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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객실 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을 보여준 유튜브 방송
 지하철 객실 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을 보여준 유튜브 방송
ⓒ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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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거리를 걷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과 마주쳤다. 일부러 엿듣고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이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실로 충격적이었다. '니애미', '응 느금마'처럼 부모에 대한 욕은 물론,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 등 기사에 옮기기 민망한 단어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고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방송의 자극적 콘텐츠들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간 친구들이 교실의 언어 풍경에 대해 하소연했던 기억도 났다.

최근 한 유튜버의 방송이 SNS상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유튜버는 지하철 한복판에 앉아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인다(인화성 물질을 들고 가서 사용하는 것은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 위험천만하게 보이는 행위다.

이 영상의 조회 수는 7월 12일 기준으로 60만 건에 육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돈을 내지 않고 톨게이트를 통과하는가 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너희 엄마는 너 이러는 것 아시냐'면서 다짜고짜 모욕하기도 한다. 틱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 하는 등, 장애인 혐오 행위 역시 서슴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 방송이 모두 저질'이라고 일반화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순수한 재미를 추구하는 콘텐츠, 유익한 콘텐츠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보물섬', '대도서관' 등이 그 좋은 사례다. 그러나 논란이 되는 콘텐츠들은 혐오와 조롱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장애인에 대한 비하를 한 BJ, 유명 연예인에 대한 공개적인 성희롱을 해서 법적 처벌을 받은 BJ도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배울 나이, 사회화가 진행되는 나이에 혐오가 내재화될 위험이 크다.

저질 방송, 인기의 이유는?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유배우 가정 중 맞벌이 가정의 비율이 44.9%에 이른다. 지난 2012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대선에 도전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장시간 노동 경제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고,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의미였다. 2017년 현재, 손학규는 완벽히 과거의 존재가 되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여전히 유효한 구호다. 맞벌이 가정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직장인들이 야근과 추가 근무에 시달리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즉, 아이들은 방과 후에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 하는 것이다.

가족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스마트폰만 한 것이 없다. 터치만 몇 번 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상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최근 남자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상위권에 BJ가 포함된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직업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변별력이 부족한 어린 나이에 그릇된 콘텐츠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 그 안에 있는 패륜과 무질서 역시 '재미있는 것'으로만 받아들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학생을 이유 없이 때리고, 가게에 가서 무례한 요구를 하더라도 그러려니 생각한다. 이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하면 '진지충'이라며 비웃음을 받게 된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은 많다

청소년들은 어려서부터 내신 성적과 수행평가로 시달린다. 학창 시절은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배울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거시적인 해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제도가 새롭게 거듭나야만 한다.

단적인 예로 '야간자율학습'(아래 '야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작년 6월 29일, 경기도 이재정 교육감이 '야자 폐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수도권을 제외하면 야자를 강제하는 학교는 지금도 많다. 기자는 야자 시간에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다가 이어폰을 뺏긴 적이 있다. 왜 공부하는 시간에 공부를 안 하고 '책을 읽냐'는 것이었다. 어이없었지만 책을 덮고 말았다. 이처럼 다양성을 묵살하는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자연스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은 많다. 단지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음악이나 스포츠에 대한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교육뿐 아니라 아이들이 동호회를 만들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나라 역시 여가 시간이 지금보다 알차게 채워진다면 어떨까. 저질 콘텐츠가 발붙일 곳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수요 자체가 줄어든다면, 더 자극적인 것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경쟁 역시 약해질 공산이 크다.

어린아이들이 패륜적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면 화가 날 수 있다. '초딩들은 어쩔 수 없다'며 혀를 차는 친구들도 더러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혀를 차기에 앞서, 왜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 역시 병든 사회의 피해자 아닌가.


태그:#인터넷방송, #유튜브, #아프리카, #BJ,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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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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