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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에 젖은 셔츠는 도심 속에서 시원한 계곡으로 마음 가득 내달리게 하는데도 오히려 경남 진주 도심으로 향하게 한다. 진주성 밤 풍경이 무더위를 날려버린다. |
ⓒ 김종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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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절정이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덥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땀은 얼굴에서 그대로 흙바닥에 떨어졌다. 바싹 마른 흙은 땀방울을 흔적조차 없이 빨아들인다.
지난 6월 25일, 경남 산청에서 늦은 밤에 업무를 마치고 진주에 있는 집으로 퇴근하는 길.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빠졌다. 땀에 젖은 셔츠는 도심에서 시원한 계곡으로 내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지만, 오히려 도심으로 향했다.
오후 8시 30분, 진주성 서장대 아래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남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서 오라며 시원하게 반겼다. 서문을 따라 올랐다. 어둠 속에서 호국사 앞 전등이 길잡이처럼 반짝인다. 호국사 오른편 서장대로 천천히 계단을 따라 올랐다.
서장대에서 바라보는 진주 신안평거지역 집들이 반딧불처럼 빛났다. 가만히 올려다본 서장대 처마 옆으로 용과 호랑이를 그린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성내 묵은 숲 사이로 가로등이 고요히 빛을 뿌렸다. 연인들이 아래에서 사랑 이야기를 속삭이자 쑥국쑥국 소쩍새 노랫소리가 맞장구를 쳤다. 진주성 숲길이 이렇게 고즈넉한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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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 곳곳에 내걸린 ‘순시(巡視)’라고 쓰인 깃발이 나와 동무가 되었다. |
ⓒ 김종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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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을 따라 걸었다. '순시(巡視)'라고 쓰인 깃발이 동무가 돼 줬다. 성 밖에서 비춘 조명등이 성곽을 넘어 나무마다 황금빛을 뿌렸다. 성곽 너머 거룩한 분노는 남강에서 활활 타오른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때 호남의 울타리였다. "진주가 없으면 호남도 없고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라는 말처럼, 진주성은 1차, 2차 전투 때 일본군을 막았다. 비록 2차 전투 때 졌지만 일본군의 기력을 소진시켜 호남이 모두 점령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영남포정사를 지나 공북문 쪽으로 향했다. 높이 7m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이 나왔다. 진주성 1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진주 목사로 임명돼 3800여 명으로 6일 동안 3만여 일본군을 물리친 제1차 진주성전투, 진주대첩의 영웅이다. 전투 중 적이 쏜 총에 맞아 전투 후 며칠 뒤 순국했다.
화려한 단청 무늬의 공북문을 지나자 성벽을 따라 왼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었다. 진주성 축성과 관련된 명문이 새겨진 돌이 2개가 있었다.
휴대폰 전등을 켜서 조심스럽게 비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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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 축성과 관련된 명문이 새겨진 돌.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흉터는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다. 진주성과 함께했던 이들을 있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어둠 속에서도 찾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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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熙 十九年(庚申年) 山陰馬 兵中哨 四川 昆陽 河東 丹城 咸陽 六官一哨"1860년 진주성을 개축할 때 축성 작업의 일부를 담당한 사람들을 표시한 것으로, "강희 19년 산음(산청) 마병의 중초인 사천, 곤양, 단성, 하동, 함양 등 여섯 개 관할 (구역 군사들)이 한 개의 초를 이루어 (쌓았다)"라고 적혀 있다.
진주성은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흉터다. 시간이 지나면 그날의 기억은 점점 흐려진다. 그러나 흉터를 보면 당시가 떠오른다.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흉터는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다. 진주성과 함께했던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어둠 속에서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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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석루 맞은편 커피숍에 걸린 푸른 초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하얀 말 그림이 진주성 밤 풍경을 구경하는 듯이 다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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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돌아 천수교를 건너 촉석루 맞은편으로 향했다.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푸른 초원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하얀 말 그림이 진주성 밤 풍경을 구경하는 듯했다. 얼음을 듬뿍 넣은 아이스 커피 한 잔을 들고 중앙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이들이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기 위해 맑고 하얗게 솟구치는 분수대에서 뛰어노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광장 주위에서는 밤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쉼터에 버려진 종이컵 3개는 정담을 나눈 이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깊고 느린 대숲 사이로 걸었다. 사각사각. 바람을 품에 안은 대숲에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줬다. 대숲에서 촉석루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음마저 씻어주는 시원한 풍경에 문득 진주에 가면 막차를 놓치고 싶다는 이광석 시인의 <진주에 가면>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진주에 가면 막차를 놓치고 싶다남강 다리 반쯤 걸어 나왔다 다시 돌아서서촉석루 강변 통술 거리로 발길을 내민다누구 기다려 줄 벗도 없는데···말술 두렵지 않던 50대술은 까마득한 여인처럼 내 고독을 키웠다달빛도 취해 비틀거리는 남강물에학춤을 추던 화인 월초유등꽃 사이로 잔을 흔든다진주의 밤은 이제 시작인데안주 하나 더 시켜놓고 자리 비운촉석루 대밭 바람 소리마산행 막 버스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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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국의 해변이 부럽지 않은 진주성 밤풍경으로 이 밤에 떠나보자. 막차를 놓치고 싶을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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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의 해변이 부럽지 않은 진주성 밤 풍경으로 떠나보자. 막차를 놓치고 싶을 듯한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와 개인 블로그 <해찬솔일기>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