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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입법을 하는 곳이지 법을 따르는 곳은 아니다." 이 모순적인 말은 국회 인턴을 취재하며 들은 자조 섞인 얘기입니다. 정부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을 없애기 위한 법을 만드는 공간인 동시에 비정규직인 인턴을 못 본 척 하던 곳이 바로 국회입니다. 많은 인턴들이 보좌관이 되고 싶어 3년이고 4년이고 국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내년 1월 1일이면 2년 이상 근무한 인턴은 국회를 강제로 떠나야 합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오마이뉴스>는 총 4편의 기사를 통해 '국회의 그늘'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편집자말]
'더불어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 일자리를 잃을 국회 인턴은 100여 명에 이른다.
 '더불어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 일자리를 잃을 국회 인턴은 100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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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사무처 통보대로라면, 국회인턴 중 총 2년 이상 재직한 이들은 내년 1월 1일 해고 '디데이'를 맞게 된다. 11개월 쪼개기 꼼수 계약을 여러 차례 감수하며 '백조의 발'을 자처해 온 그들이 지침 하나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관련기사 : "너네 먹고 노는데..." 국회 인턴은 억울합니다).

해법은 이미 다양하게 나와있다. 국회사무처 담당 상임위원회인 운영위에 계류돼 있는 인턴 정규직화 관련 법안만 3개다. 결국 열쇠는 이 법안을 심사하고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국회의원이 쥐고 있다. 이들은 국회 인턴에게 일을 시키는 사용자이기도 하다. 계약 담당 부처인 국회사무처 못지않은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숙고가 필요한 상황"

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이 무색하게도, 책임 당사자들의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알고 있지만 간단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국회의원 보좌직의 추가 고용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김선동 운영위 간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운영위에서는) 이 문제는 더 숙려를 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상태"라면서 "(정규직을 늘리는 문제도) 국민의 이해를 살펴봐야 하는 문제라 일단 보류시키기로 했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운영위원인 강훈식 의원 또한 "이번 일이 인턴이라는 취지에 맞게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면서도 "국회의원으로선 정규직화를 해야 하지만, 저를 돕는 보좌진이라 (입법에)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우려했다.

"다른 사람 머리카락 자르는 일은 언제든 할 수 있어도, 내 머리카락 자르는 일은 쉽지 않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우 원내대표는 관련 문제에 "'비정규직 제로'라는 차원에서 국회 인턴도 정규직화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마땅하다"라면서도 "국회의원 기득권을 강화한다고 보는 비판적 시간도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결정권자들의 고민과 논쟁이 길어질수록, 피결정권자인 국회인턴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내년이면 총 재직 기간 2년이 넘어 해고 대상이 되는 한 인턴은 "넓게 봤을 때 문제를 풀 열쇠는 국회의원들에게 있다"면서도 "하지만 본인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국회 인턴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해돈 전 한국당보좌진협의회장은 "국회가 근로기준법을 입법(立法)하면서도 수법(守法)하지 않는다"면서 "그 중 하나가 인턴 등 비정규직 문제"라고 설명했다. 주 전 회장은 이어 "결국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면) 설득을 구해야 하는 문제"라면서 "지금도 사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무처를 총괄하는 우윤근 국회사무총장 또한 운영위의 입법을 촉구했다. 우 사무총장은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의원들이 마음대로 채용한 사람을 사무처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법적으로 대단히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 사무총장은 또한 "'적법하게 (8급 신설 등 정규직을) 늘리자, 의원들이 법을 통과시켜라' 주장하고 있다"면서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든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방침과 거꾸로... 결국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

불꺼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앞.
 불꺼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앞.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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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 소지가 세다."

다가오는 2018년 1월 1일, 해고 지침이 결국 현실화된다면. 노동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승현 노동법률사무소 시선 노무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인턴인 듯 인턴 아닌' 국회 인턴의 노동 상황을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이름만 인턴이지 인턴이 아닌 것 같다"면서 "특정 의원 밑에서 일하는 보좌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명 부천시비정규직센터장은 국회가 정부 방침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지난 20일, 9개월 이상 상시 지속업무(연중 지속되는 업무. 2년 이상 지속됐고, 앞으로도 지속될 업무)를 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는 무기계약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바 있다"면서 "'재직 2년' 때문에 잘리는 게 아니라,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센터장은 또한 관련 법리에서도 고용주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논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3, 4년 지속적으로 근무하면서 10개월, 11개월씩 쪼개기 계약을 해온 사람들은 그 사용자가 법망을 회피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계약했음을 강조하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다만, "한 사람을 구제하면, 사용자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힘이 더 꼼꼼해진다"면서 "이길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권유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법을 바꾸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소송 등이 단기 처방은 가능할지 몰라도 관련 법안 등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나는 국회의원을 '백조'에 비유한다. 고고하게 물 위에 떠 있는 백조 아래, 열심히 움직이는 발이 보좌진이다. 인턴도 마찬가지다. 인턴이라고 해서, 커피, 복사 심부름만 하는 것이 아니다. 홈페이지 관리, 보도자료 작성, 성명자료, 세미나, 토론회 준비...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주 보좌관이 국회 인턴의 노동 강도를 설명하며 던진 비유다. 이 비유에서 드러나는 것은 책임 주체다. 발을 굴리는 백조 즉,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이 국민여론, 예산 책정 등 해결 방안 도출을 주저하는 사이, 2년 가까이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국회를 떠나지 않은 100여 명의 국회인턴들은 코앞에서 해고를 기다려야 한다.

"일의 업무량은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다.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원한다면 반드시 보좌진 수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국민 여론이 걱정이다. 당장 국회의원 수도 줄이자고 하는 상황이라..."

어렵게 취재에 응한 한 인턴의 말이다. 해고 위기 당사자가 국회의원들의 고민까지 떠안은 상황. 이제 누가 이 고민에 응답해야 할까.


태그:#인턴, #비정규직, #정규직, #국회,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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