍이고, 오른쪽 나무는 붉은색과 갈색 단풍이다. 이들 오른쪽으로 산지가 있고 그 위에 단풍 든 나무가 또 하나 있다. 면을 삼등분해 각기 다른 나무를 표현해 조화와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점묘가 두드러진 산(1977)
 점묘가 두드러진 산(1977)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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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부터 79년까지 문은희는 산 연작을 그린다. 이들 산은 모두 채색산수도다. 77년의 산 그림은 나뭇잎을 점으로 표현한 것이 두드러진다. 일종의 점묘법으로 문은희의 표현기법 중 하나가 된다. 이 점들은 산수화에서 움직임과 아우성을 표현한다. 그 점이 대부분 수묵이지만, 가끔 채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채색일 경우는 움직임과 아우성이 요란하고 수묵일 경우는 은은하고 묵직하다. 

누드작업의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린 산수화가 있다

산(1984)
 산(1984)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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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이 되면 수묵산수화가 안정되어간다. 점보다는 면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색깔도 초록과 연두가 일부 나타난다. 정열을 상징하는 태양 외에 평화를 상징하는 배가 그림에 표현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산수화에 변화가 생겨남을 알 수 있다. 문은희의 산 그림은 1984년까지 이어진다. 1984년에 그린 산은 가로 500㎝ 세로 140㎝의 대작이다. 산수화에 현대적인 집이 들어간 것이 특별하다.

전체적으로 바위산을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자세히 보면 산을 오른 네 명의 등산객을 볼 수 있다. 나무는 수묵으로 표현하면서, 나뭇잎은 점묘로 표현했다. 특이하게도 바위산 너머로 현대적인 집의 지붕을 빨갛게 표현했다. 그것은 시선을 그곳으로 돌리게 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색감뿐 아니라 사람과 집이라는 대상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근경에 머무르게 된다.

추일서정(1986)
 추일서정(1986)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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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은 1979년부터 시작한 문은희의 누드 스케치가 수묵 누드로 옮겨가는 시기다. 그런데 수묵 누드가 너무 어려워 고통을 겪게 된다. 1986년 문은희는 수묵 누드에 진척이 없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 시기의 고통을 표현한 수묵 산수가 '추일서정(秋日抒情)'이다. 수묵 누드 때문에 절벽을 타고 오르지 못하는 나무에 자신을 비유했다. 그래서 나무는 의지가 꺾인 모습으로 아래로 휘어져 있다.

그 줄기가 가지를 펴고 위를 향한 것은 1987년이다.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온 결과가 1987년 3/4월 조선화랑에서 열린 문은희 누드크로키전이다. 그리고 1989년 6월 일본 도쿄 스트라이프하우스 미술관 초대전 '문은희 수묵화. 나부백태(裸婦百態'로 그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이와사키(岩崎)미술사에서 <문은희 수묵화집 누드백태>가 나온다. 1990년에는 일본에서 발행된 브리태니커 국제연감 미술부문에 그의 수묵 누드가 실릴 정도가 되었다. 

섬 그림에서도 문은희의 정열이 두드러진다

섬(1983)
 섬(1983)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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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그림은 1980년 홍도에 갔다 온 후 그리게 되었다. 당시 광주에 살던 남농 허건 화백의 초대를 받아 남농화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남농선생은 화실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그래서 시간을 내 홍도를 여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곳의 산수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이후 산수화의 한 형태로 섬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섬 그림에서는 소용돌이치는 물결이 포인트다. 그것은 화가의 내면적 감정이 물결의 움직임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문은희의 섬 그림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그려졌으며, 작품은 10여점이다. 이들 섬 그림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배가 다니는 차분한 바다고, 다른 하나는 물결이 노도처럼 솟구치는 성난 바다다. 문은희의 섬 그림은 1983년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1985년 다시 차분해지면서 막을 내린다. 그러므로 차분하게 시작되어 정열적이 되었다가 다시 차분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섬(1983)
 섬(1983)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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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는 섬 그림 중 1983년 그린 물결이 솟구치는 성난 바다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은 물결을 통해 자신의 정열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1983년 그림이 이처럼 정열적이 된 건 자신감의 소산일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녀의 속성 때문일 수도 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늘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문은희의 속성상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을 보면 섬과 섬 사이에서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흘러간다. 그것은 물길이 좁기 때문이기도 하고 바위와 부딪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상이 서로 부딪치고 갈등하는 모습이 그림에 역동성을 더해준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천착이 문은희로 하여금 80년대 중반 이후 정적인 누드를 동적인 누드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수묵 누드(1986)
 수묵 누드(1986)
ⓒ 문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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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의 그림에서 우리는 역동성, 정열, 강렬함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게 그녀의 그림이 갖는 특성이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수묵 산수의 새로운 경지로 넘어가게 한다. 더 나가 수묵 산수의 길을 더 이상 걷지 않고 수묵 누드로 넘어가게 만든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새로운 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의 그림 인생을 되돌아보면 1985년이 또 다른 전환점이다.

그때부터 수묵 누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묵 누드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또 다른 고난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작은 늘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태그:#수묵 산수, #지벙 순회전시회, #붉은 산, #섬 , #수묵 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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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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