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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로 씻겨 내려간 진입로를 이웃집과 함께 보수를 했다.
 장맛비로 씻겨 내려간 진입로를 이웃집과 함께 보수를 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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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장맛비가 멎자 햇빛에 쨍쨍 내리 비쳤다. 농촌에서는 텃밭 농사를 짓던 큰 농사를 짓던 장맛비가 멎으면 할 일이 많다.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비가 멎으면 잡초를 정리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잘 자라라는 농작물은 자라지 않는데 잡초는 왜 그리 쑥쑥 잘 크는지…

거름을 주는 것도 아니고, 보살펴 주는 것도 아닌데 장마철이 오면 논밭은 잡초 세상이 되고 만다. 잡초처럼 농작물도 잘 자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는 텃밭에 잡초를 정리했다. 잡초는 뿌리가 워낙 튼튼해서 뽑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작물을 심을 공간만 잡초를 정리해 주고 고랑에 있는 잡초는 베어서 퇴비로 사용을 한다. 

텃밭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텃밭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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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논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양편에는 장마철만 돌아오면 그야말로 잡초들의 천국이 되고 만다. 길이 좁아서 자동차가 들어오기가 힘들 정도로 잡초들이 길을 점유한다. 그래서 해마다 장마철이 돌아오면 진입로 양편에 있는 잡초를 베어내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우리 집은 동이리(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원 부락에서 2km 정도 떨어진 금굴산 자락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열 가구 정도가 있는데, 상주를 하며 살고 있는 집은 우리 집과 작년에 이사를 온 앞집뿐이다. 앞집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하시다가 은퇴를 한 분이 작년에 새로 귀촌을 했다. 나머지 여덟 가구는 주말이나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드문드문 오는 정도이다.

앞집이 이사를 오니 우리가 살기가 훨씬 편리해졌다. 우선 말동무가 생겨서 좋고, 집을 비운 사이에 택배라도 올라치면 앞집에 맡겨둘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밤에는 앞집에 불이 켜져 있으니 훤하기도 하지만 쓸쓸함도 덜하고 어쩐지 안정감이 든다. 혼자 살 때에는 외롭기도 하지만 진입로의 잡초를 베는 일, 유실된 신작로를 고치는 일 등을 나 혼자서 다 해내야만 했다. 다른 집들은 어쩌다 주말에 한 번 오면 자기 집에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도 바빠서 이야기할  틈도 없고 다른 일은 생각조차도 못한다.

그런데 부지런하신 교장선생님이 나도 모르게 벌써 두 번이나 진입로 잡초를 베어내어 정리를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앞집으로 이사를 온 교장선생님이 마치 천군만마를 만난 듯 기쁘다. 그러나 잡초는 곧 바로 다시 자라나서 무성하게 길을 막고 있다. 오늘 아침(7월 20일)에는 진입로 잡초를 베어내고 장맛비로 씻겨 내려간 길도 보수하기로 했다.  

장맛비로 흙이 씻겨내려가 패인 신작로
 장맛비로 흙이 씻겨내려가 패인 신작로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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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 P가 방문을 했는데, 친구가 예초기를 돌려서 잡초를 깎기로 하고 나는 길을 보수하기로 했다. 예전에 시골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던 P는 농사의 달인이다. 농사뿐만 아니라 예초기를 다루는 솜씨도 수준 급이다.

P는 예초기에 기름을 잔뜩 넣어서 집 앞부터 잡초를 깎기 시작했다. 나는 곡괭이와 삽을 들고 장맛비로 씻겨 내려간 신작로로 갔다. 우리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진입로는 미처 포장을 하지 못해서 해마다 장마철이 돌아오면 흙이 씻겨 내려가 길이 패이고 갈라져서 자동차도 사람도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나는 곡괭이로 길옆의 흙을 파서 삽으로 떠내어 패인 곳을 메우기 시작했다. 곡괭이질 한 번 하고 삽질 한 번 하는데 구슬땀에 온 몸에 밴다. 그런데 마침 교장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니 혼자서 그 힘든 일을 하시면 어떡해요? 함께 하자고 말씀을 하지지 않고…."
"하하, 해마다 혼자서 했던 일인데요 뭘. 괜찮습니다."
"그래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이런 일은 함께 해야지요. 허허."

교장선생님은 자전거를 세워두더니 삽을 들고 내가 파 놓은 흙을 떠서 패인 길을 메우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고마울 데가! 선생님이 삽질을 하며 합세를 하자 나는 없던 힘이 막 솟아났다.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곡괭이도 가볍게만 느껴졌다. 나는 흙을 파 내려가고 교장선생님은 삽질을 하고... 손발이 척척 맞아 패인 길을 싹싹 메워나갔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의 삽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니, 학교에서 삽질도 가르치시나요? 어찌 그리 삽질이 능수능란하시지요?"
"허허, 그런 건 아니고요. 법원리에 밭이 조금 있는데 매년 호박 구덩이를 파다 보니 남보다는 좀 낫지요."
"아, 그렇군요."

예초기로 벌집 건드려... '일하다가 봉침 맞았네'

앞집과 울력을 해서 장맛비로 패인 길을 보수를했다.
 앞집과 울력을 해서 장맛비로 패인 길을 보수를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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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을 하다 보니 금방 일이 끝나갔다. 일이란 함께 하면 이렇게 수월한 것이다. 비가 오면 곧 다시 씻겨 내려가겠지만 어쨌든 보기에 좋고 조금은 다니기에 편하게 되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길을 고치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 전에는 이장님 집에서 우리 집까지 200m 에 달하는 길이 비포장도로였다. 그래서 비만 오면 길 곳곳이 패이고 씻겨 내려가 수시로 삽과 곡괭이로 보수를 해주어야 했다. 오늘 수리를 하는 50m 길만 포장을 하지 못해서 작년부터는 이 구간만 고치면 되니 일이 훨씬 줄어든 것이다.

농촌의 진입로는 대부분 토지 소유자의 땅 일부분이 맞물려 들어가 길이 나게 마련이다. 이장님 댁에서 마지막 집인 홍씨 집까지 500여 미터 길이 거의가 다 토지소유주의 땅이 맞물려 들어가 서로 자기 땅을 조금씩 양보를 해서 진입로를 내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뚫렸다. 그렇지 않으면 맹지가 되어서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이 진입로는 군에서 작년에 포장 작업을 해 주었는데, 길을 포장을 하려면 땅 소유주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이장님의 수고로 16명의 소유주로부터 동의서를 다 받았는데, 이 50m 구간만 소유주와 연락이 닿지 않아 동의서를 받지 못해서 아직 비포장 상태로 있다. 

자갈이라도 많이 깔아서 보수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길이 패이지는 않을 텐데, 흙과 모래로만 덮여 있다 보니 비만 오면 씻겨내려가 매년 홍역을 치르고 있다. 땅 주인과 언젠가는 연락이 닿으면 해결을 꼭 해야 할 일이다. 일이 끝나갈 무렵 친구 P가 예초기를 왱왱 능수능란하게 돌리며 다가 왔다.

"와우! 친구 분 예초기 돌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네, 이 친구는 농사일이라면 뭐든지 잘해요."

P는 자신이 돌리는 예초기 소리에 우리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런데 예초기를 정신없이 돌리던 P가 "앗, 따가워!" 하며 그만 주저앉고 만다. "저런, 벌이야. 빨리 도망을 쳐!" 예초기를 맨 P는 동작이 느려 도망을 쳤지만 벌써 벌침을 여러 번 쏘인 모양이다.

"앗, 따가워! 나도 쏘였네!" P옆에서 삽질을 하던 교장선생님도 발을 절뚝거리며 줄행랑을 쳤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을 벌에 쏘이고 만 것이다. 다행이 나만 좀 멀리 떨어져 있어 운 좋게 변을 면했다.

P가 예초기를 돌리다가 그만 벌집을 건드려서 일이 커진 것이다. 벌들이 윙윙 저공비행을 하면서 자기 집을 건드린 적을 공격한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벌을 피해서 엎드려서 귓불을 털고 있는 P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친구의 도움으로 진입로 풀을 말끔하게 베어냈지만 대신 벌집을 건드려 공짜 봉침을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친구의 도움으로 진입로 풀을 말끔하게 베어냈지만 대신 벌집을 건드려 공짜 봉침을 맞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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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친구야, 몇 방이나 쏘였어?"
"한 댓 방 쏘인 것 같아."
"그럼 병원에 가야하는 거 아닌가?"
"뭘, 이 정도를 가지고. 괜찮아. 나는 벌독에 비교적 강하거든."
"아무리 강하더라도 다섯 방이나 쏘였으면 걱정이 되는데."
"귓속으로 벌이 하나 들어갔는데 다행히 귀는 쏘지 않고 그냥 나갔나 봐. 허허."
"아이쿠, 큰일 날 뻔 했네! 그래도 병원에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 괜찮아. 다행히 땅벌인 것 같아. 말벌보다는 독이 덜하니 곧 괜찮아 질 거야. 공짜로 봉침 맞은 샘 치면 돼. 허허."
"공짜 봉침 치고는 너무 센 것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말벌이 아니고 땅벌이었다. 벌을 쏘인 친구의 귀밑과 목 언저리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이지만 괜히 미안하다. 친구 도와주려다가 벌을 다섯 방이나 쏘였으니 말이다. 교장선생님이 절뚝거리며 다가오면서 우스갯말로 분위기를 잡았다.

"공짜 봉침도 맞고, 길도 고치고, 풀도 깎았으니 오늘 아침 울력은 댓길인데요?"
"하하, 그렇기는 하지만 공짜 봉침치고는 너무 세게 맞았네요. 봉침 맞은 발은 괜찮으신가요?"
"네, 따끔하긴 했지만 괜찮아요."
"교장선생님 덕분에 일을 아주 수월하게 잘 했습니다."
"뭘요. 저는 조금 거들어 준 것 뿐인데요."


온몸에 땀을 흠뻑 뒤집어쓴 채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교장선생님은 벌을 쏘인 발을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가고, P는 예초기를 걸머진 채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다. 아직도 여러 방 맞은 봉침 때문에 정신이 얼얼한 모양이다.

곡괭이와 삽을 어깨에 걸머지고 두 사람을 따라가는데,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개선장군 같은 느낌이 든다. 비지땀을 흘리며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매우 상쾌하다. '울력'이란 이렇게 좋은 것이다. 샤워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데 밥맛이 꿀맛이다!


태그:#울력, #공짜봉침, #장마피해,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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