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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어둠의 겨울공화국을 끝내는 촛불이 되자’는 의미로 1분간 소등 행사를 열고 있다. (소등 후)
 지난해 12월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어둠의 겨울공화국을 끝내는 촛불이 되자’는 의미로 1분간 소등 행사를 열고 있다. (소등 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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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치권이 못하던 혁신을 국민들이 해냈다. '촛불'은 그러한 대표적 사례다.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당연히 견제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통속으로 놀거나 제대로 견제해 내지 못했다.

그래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하지만 혁신은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99℃로는 물이 끓지 않듯이, 국민들의 참여와 열망이 100℃를 넘어 새로운 정권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변화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관성은 계속된다. 촛불의 동력으로 창출된 정부가 과거의 적폐를 해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 국회는 여전히 걸림돌이다. 아마도 국민들의 개혁 첫 대상이 청와대였다면, 다음은 국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도상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고, 국민들이 그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가 회자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남발되는 '협치'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추경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추경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추경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추경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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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치권은 '협치'라는 용어를 남발하고 있다.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바뀌었고, 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점하지 못한 이유에서다. 협력의 기제가 발생했으나, 방어의 기제 역시 비대해져 있다는 것이 우리가 보는 정치의 풍경이다.

결국 국민의 시대적 열망을 안으려면 몇 년에 한 번씩 대리인을 뽑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수시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중계와 감시 기능이 필요하다. 최근 정치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들의 풍경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혁신함으로서 정치를 혁신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서울의 사례를 좀 볼 필요가 있다. 민선 5, 6기 들어 공공정책에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동안 자신이 관심을 가져왔던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을 공공 속으로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왔고, 대안적 정책방식이 도출됐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와 노동존중이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공공 스스로를 개혁하고 이를 민간에서도 도입할 수 있도록 모범사례들을 만들고 있다. 물론 뼈아픈 과정들도 있었다. 수면아래 잠재돼 있던 적폐가 서울시라고 없었으랴. 그 결과 한 청년이 말도 안되는 근로 환경 속에서 스크린도어 참사를 당했다. 시청 앞에서는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피켓과 시위가 계속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그동안 정부 정책은 실효성 있는 답을 내놓고 있는가?'에 대해 계속 의문이 제기돼왔다. 치안이 불안해 안심하고 귀가할 수 없으면 경찰은 그저 순찰을 강화할 뿐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데, 공급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정책은 어딘가에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서울시의 실험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발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 등 11개 투자·출연기관에 근무하는 2천442명 전원을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발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교통공사 등 11개 투자·출연기관에 근무하는 2천442명 전원을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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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울시는 범죄예방 디자인으로 거리환경을 개선하고, 귀가를 불안해하는 여성에 동행자를 붙였다. 수요자 중심의 사고. 그것은 시민의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올빼미 버스, 여성안심택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시민의 수요에 기반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는 결국 시민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일상에서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시민들로부터 나오는 '청책'의 결과였다면, 정책적 방향에 대한 전환은 이를 좀 더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과의 논의를 통해 나온다. 서울시는 이러한 정책적 의제들을 시민사회, 지역사회와 논의했다. 원전이 없는 지역에서 원전을 줄이는 정책을 시도했고, 새롭게 짓는 도시개발에서 삶의 공간을 재생하는 도시 재생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 시장경제와 다른 방식의 사회적 경제, 주민 스스로 자신의 지역을 만들어가는 마을 공동체, 미래가 불안한 청년에게 살자리, 설자리, 놀자리, 일자리를 지원하는 '서울 2020 청년보장' 등이 새롭게 설계됐다. 

과연 이런 정책들이 공무원만의 생각, 박원순 시장 혼자의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은 생활 감수성, 정책 감수성을 가진 시민들과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수용해온 과정의 산물이다.

무엇이 혁신이고 무엇이 협치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혁신이고 협치인가? 서울시의 혁신은 공공 정책의 혁신을 통한 사회 변화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협치였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들을 듣는 과정, 그것을 방화벽(firewall) 같이 머물렀던 제도 공간 안으로 수용하여 공무원들의 행동방식과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데 사용했다. 냉장고 속에 코끼리를 집어넣듯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는 데는 역시 시민이 있었다.

혁신의 추억이 사실 처음은 아니다. 과거 한국사회는 관료제, 기술혁신 등을 통해 압축적으로 사회·경제적 부를 성장시켜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낙수효과로 남거나, 몇몇 집단과 사람의 이익에만 기여할 뿐, 시민들의 참여를 배제하는 불평등한 발전이라는 아픈 상처가 남았다.

사회 혁신이 한국 사회의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면, 혁신의 과정을 민주적으로 보장하는 '협치'라는 기반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그것이 이전의 혁신과 달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기사]
문재인의 '혁신-협치'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
문재인이 배울 만한 박원순의 한 수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홍길님은 서울시 협치지원관입니다.



태그:#협치, #혁신,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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