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법정 들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유영하 변호사 : "갑자기 서류 증거 조사 들어가게 되면 저희가 시간상으로 빠듯하지 않나. 아울러 주 4회 재판 다시 말씀드린다. 피고인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원석 부장검사 : "오래전에 주 4회 재판을 받아들이기로 하셨는데 다시 또 꺼내니 유감이다. 변호인들께서 전직 대통령인 의뢰인을 위해 미리 준비하셔야지, 저희가 '몇 만 쪽 언제 봅니까, 언제 준비합니까'를 몇 달째 들어야 하나."

김세윤 부장판사 : "자 시간이 없다."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법정, 또 다시 변호인단과 검찰의 논쟁이 벌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를 둘러싼 공방은 아니다. 또 다시 절차 문제다. 전날도, 그 다음날도 비슷한 상황은 되풀이되고 있다. 재판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양쪽은 매번 절차 진행을 두고 최소 30분 이상 다툰다. 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가 종종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개입할 정도다.

매번 불평불만 터뜨리는 변호인

시작은 매번 똑같다. 재판이 열리자마자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이미 합의를 거쳐 6월 12일부터 주4회 재판을 진행 중인데, 이들은 아직도 같은 말을 반복한다. "구속기간에 맞춰 재판을 모두 끝내긴 힘들다, 피고인을 석방하고 심리해도 되는 게 법의 취지 아니냐"며 천천히 진행하자는 얘기다. 10월 중순경 박 전 대통령 구속기간이 끝나기 전에 심리를 마치겠다고 재판부가 진작 설명했는데도 늘 이런 식이다.

때론 협박 아닌 협박도 나온다. 지난 7차 공판 때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이 제출한 증인 신청 목록을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합의되지 않은 증인신문은 못 받아들이겠다. 430명 모조리 법정에 세워 신문하겠다!"

검찰과 국정농단의혹 특별검사팀 조사 내용 중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제3자의 진술은 증인신문을 거쳐야만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형사절차를 '지연작전'에 악용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변호인단은 지금도 검찰 쪽 증거 채택에 상당수 부동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17차 공판 때 그나마 줄어든 숫자가 "200명 정도(유 변호사)"였다.

'불통 대통령'은 변호인단 내부마저 '불통'인 걸까.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서로 상황 공유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27일 이상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구속기간이 연장됐다고 왜 통보를 안 해주나,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구치소로 통지됐다"고 답하자 그는 뻘쭘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 변호사가 뭐라고 하건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변호사와 계속 대화를 나눴다.

법리 공방보다 엉뚱한 장면이 많은 이 법정드라마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은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다. 첫 공판 때만해도 방청권 경쟁은 치열했다. 하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법정을 채우는 사람들은 이른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김세윤 부장판사가 "피고인은 입정해달라"고 할 때부터 이들은 앉은 채로 고개를 뺀다. 박 전 대통령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어떻게든 목을 늘려본다. 그가 실핀으로 머리를 올린 채 등장하면 몇몇은 흐느껴 울기도 한다. 지난 20일에는 한 남성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사랑고백 멈출 줄 모르는 지지자들

5월 23일 오전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이 열리는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앞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5월 23일 오전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 첫 재판이 열리는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앞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대통령님께 경례!"

그는 재판장의 퇴정 명령에도 "대통령님께 인사하는 데 무슨 지장이 있느냐, 대한민국 만세, 애국 국민 만세입니다, 민족의 혼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외친 뒤 법정 밖으로 나갔다. 지지자들의 사랑고백은 재판이 끝나면 더욱 격렬해진다. 이들은 법정을 떠나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소리친다. 사랑고백은 법원 밖에서도 멈추질 않는다.

지난겨울, 촛불로 광장을 채운 시민들이 원한 것은 박근혜란 개인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손가락질하려는 게 아니었다. 대통령이 정말로 국민에게 위임받은 주권을 함부로 '비선실세'에게 넘겨 그의 사익을 추구하도록 했는지 알고 싶었다. 피땀 흘려 이룩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정말로 그것밖에 안 되는지 알고 싶었다. 진실을 원했다. 그 열망이 대통령을 파면시켰고, 명명백백하게 책임을 따지겠다며 법정에 세웠다.

그런데 정작 똑같이 '진실을 밝히자'면서 변호인단도, 지지자들도 법정을 '막장드라마'로 만드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드라마가 도대체 몇 부작으로 끝날지 짐작 가지 않는 것도 큰일이다.


태그:#박근혜, #유영하, #박사모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