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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6월 9일 오전 처음으로 사복이 아닌 환자용 수의를 입고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6월 9일 오전 처음으로 사복이 아닌 환자용 수의를 입고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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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재판을 할 것도 없이 사약을 받으라고 독배를 들이밀면 제가 깨끗이 마시고 이걸 끝내고 싶다."

복수의 매체를 통해 보도된, 어제오늘 화제가 됐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님, 아니 김기춘씨의 28일 재판 발언입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을 받느라 많이 힘드신 가 봅니다. 사약까지 운운하신 걸 보면요. 구치소 생활도 힘드시겠지요. 1939년생이시니 칠순을 훌쩍 넘긴 연로한 나이로 감방 생활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래도 사약이라니요. 아니 될 말씀입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망한 왕조의 도승지를 했다면 사약을 받았으니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하셨다고요. 안 됩니다. 지금이 왕조 시대도 아니거니와 한국을 대표하는 공안검사 출신이시자 법무부 장관까지 지내신 분이 그리 법체계를 무시해서야 되겠습니까. 나이를 얼마나 먹었던, 사회에서 어떤 지위를 누렸고 어떤 권세를 누렸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사약을 받겠다"는 그 정도 일념이라면 무슨 일인들 못 할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김기춘씨의 그 법정 발언을 두고 여론이 갈리고 있습니다. "그래, 사형이 마땅하다"는 의견부터 "종신형을 원한다"고까지 나름 천차만별(?)이란 얘기지요. 개인적으론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다 살아오면서 김기춘씨가 하신 일이 있어서겠지요.

김기춘씨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법정에서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들의 유형을요. 정말 억울해서거나, 최대한 판사의 양형을 깎으려는 의도에서거나겠죠. 과거 본인께서 그 '억울'한 공안사범이나 정치범, 양심수들에게 말도 안 되는 형량을 구형했으니, 그 속내도 훤히 꿰뚫어 보시리라 생각됩니다.

아, 그런 분이 한 분 더 있네요. 한창 재판 와중에 억울함을 호소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 말이지요. '왕조'시대에나 걸맞을 구시대적인 통치를 보여준 장본인들이시니 이 어찌 '환상의 파트너'라 불러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 어제 발언을 꼼꼼히 살펴봤더랍니다.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셨더군요. 작년 청문회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게 하나도 없으시더군요(관련 기사 : 김기춘이 미는 유행어, '없다·아니다·기억 안 난다')

거짓말도 정도껏, 이란 표현이 절로 나오더군요. 흰 머리가 는 것 빼고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에 '역시 김기춘이다'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만약, 입장을 바꿔 본인이 검사석에 앉아 있었다면 김기춘씨 같은 피고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내가 더 분발 해야겠구나'하는 의지를 더 불태우지 않았을까요. 김기춘씨의 주옥(?)같은 발언들이 딱 그랬 답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절감하시나요?

"정치적 사건을 형법의 틀에 넣어 자꾸 하려고 하니 수많은 증인을 부르게 됐다. 재판관에게 큰 폐를, 특검에게도 수고를 끼쳤다."

이 재판에 '정치적 배후'가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네, 역시나 '법비'의 원조 격이신 분의 발언다웠습니다. 과거 서로를 '선후배'라 불렀을 판사와 특검 검사들을 위하는 듯한 모양새까지 취하셨으니 말이죠.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답니다. 지금은 '박근혜 (왕조)시대'가 아니거든요.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김기춘씨의 작품이었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당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내정된 그런 시대거든요.

"나이가 들어 삼사일 일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니 제가 대신 말씀드리지요. 네, 지금은 '문재인 시대'입니다. 그 '문재인 시대'의 배후는 김기춘씨를 법정에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촛불 시민'들이고요. 그러니 애먼 판사, 검사 괴롭히지 마시고 '정치적 배후' 운운하는 꼴사나운 증언은 그만두셔야 할 겁니다. 

또 "비서실장은 대통령 수석비서관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도 하셨다고요. 말 한번 잘 하셨습니다. 네, 비서실장은 그런 자리가 아니지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런데 그런 '위법'한 짓을 하셨기 때문에 구속도 되시고, 지금 그 자리에 계신 겁니다. 아무리 기억력이 떨어지셨기로 비서실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까먹으셔야 되겠습니까.

사실 어디 수석비서관뿐이겠습니까. 지난 14일 열린 재판에서는 김기춘씨께서 지난 2014년 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막기 위해 서병수 부산시장에게 친히 전화까지 걸어 '압박'을 가하셨다는 증언이 나왔지 않습니까. 증인으로 출석한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입을 통해서였죠. 이래도 계속 발뺌을 하시겠습니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떨어진 권력인 김기춘씨를 이제 누가 비호해 주겠습니까. 이제 본인께서 호되게 휘둘렀던 청와대 내 부하들이, 예전 직장동료들이 등을 돌릴 차례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사과라도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월호 유족들은 물론이요, 김기춘씨 밑에서 일하다 유명을 달리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에게 말이지요.

김기춘씨, 건강하셔야 합니다

"도승지라 표현하고 사약을 받고 싶다고 하니 국민의 매를 스스로 버는 꼴이다. 울먹일 용기가 있다면 하루하루 국민들께 참회하고 사십시오. 죽을 용기는 없고 입만 살아 있는 꼴이다."

누가 김기춘씨를 향해 이런 말을 남겼을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무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씨입니다. 오죽했으면, 보수 인사인 그도 김기춘씨에게 "입만 살아 있다"고 비아냥댔겠습니다. 29일 신동욱씨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처럼, 앞으로 절대 울먹이지 마십시오. 그렇게 거짓말로 일관할 거라면, 절대 비겁해지지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야 세상의 흔한 '법비'들이 뭘 보고 배우겠습니까. 

안타깝게도, 김기춘씨께서는 이미 비겁해지셨더군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 지시를 한 적도,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하셨더군요. 게다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청와대 실무진에게 책임을 돌리기까지 하셨다고요. "사약을 받겠다"는 분이 그리 비겁해야 쓰겠습니까. 1939년생이신 김기춘씨까지 그리 비겁하니, 이 한국사회에서 어른이 없다는 얘기가 만연한 겁니다.

부디 당당해지십시오. 되도록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진실이 아닌 사실만을 말하시면서 정정당당하게 재판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꼭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만난 적 없다", "모른다"던 최순실씨와 함께 저지른 죄만큼 죗값을 치르십시오.

몸이 아프다, 연로했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고요. '촛불 시민', '촛불 국민'들이 2017년의 시대정신을 뒷받침하는 배후거든요. 이르면 7월 안으로 판결이 날 것 같더군요. 그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밥 잘 챙겨 드시고, 운동시간 잘 지켜 건강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교도소에서 군 복무를 하며 옆에서 지켜본 결과, 수감자들은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밖에 없더라고요. 다음 재판에서 또 어떤 발언들을 역사에 남기실지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태그:#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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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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