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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론에는 소위 '중앙'이라는 '서울발' 기사만 차고 넘칠 뿐 내가 사는 곳을 다룬 기사는 찾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역이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지역 시민기자를 만나러 가면서 해당 지역 뉴스를 다룹니다. 첫 행선지는 대구입니다. [편집자말] [편집자말]
'낙동강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와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 등 '낙동에 살어리랏다' <오마이뉴스> 탐사보도팀이 지난 2015년 8월 25일 오전 4대강사업 후 지천에서 흘러드는 모래로 강바닥이 높아진 현장을 탐사하기 위해 투명보트를 들고 구미보 하류로 이동하고 있다.
 '낙동강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와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 등 '낙동에 살어리랏다' <오마이뉴스> 탐사보도팀이 지난 2015년 8월 25일 오전 4대강사업 후 지천에서 흘러드는 모래로 강바닥이 높아진 현장을 탐사하기 위해 투명보트를 들고 구미보 하류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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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8년 동안 '이명박 4대강'과 싸워온 두 사람이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죽어가는 금강의 아픔을 기록해 온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 김종술 기자. 또 다른 한 명은 영남인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지키려고 현장에서 기사를 쓴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 정수근 기자(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다.

"정 국장, 아까 내가 갔던 그 '보'가 뭔 '보'여?" (김종술)
"아따, 그것도 모르고 낙동강에 왔어예? 공부 좀 해요. 그러고 무슨 기사를 써!" (정수근)
"허, 참. 이번 취재, 내 드론이 없었으면 말짱 꽝이야. 이거 왜이래." (김종술)
"우리도 조만간 드론 살거라요." (정수근)
"전에는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 눈으로 기사를 썼는데, 요즘 난 새의 눈으로 기사를 써. 하-하." (김종술)

옆에서 보면 유치하기도 하지만, 둘이 만나면 항상 티격태격한다. 이러면서도 얼굴을 붉히지 않는 건, 신뢰한다는 뜻이다. 한 명은 금강에서, 다른 한 명은 낙동강에서 '나홀로 전투'를 치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서로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1일, 대구는 섭씨 37도를 웃돌았다. 사람 체온보다 높았다. 땡볕에 가만히 있는 것조차 짜증스러운데, 두 명의 4대강 독립군은 낙동강에 세운 4대강 댐을 훑었다. <2017 오마이뉴스 전국일주> 대구편을 위한 기획 현장 취재였다.

스마트폰으로 재난문자가 날아오고, 현장에 가면 "집으로 돌아가 냉방기를 켜놓고 쉬라"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김 기자는 녹조물을 채운 영주댐 앞에서 얼마 전에 산 드론을 날리고, 정 기자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가서 삽질을 해 깔따구와 실지렁이를 채취했다. 둘이 만나면 궁시렁거리지만, 현장에서 쏘아올린 기사를 보면 손발이 척척 맞는다.

☞하늘에서 본 영주댐 녹조라떼, 썩은 내 진동
☞낙동강 270km 기록, 녹조·쓰레기·붉은 깔따구
☞ 1조 1000억짜리 '녹조라떼 카페'
☞23명 목숨 앗아간 4대강 사업, 변한 게 없다
☞ 낙동강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 6가지
☞미국의 현명한 결단력을 배워야 한다, 이것만은

이날 오후 5시경 취재를 마친 이들은 정 기자의 집 근처인 대구의 한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그 자리에서 두 독립군을 인터뷰했다. 정권교체로 새로운 전기를 맞은 4대강의 미래가 궁금했고, 그동안 어떻게 싸워왔는지도 알고 싶었다. 잠깐 차를 주차하겠다고 나갔던 정 기자가 20여분 만에 머리칼이 촉촉하게 젖은 채 나타났다.

"아니, 뭐여! 난 낙동강 흙먼지 다 뒤집어썼는데, 자기만 또 샤워하고 왔구먼." (김종술 기자)
"낙동강에 오면 낙동강의 법도을 따라야 하는 법이지요-흐흐-." (정수근 기자)

4대강 독립군들의 인터뷰는 이렇게 툴툴거리며 시작했다. 이들에게 8년 동안의 싸움에서 기억하는 '베스트 13 장면'을 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죽어가는 얘들이 눈앞에서 버둥거리고..."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물 속에서 삽으로 떠낸 시커먼 뻘과 붉은 깔따구를 들고 있다.
▲ 낙동강 상수원보호구역에서 발견된 붉은깔따구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물 속에서 삽으로 떠낸 시커먼 뻘과 붉은 깔따구를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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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 기자(이하 '정'으로 표기) : "2010년경 4대강 사업으로 해평습지를 준설하기 전이었죠. 이석우 대구환경연합 전 운영위원, 습지와새들의친구 김경철 국장과 함께 해평습지 하중도에 위장막을 치고 흑두루미를 기다렸어요.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두루 두루' 하면서 내려오는 모습은 아직도 인상적입니다. 그 이듬해 준설이 시작된 뒤 철새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김종술 기자(이하 '김'으로 표기) : "2012년도 금강 물고기 떼죽음 때입니다. 처음 발견해 기사를 썼던 날 공무원들이 나와서 깨끗하게 강변을 청소하고 물고기도 수거했죠. 그 다음날 같은 장소에 갔는데 더 많이 죽어있었습니다. 처참했습니다. 죽어가는 얘들이 눈앞에서 버둥거리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비참함, 그게 4대강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 "멱살잡이하고 공사판에 드러눕고..."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지난 2015년 8월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낙동강에서 뜬 녹조물을 뿌려보고 있다.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지난 2015년 8월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낙동강에서 뜬 녹조물을 뿌려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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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2014년부터 지금까지입니다. 가족과 지인,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은행 빚도 차고 압류도 들어왔어요. 개인 대출을 갚으라고 하루에 서너 번씩 전화가 걸려왔고 집주인은 6개월 동안 월세가 밀리니까 '나가라'고 했죠. 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5600원을 갖고 마지막 취재에 나섰다가 큰빗이끼벌레 특종으로 주저앉았습니다.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일은 많은 데 취재비 때문에 힘이 들죠."

정 : "2012년 낙동강 댐 준공했을 때입니다. 그 전에는 4대강 사업을 막아보겠다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공사 현장에 가서 강이 파괴되는 모습을 기사로 고발했습니다. 불법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과 부딪치고, 수자원공사 직원들과 멱살잡이 하고 대판 싸우다가 공사장에 드러눕기도 했죠. 막상 준공식을 하니 맥이 풀렸습니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가장 화났을 때] 문수 스님 소신공양에 대한 조계종 총무원의 모르쇠

지난해 5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소신공양한 문수스님를 위한 6번째 천도제가 경북 군위서 열렸다.
 지난해 5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소신공양한 문수스님를 위한 6번째 천도제가 경북 군위서 열렸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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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2010년 문수스님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그 분의 소신공양, 거룩한 죽음으로 4대강 공사가 중단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자승 총무원장은 문수 스님의 죽음에 사실상 눈을 감았습니다. 다비식을 은혜사주지장으로 축소했고, 조계사 농성도 막았습니다. 다비식 때는 오지도 않고 조화만 보냈습니다. 총무원의 배신 때문에 화가 많이 났죠."
 
김: "최근입니다. '수문개방해서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들을 때 화가 납니다. 지난 6월 1일의 수문개방은 '수위 조정(저하)'입니다. 공주보 수위 20cm를 낮춘 것뿐입니다.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는 못하지만 '다 조작입니다. 4대강 적폐세력 앞잡이가 있어서 대통령의 수문 개방 명령을 듣지 않고 수위만 살짝 낮춘 것'이라고 설명하고 돌아설 때 화가 납니다."

[가장 슬펐을 때] "강에 젓갈국물을 흘려보내... 엉엉 울었다"

젓갈색으로 변한 공주보에 죽은 물고기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젓갈색으로 변한 공주보에 죽은 물고기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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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극적으로 화가 났을 때 슬프죠. 2012년 금강 물고기 떼죽음을 고발했고, 죽은 물고기를 자루에 담아서 강변에 쌓아 침전물이 강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기사화했습니다. 결국 비닐봉지를 씌워서 젓갈국물 같은 침전물이 강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는데, 5톤 압축 쓰레기차가 강변에서 밸브를 열어서 강에다 그 국물을 흘려보내고 있더라고요. 며칠 동안 문제제기를 해서 바꿔놓았는데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정 : "낙단보 마애불이 천공이 뚫린 채 발견됐을 때 조계종 총무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주댐 수몰지구인 금강마을의 금강사 절터에서 고려시대 보물급 유물이 나왔을 때에도 불교계는 반응이 없었습니다. 불교계만이라도 나섰다면 4대강 사업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였는데... 그걸 발로 차버렸을 때 슬프더라고요."

[가장 미안했을 때] "가족 앞에 서면 부끄럽고 작아진다"

충남 서천군 연꽃단지 인근 금강에 발생한 녹조에 돌을 던지자 곤죽이 다양한 모양을 보이며 튀어올랐다.
 충남 서천군 연꽃단지 인근 금강에 발생한 녹조에 돌을 던지자 곤죽이 다양한 모양을 보이며 튀어올랐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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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가족에게 늘 미안하죠. 동생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데, 누님이 '한번 가보라'고 합니다. 저는 항상 강에 있습니다. '너는 강이 중요하냐 형제가 중요하냐'라고 누님한테 한 소리 듣기도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가족도 팽개치고... 아마도 평생 동안 미안함은 남을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강이 가족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동생도 아파서 누워있고... 가족 앞에 서면 늘 부끄럽고 작아집니다."

정 :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녀석들이 한참 아빠한테 재롱을 피우고 커나갈 시기에 저는 바빴습니다. 외박도 많았습니다. 첫째 놈이 스케이트 타는 데 시합에 자주 나갑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빠가 챙깁니다. 아이가 함께 가자고 부탁하면, 저는 항상 강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죠. 이제는 시합이 열려도 아빠한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아빠를 찾지 않더군요."

[눈물을 흘렸을 때] "영주댐에서 내성천 최후를 보다"

강과 산의 경계가 사라졌다. 금수강산이 푸르게 변했다. 초록의 아름다움이 4대강 사업에 추악한 색깔로 둔갑했다. 영주댐에 갇힌 내성천이 녹조로 뒤덮였다.
 강과 산의 경계가 사라졌다. 금수강산이 푸르게 변했다. 초록의 아름다움이 4대강 사업에 추악한 색깔로 둔갑했다. 영주댐에 갇힌 내성천이 녹조로 뒤덮였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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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작년에 영주댐 시험담수를 했어요. 지구별에 하나뿐인 모래강 내성천 비경 중의 비경인 곳에 콘크리트 쇠말뚝을 박았습니다. 맑은 물을 가두니 녹조 범벅이었죠. 1급수를 똥물로 만들어놓고 그 물로 낙동강을 맑게 하겠다는 게 말이 되나요? 눈물이 났습니다.

내성천에는 가족들과도 여러 번 갔습니다.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위안을 얻으려고 가는 곳이었죠. 야생동물 흔적과 아름다운 모래톱, 왕버드나무 등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그곳이 녹조로 물들었을 때 내성천의 최후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김 : "물고기 떼죽음을 취재할 때 제일 많이 울었어요. 강변에 차를 세워놓고 밤을 새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눈이 팅팅 부을 정도였어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공주의 새들목이라는 하중도에 갑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텐트 치고 자거나, 손수건 한 장 깔고 하룻밤을 지냅니다. 너무 힘들고 지치면 나도 모르게 거기 가서 울고 있더라고요."

[보람을 느꼈을 때] "낙동강물 먹어도 되나요?" 이런 질문 받을 때



김 : "사람들한테 칭찬을 들을 때가 가장 좋죠. 하-하. 명절 때에도 저는 강에 있습니다. 작년에 젊은 부부가 고향 가는 길이 잠시 들렀다면서 한과랑 사과주스를 주고 갔습니다. 맛도 있었지만, 제가 나쁘게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복죽을 보내주는 분도 계시고,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한 페친이 문상을 와서 제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가끔 제 차에서 끓여주는 차 한 잔 먹으러 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정 : "그동안 제가 영남인들의 식수원이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들어 주부들이 저를 찾아옵니다.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을 하거나 학부모 모임 등. 낙동강 물을 먹으며 사는 사람들이죠. 이들은 요즘 '이 물 먹어도 될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제가 그동안 낙동강을 기록하고 고발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후원회원도 되어 주시고요."

[가장 기뻤을 때] 낙동강 트로이카 시절



김 :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수문을 개방하라는 지시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입니다. 강을 혼자 걷다가 알게 되었는데, 엄청 좋았습니다."

정 : "저도 그랬습니다. 또 '낙동강 트로이카' 시절이 있었습니다. 혼자 강을 다니다가 2013년부터 3년 동안 이석우 대구환경연합 전 운영위원, 백재호 현 대구환경연합 운영위원장과 함께 다녔습니다. 천군만마 얻은 느낌이었죠.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밤늦도록 4대강의 현실과 미래를 이야기하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나홀로 전투, 가장 소중한 무기] "무딘 내 성격"

정수근 시민기자
 정수근 시민기자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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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 "카메라죠.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죽어가는 강을 고발할 수 있습니다.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죠."

김 : "나의 가장 큰 무기는 내 성격입니다. 무딘 성격. 오만 가지 일을 다 무시한 채 강에 다니면서 기록해왔습니다. 너무 무디게 세상을 살았죠."

[언제까지 싸울 건가?] "돈 떨어질 때까지"

서울 동대문에서 청바지를 팔던 '잘 나가던 사장' 김종술은 4대강 사업에 빈털터리가 됐다.
 서울 동대문에서 청바지를 팔던 '잘 나가던 사장' 김종술은 4대강 사업에 빈털터리가 됐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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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주머니에 돈 떨어질 때까지. 남들이 돈을 안 빌려줄 때까지. 하-하. 4대강 수문을 개방해도 제가 처음 보고 반했던 강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10년이 흐를 수도 있겠죠. 주머니가 탈탈 털리면 현실적으로 어려울 테고요."

정 : "4대강 싸움을 통해 저는 '강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4대강 뿐만 아니라 우리 하천이 자연성을 회복하는 그날까지 싸워볼랍니다."

[4대강에서 누구와 싸우나] "나와 싸운다", "이명박과 싸운다"

환경운동연합이 4대강 사업의 주역으로 손꼽은 인물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김건호 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 본부장,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 이재오 전 국회의원, 차윤정 전 4대강 추진본부 환경 부본부장,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박재광 미국위스콘신대 교수)
 환경운동연합이 4대강 사업의 주역으로 손꼽은 인물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김건호 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 본부장,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 이재오 전 국회의원, 차윤정 전 4대강 추진본부 환경 부본부장,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박재광 미국위스콘신대 교수)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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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단 하나의 적은 저입니다. 강에서 취재한 뒤 집에 들어갈 때마다 힘듭니다. 내일은 그만할까? 매일 나약해지는 나의 모습을 봅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것이 이 싸움을 지속하는 길이죠. 나로 인해서 싸움은 중단될 수 있습니다. 최대의 적은 나입니다."

정 : "이명박씨죠. 좋게 평가하자면 그동안 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강을 찾고 있습니다. 혈세 수십조 원을 날렸고 강을 망쳤는데, 절대로 탕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죗값을 반드시 받아야만 우리 사회가 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싸움을 통해 본 언론] "4대강처럼 썩었다"



김 : "4대강처럼 너무 많이 썩었습니다. 녹조와 이끼벌레, 깔따구 등 사람들에게 줄 먹잇감이 있을 때만 달려옵니다. 그나마 달려오는 기자들에게 고마워할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꿈쩍하지도 않습니다. 언론이 언론 역할을 못했기에 4대강 범죄가 일어난 겁니다.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고 자기들 먹고살려고 4대강 사업 홍보기사를 썼던 언론인들은 퇴출해야 합니다."

정 : "정권에 따라 마구 휘둘리는 언론을 볼 때 국민 한 사람으로서 실망합니다. 언론인들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집단인데, 권력에 빌붙어서 먹고 살 일에 골몰하거나, 권력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민기자로 나선 겁니다."

[4대강, 희망이 보이나] "문재인 대통령"

지난 여름 내성천 회룡포를 방문한 문재인 전 대표는 4대강사업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여름 내성천 회룡포를 방문한 문재인 전 대표는 4대강사업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약속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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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지금 4대강의 희망은 문재인 대통령이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4대강 부역 앞잡이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강한 의지와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밀어붙여야 수문을 열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정 : "문 대통령이 수문을 연다고 했을 때부터 희망을 봤습니다. 8년 싸움의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죠. 싸움의 끝이 보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4대강 재자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마지막, 독자들에게 한마디] "4대강 이야기를 나눠달라"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금강을 찾았다. 김종술 기자가 현장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금강을 찾았다. 김종술 기자가 현장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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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이 글을 보시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기사를 보고 느꼈다면 그날 1시간 만이라고 친구들과 가족들과 4대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한 두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그게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정 : "내성천에 한번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영주댐으로 망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4대강 원형을 간직한 강입니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영주댐을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지난 8년 동안 '이명박근혜정권'에서 4대강 독립을 위해 싸운 두 명의 기자. 이들도 강을 닮아간다. 4대강이 눈물을 흘릴 때 이들도 울었다. 죽어가는 강이 몸부림치며 내보이는 녹조라떼와 깔따구, 실지렁이들... 이걸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내보이면서 이들도 몸서리를 쳤다. 막힌 강이 잠시 흐르거나 스스로 치유하는 현장에 서면 이들도 기뻤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4대강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두 명의 4대강 독립군이 있다. 이렇게 한 우물을 파면서 한 길을 걷는 기자들, 거의 없다. 게다가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언론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 시민기자들이다. 고맙고 미안하다.   

10년 뒤 4대강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나는 강을 닮아가는 4대강 독립군이 어느 곳에서 어떤 표정으로 서 있을지, 그게 더 궁금하다. 나는 또 어디서 이들을 바라볼까?

<2017 오마이뉴스 전국일주> 다음편은 '대전 충남'이다. 전국일주는 고군분투하는 시민기자들과 만나 지역의 중요한 이슈를 쏘아 올린다. 오마이뉴스에 매월 1만 원 이상씩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지역의 10만인클럽 회원들과 만나서 우리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갈 길을 묻는다. <오마이뉴스 전국일주>는 오는 9월 중순경 대전충남의 희망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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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독립군, #김종술, #정수근, #전국일주,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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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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