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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앞에 선다. 거기 대한민국의 가장 넓은 국경이 있다. 만국의 향기가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치는 곳. 시끄럽고 소란하고 북적이고 혼란스럽다. 활짝 열린 문으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무엇인가가 넘나든다. 늘 국경 앞에 서면 느닷없는 감상에 젖는다. 하지만 째깍째깍 시간이 간다. 비행기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소용돌이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간다.

일은 착착착 진행되어야 한다. 발권을 해서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통신사 창구에서 돼지코 받고 가족을 김밥집에 앉혀 놓고 포켓와이파이를 받아왔다. 음식을 흡입하고 들고 탈 수 없는 음료수를 단숨에 삼켜버리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일사천리. 착오는 없었고 실수도 없었다. 여행의 흥분이 최고조에 이른 첫날. 아침부터 팽팽하던 긴장이 국경선 위에 서고 나서야 풀렸다. 사고는 방심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여행 첫날은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떼우기가 쉽다. 기내식이 그날의 마지막 밥이 될 수도 있으니 꼭 챙겨먹자.
▲ 간단한 기내식이라도 여행 첫날은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떼우기가 쉽다. 기내식이 그날의 마지막 밥이 될 수도 있으니 꼭 챙겨먹자.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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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게이트가 아직 멀리 있는데 선크림을 하나 사겠다고 한다. 명품 선글라스를 골라보겠다는 게 아니지 않는가. 마음을 놓고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

찰나였다. 아까 통신사 창구에서 받은 할인쿠폰을 써야겠단다. 그러려면 다른 면세점 가야 한단다. 그렇게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훌쩍 떠났고 20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핸드폰은 두고 갔다. 연락할 길이 없다. 풀어졌던 긴장감이 훅하고 코 속으로 들어온다.

게이트 길목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어디로 가는지 비행기가 뜨고 지고 바퀴를 굴리고 방향타를 까닥거린다. 째깍. 탑승 시작 시각 5분전. 속이 탄다. 말렸어야 했다. 그냥 빙판 위 스케이트처럼 스르륵 미끄러져 게이트로 코앞까지 갔어야 했다.

다행히 아내가 비행기가 뜨기 전에 나타났는데 아내는 빈손이고 아이는 커다란 장난감 세트를 들고 신이 나서 조잘댄다. 울상과 환희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애초에 사려던 걸 잽싸게 사서 게이트로 뛰었다. 사연을 들어 보니 그 쿠폰을 쓰려면 절차가 복잡한 데다 추가 구매도 해야 한단다. 쉽게 주는 할인쿠폰은 다 이유가 있는가 보다. 그저 멍하게 공항패션이나 구경하면 좀 좋았을까. 그래도 비행기는 놓치지 않았다.

부랴부랴 올라탄 비행기는 순항했고 잠깐 졸았나 싶은데 다시 땅으로 내려간다. 오키나와 나하공항이다. 그렇게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또 다른 국경의 검색대 앞에 선다.

까닭없이 마음을 졸이는 이 순간. 이국의 언어와 풍경이 폭포처럼 쏟아져오는 그 낯섦의 시작.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전혀 보지 못했던 어색함이 좋다. 확연히 다른 기온과 고약한 냄새마저도 기쁘다. 일평생 처음 만나는 것들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국경을 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두려움이자 아드레날린이 아닐까.

공항건물 밖으로 나왔다. 말랑말랑한 바람이 캐리어를 쥔 내 손목을 타고 올라와 겨드랑이를 훑고 지나간다. 한국은 찬 3월인데 여기는 바람이 부드럽다. 남국의 따뜻함. 아직 우기의 습기는 머금지 않아 여행객의 기분을 한껏 올려주는 따끈한 바람이다. 이런 바람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흰 돛을 단 범선과 잘 어울리겠다.

비행기에 내려 다른 나라에 섰을 때의 그 낯섦을 사랑한다.
▲ 나하공한 내부 비행기에 내려 다른 나라에 섰을 때의 그 낯섦을 사랑한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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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마법은 대단하다. 또 감상에 젖으려고 한다. 하지만 렌터카 차고지로 우릴 데리고 갈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 그랬다간 해외미아 발생이다. 아쉬운 대로 코를 벌름거려 오키나와의 바람을 몸속으로 집어 넣고 OTS(일본 렌터카 업체)에서 보내준 버스에 올랐다.

렌터카를 수령하는 절차는 꽉 짜인 틀에 따라 기계처럼 진행이 된다. 한국어 의사소통이 필요한 과정(교통법규안내, 차량 상태 체크)은 한국인 직원이 진행했고 나머지 부분은 만국 공통어(여기서는 현금을 주로 썼다)로 술술 진행되었다. 지체도 불편도 의구심도 없었다. 순조로웠다. 싱거운 기분마저 든다.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까봐 졸였던 마음이 아까웠달까. 하지만 그 마음 싹 달아나게 할 요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이다.

막상 가족을 태우고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으니 떨렸다. 아주 천천히 출발해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좌회전 그리고 또 좌회전이다. 아. 좌회전. 중앙선은 운전석 쪽에 있어야 한다. 좌측주행. 수 십 번 되새기고 또 되새겼던 말이다. 하지만 현장에 와보니 당연하다는 듯 역주행이다. 으악. 적응하는 데까지 위기의 순간을 몇 번 비켜나갔다.

다행히 추돌사고는 피했고 겨우 긴 차량행렬 뒤에 붙어서 목적지에 달팽이 꼼지락 만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꼬리를 물고 가다보니 사거리 하나를 놓치고 지나쳤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못 찾고 엉뚱한 지시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내비게이션 같으면 버벅거린다고 해도 몇 분 안에 제 위치를 찾고 경로를 재설정한다. 그러지 못하면 고물 소리를 듣는다. 헌데 일제 내비게이션은 감감 무소식이다. 급한 마음에 화면을 터치해서 지도를 움직여봤다. 그랬더니 내 위치가 홀연히 사라진다. 일본 내비게이션은 주행 상태에서는 경로설정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손대면 먹통이 된다는 건 몰랐다. 급하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켰으나 내비게이션은 원상복구가 되지 않는다. 낯선 도로 한복판에 가족을 태우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그 상황. 머리가 쪼개지는 줄 알았다. 공포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허겁지겁 구글맵을 켰으나 이것 역시 처음인지라 100% 믿지 못한다. 하물며 신호등마저 초록불이 가라는 신호이기는 한 건지 못 믿을 상황이 됐다. 목적지는 고사하고 사고는 내지 말아야지 하는 절박함이 치솟았다. 간절하게 앞차의 꼬리를 잡았다. 절대 떨어지지 말아야지. 넌 나의 짝이야. 그러다 차는 훤히 뚫려 있을 외곽도로 대신 나하시내 중심가로 접어들었다. 머리 위에 모노레일이 지나다니고 꽉 막힌 도로가 나를 압박했다.

"차가 좀 이상해."

이 악물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아내가 뒤에서 지적한다. 큰 소리를 낼 뻔했다. 장모님이 조수석에 앉아 계셨는데도 말이다. 터질 듯한 머리를 내리누르고 잘근잘근 말을 씹었다.

"뭐.가."
"차가 너무 붙었어."

사이드미러를 보니 왼쪽 차선에 거의 붙어서 가고 있다. 운전석 방향이 바뀌었는데 중앙선을 잡는 눈은 그대로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게다가 거리감도 없다. 거울로 보면 충분히 공간이 있어 보이는데 자꾸 부딪힐 것 같아 불안하다. 자꾸 좌우 오락가락 곡예운전을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설상가상이구나. 오늘에서야 참 뜻을 깨닫는다.

무슨 정신으로 중심가를 벗어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벗어났고 언덕 주택가를 구불구불 올라갔더니 슈리성이다. 아, 그 반가움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제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좁은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겠구나. 절로 속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힘내서 슈리성 구경을 하기 전에 우선 오키나와 운전, 특히 나하 시내 운전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자.

사실, 주행방향이 반대로 바뀌고 좌회전보다 우회전이 어려워지는 건 큰 어려움이 아니다. 중앙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만 명심하면 된다. 중앙선은 운전석 옆에 있어야 한다. 즉, 운전자 오른쪽에 있어야 한다. 어딜 가든, 어떤 액션을 취하든 그것만 기억하면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차량 치우침. 아무리 신경을 써도 차가 왼쪽으로 치우쳤다. 이건 운전 사흘째가 되도록 교정이 안 됐다. 다른 운전자들도 경험한 바라고 한다. 그러니 사고를 피하려면 차폭이 좁을 차를 렌트하는 게 현명하다. 비좁아도 그게 안전하다. 보험도 적용범위가 센 걸로, 무조건 제일 비싼 걸로 하길 권한다. 차를 긁을 뻔할 때마다 그 선택을 한 게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몇 년 치 목숨 값은 한 듯하다.

요금이 비싼 편이지만 골목 깊숙한 곳 어디든 있다. 돈은 챙기고 두려움은 버리고 어디든 가 보자.
▲ 나하 시내 주차장 요금이 비싼 편이지만 골목 깊숙한 곳 어디든 있다. 돈은 챙기고 두려움은 버리고 어디든 가 보자.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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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나하 시내 주행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하 시내와 다른 도시의 주행은 확연히 다르다. 나하 시내에서 하는 운전이 아침 8시 30분의 도심 운전이라면 다른 곳은 해안도로 일주나 마찬가지다. 거기다 나하의 주차비는 얼마나 비싼지 첫날 주차비로만 3만 원 돈을 썼다. 심지어 호텔에다 낸 주차비만 1만 원이다. 나하에서 속편하게 여행하려면 차량은 포기하는 게 맞다. 공항에서 모노레일로 숙소로 가 짐 풀고 모노레일로 이곳저곳 다 돌아다닐 수 있으니 좀 걷고 마음 편히 둘러보길 추천한다. 유명 관광지인 슈리성도 국제거리도 모노레일로 다 간다.

주차는 어디에 하지? 의외로 곳곳에 있다. 주택가 안쪽에도 주차장이 있다. 농부가 손바닥만한 땅에도 푸성귀를 심듯이 조각땅에도 주차장이 있다. 어차피 주차비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용기 내어 골목길로 들어가도 좋다.

통행금지. 나하 중심가 국제거리는 일반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대체로 출퇴근 시간이다. 7:30~9:00과 17:30~19:00까지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시간에는 혼잡해서 발이 묵이니 피해야 한다. 그리고 중앙선이 상황에 따라 변경된다. 신호를 늘 주시해야 한다.  

근데 아직도 뭐가 맞는지 모르겠는 게 두 가지 있다. 속도제한과 비보호 우회전이다.

시내는 40Km/h에서 50Km/h. 고속도로는 80Km/h이 제한속도다. 그런데 오키나와 사람들 그걸 안 지킨다. 특히 고속도로는 무법천지다. 120Km/h은 우습다. 그런 차들에게 차선을 비켜주면서 자꾸만 나도 밟고 싶어진다. 그런데 안 했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요령이 있는지 모르잖는가. 그들만이 알고 나는 모르는 관행 같은 것 말이다. 눈치껏 미군차량이나 렌터카가 아닌 현지인차 뒤에 붙어서 따라 가기는 했으나 아직도 그 속은 모르겠다.

더 속 뒤집어지는 건 우회전이다. 우회전 신호를 주는 우회전은 괜찮다. 신호에 맞춰 가면 되니까. 비보호 우회전. 이게 아리송하다. 마주 오는 차 없는지 잘 보고 사거리는 통과하는데 그러고 나면 여지없이 초록불이 들어와 있는 횡단보도를 만난다. 이건 뭐야. 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뒤에 차는 따라 붙었지 직진 신호는 끝나가지.

모토부에서 그런 식으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길 건너에서 현지인이 크게 손짓하면서 통과하라고 한다. 말이야 못 알아듣지만 그 상황에서 그 행동은 빨리 지나가란 게 확실했다. 그 뒤로는 우회전하고 나서 파란불 횡단보도가 가로막고 있어도 요령껏 지나가기는 했지만 확실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음에 오키나와인과 말을 섞게 되면 꼭 물어보리라.

다음은 내비게이션. 두 가지만 기억하자. 오키나와 내비게이션의 '잠시 후'는 우리나라의 '잠시 후'는 다르다. 익숙해질 때까지 구글맵을 같이 쓰는 게 좋다. 그리고 일단 주행을 시작하면 내비게이션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절대로.

가장 고생시킨 게 운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도 운전이다. 외국 여행에서 선뜻 렌터카 이용할 생각을 못 해보는데 오키나와는 다르다. 조금만 주의하면 제주도에 온 듯 돌아다닐 수 있다. 처음에는 짜릿하고 나중에는 편하고 끝에는 못내 아쉽다.

그밖에 렌터카 이용에 관한 사소한 정보 몇 가지

- 조작레버가 깜빡이가 오른쪽 와이퍼가 왼쪽에 있다. 우리나라 차량과 반대다. 
- ETC(하이패스카드) 사용가능하고 사용하면 편하다. 단, 렌터카 회사에서 보증금을 받고 나중에 현금으로 돌려준다.  
- 조수석은 조수에게. 조수석을 비우지 말자. 구글맵이나 지도를 봐 줄 수 있는 사람을 앉히자. 꼭. 
- 차량/수령 반납 시 상태 체크는 거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너무 믿지도 너무 걱정하지도 말자. 

슈리성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겨야겠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오키나와, #여행, #나하, #인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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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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