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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으로 한반도 평화구축과 남북관계, 통일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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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쾨르버 재단의 초청으로 옛 베를린 시청에서 발표한 일명 '베를린 구상'은, 북핵 문제의 해법과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구상을 종합적으로 밝히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설 후 이어진 문답에서 문 대통령 스스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이라고 할 만큼 기존의 주장을 정리해 발표한 것이는 하다. 하지만, 한미·한중 정상회담을 거친 후 나왔다는 점과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한 곳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김 전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 이후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에 일대 진전을 이뤘던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연설기획비서관실은 취임 직후부터 오랫동안 이번 연설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6.15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연설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관계에 관한 기본 구상을 밝혔다. 이후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 냈고, 이번 한중정상회담으로 시진핑 주석의 공감도 얻었다. 한반도 문제에 주도권을 가지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일정 부분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베를린 연설을 이틀 앞두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한 것은 가장 큰 악재로 작용했다. 그동안 북한은 핵탄두의 소형화, 미사일 사정거리 확대 등으로 미국 본토를 위협해 왔고, 이번 실험으로 그 위기감은 절정에 달했다. 또 이번 실험으로 북한이 미국의 '레드라인(군사행동 한계선)'으로 여겨온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을 보유했음이 확인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문 대통령은 '대화'를 말하기 가장 어려운 상황에 '대화 공세'를 펼친 것이다.

평화체제 위에 신 경제협력 그리는 문 대통령

먼저 문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6.15남북공동성명과 10.4남북정상선언 정신으로 돌아가자'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운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을 지키고 경제협력 등 상호 호혜적 관계 발전을 위해 다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두 선언을 통해 남북문제의 주인이 우리 민족임을 천명했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보장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라며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문 대통령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이루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안보·경제적 우려 해소, 북미관계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라며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 신경제지도'라는 경제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북핵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 한반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겠다"라며 "군사분계선으로 단절된 남북을 경제벨트로 새롭게 잇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북경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 달릴 것"이라며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 동북아 협력 사업들도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구상을 종합하면, 앞선 남북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이끌고 그 과정에서 남북경협으로 새로운 경제 활로를 열겠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현재 북한의 지도자가 과거 정상의 파트너였던 김정일이 아니라 김정은이라는, 더 예측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에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 과정에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북한이 결정할 일만 남았다"라며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 연설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할 것인지 설명하면서 북한에 제안한 내용들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사실상의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도 기본적인 남북 간의 대화와 접촉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쉬운 일부터 시작하자"라며 ▲ 이산가족 상봉 ▲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대화 재개를 제안했다.

이것은 북한이 대화에 응할 의사가 있을 경우 아주 낮은 단계에서부터 정상회담이라는 최고 수준의 대화까지 폭넓게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사로 해석된다. 그만큼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남북한의 접촉을 넓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금처럼 당국자 간 아무런 접촉이 없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라며 "상황 관리를 위한 접촉으로 시작해 의미 있는 대화를 진전시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 후 청중과 문답에서도 "어떻게 보면 늘 해왔던 이야기지만 G20을 앞둔 이 시기에, 이 특별한 장소에서 다시 한번 평화구상을 밝히는 것은 새로운 (대북)제재와 압박 수단이 국제적 공조 속에 강구되면서 그와 함께 대화의 필요성도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정상회담을 당장 하자는 게 아니"라며 "문 대통령도 '여건이 갖춰지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단 것처럼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인 일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7년 전과 차이, 북한의 선택은?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ICBM 발사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ICBM 발사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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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 대통령의 구상과 제안은 당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당시와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당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김 전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 3개월 만인 6월 15일에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베를린 선언은 김 전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나왔고, 발표 전 사전 교감도 있었다. 특히 북한은 당시에도 ICBM의 모체인 광명성 1호를 발사하는 등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진행 중이었지만 북미 간의 협상 테이블도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취임 두 달 만에 나왔다. 독일 출국 하루 전 ICBM을 쏘아올린 북한과 쾨르버 연설 내용을 사전 교감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17년 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개발 단계였다면 지금은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북한은 완벽하게 실전 운용이 가능한 핵탄두와 ICBM을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완전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다만 국제사회의 압박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북한이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문 대통령은 독일로 출국하기 전 북한의 ICBM 실험에 맞서 한미 공동으로 미사일 무력시위를 벌였다. 문 대통령은 이를 직접 지시했고, 언론에 '무력시위'로 보도되는지 여부도 챙겼다. 또 UN의 대북 추가제재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며 한미일 공조체제도 더 견고히 가져가고 있다. 강력한 압박으로 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를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이같은 '최대한의 압박'과 동시에 '폭 넓은 대화 제안'은 무엇보다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미국 송환 후 사망한 웜비어 사건과 ICBM 실험으로 북미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달한 현 상태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불안감을 낮추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또 문 대통령이 이번 연설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 낼 경우, 북한 문제 해결에 당사자로 나설 수 있는 모멘텀(추진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남은 건 '북한의 선택'이다.


태그:#문재인, #베를린, #김정은, #김대중, #IC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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