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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사회를 사는 현대인의 무심한 자기착취와 피로, 그로 인한 우울증에 대해 쓴 <피로사회>의 저자 현병철은 <투명사회>에서 투명성을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라며 투명성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병철의 주장은 '투명함'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을 통째로 흔들어 놨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는 투명성을 요구한다. 특별히 정부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언제나 정부의 신용에 문제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국민에게 전혀 믿음을 주지 못해 왔다.

가까운 예로 박근혜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보며 온 국민이 눈물 흘릴 때 7시간 동안 뭘 했는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총리·장관·국정원장까지 분단위로 일정을 공개한다고 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변화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투명정부> 개빈 뉴섬 지음, 리사 디키/홍경탁 옮김. 항해 출판
 <투명정부> 개빈 뉴섬 지음, 리사 디키/홍경탁 옮김. 항해 출판
ⓒ 항해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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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정부>(유능한 정부는 비밀을 만들지 않는다)의 저자 개빈 뉴섬(Gavin Newsom)은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부의 특별한 노력을 촉구하는 정치인이다.

36세의 나이로 샌프란시스코 역대 최연소 선출직 시장 기록을 갖고 있고, 현재 캘리포니아 부지사로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그는 기업가적 사고방식을 가진 신세대 정부 지도자로 호평을 받고 있다.

개빈 뉴섬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없는 원인을 "정치인은 말한 대로 행하지 않으며, 재선이나 노리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시민들은 정치인의 위선에 몸서리를 치고 있기 때문에 투명함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치인은 늘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며, 공포 전술과 정치 공학, 속임수에 의존한다. 사람들은 위선에 몸서리를 친다." - 63쪽

투명성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는 현병철의 주장은 '타자의 시선을 받지 않을 개인의 권리'에 중점을 두었다. 즉, 포르노적 노출을 당하지 않고, 감시당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에 방점을 둔다. 반면, 개빈 뉴섬은 공공 데이터는 국민의 것으로, 투명성 강화를 위해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현병철과 개빈 뉴섬은 정부의 신뢰 부재 때문에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지만, 관심 대상이 다른 셈이다.

개빈 뉴섬은 공공 데이터는 국민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 데이터를 국민에게 기꺼이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정보는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정부 관료들은 공개해야 마땅한 데이터도 요청서를 작성해야 마지못해 제공한다. 그마저도 굵고 검은 줄로 가득한 자료들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행정정보공개청구가 유명무실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제한적으로 정보를 이용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데이터 공개로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정부 데이터를 개방하는 것은 당연히 옳은 것이라는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개빈 뉴섬은 정부가 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최소한의 데이터만 공개한다고 분통을 터트린다.

"국세청을 예로 들어봅시다. 지난 7년간의 내 정보를 찾으려는 데, 회계사를 찾아가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국세청이 나한테 알려주면 안 되나요?" - 78쪽

정부, 관료들의 특징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최소한의 데이터만 공개한다. 그들은 시민이 행정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왜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지', 청구인의 신원 등에 대해 상세히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검고 굵은 줄이 가득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들은 '적절한 선이 어디까지인지 결정'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그 과정은 느리고 애매모호한 데이터로 채워지며, 정보는 '마사지'라는 이름으로 제공자 입맛대로 가공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보통의 시민들은 공공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그런데도 관료들은 입으로는 '소통 행정'을 부르짖는다.

마침 <투명정부>를 읽고 있을 때에 평소 '소통 행정'을 입버릇처럼 떠드는 정찬민 용인시장이 시민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민원성 글에 단 댓글 때문에 한바탕 해프닝이 있었다. 정 시장은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이 배석한 개발업체의 민원에 대해 담당 국장에게 "해줄 수 있으면 해달라"고 말해서 중앙 언론에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다(관련기사 : "용인시장, 주상복합 심의 개입"...친구 부탁?).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에게 부정적인 댓글을 단 시민에게 "당신을 잘 안다. 지켜보겠다"는 말로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지켜보겠다"는 말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뜻이 천지 차이인 경우가 있다. 시민이 어떤 정치인에게 "지켜보겠다"고 했다면, 그것은 "당신이 했던 말들,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지켜보겠다. 앞으로 시민의 대표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살펴보겠다"는 말이다.

또한, 정치인의 정치행위가 시민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를 감시하겠다는 뜻이요, 행정 투명성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민이 '지켜보겠다'고 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참여와 견제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반면, 정치인이 시민에게 "지켜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협박이자, 소나기가 지나기만을 바라는 면피성 발언이요, 기만행위다. 박근혜는 탄핵 전 촛불집회가 계속되던 때에 "지켜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물론 청와대는 그 말을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라는 말로 포장했다.

하지만 촛불시민들은 박근혜가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누군지 예의주시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표결이 임박했을 때도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과 달리 청와대는 '지켜보겠다'는 말로 민심을 거부했다.

소통을 입으로 부르짖은 용인시장과 개빈 뉴섬의 다른 점은 디지털 패러다임이다. 구설수에 오른 정 시장은 입으로만 '소통'을 부르짖고, 투명성을 이야기했다. 그런 풍토에서 공공 데이터는 꽁꽁 숨을 수밖에 없다. 국민이 바라는 대로 사용할 수 없다. 반면, 개빈은 정치에 디지털 패러다임을 접복하여 '국민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해묵은 고정관념을 바꿨다.

그는 일방향적이며 상명 하달식인 위계적 통치 방식을 폐기했다. 평범한 시민이 직접 질문하고 소통해서 새로운 해결책을 도출하도록 행정과 정치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런 면에서 용인시장은 개빈 뉴섬이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홧김에 부적절한 댓글이나 다는 게 소통이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은 부끄러움까지 드러내는 투명성이다.

"공인에게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그들에게 멸시를 받는 것과 대중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감수하라고 요청하는 일이다." -93쪽

행정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정보의 모든 측면을 알고자 한다. 그래서 정부만이 아니라 소셜미디어 검색 등을 적극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단편적인 정보에만 의존할 수 있다는 점은 충격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검색 및 소셜미디어 사이트들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필터링한 정보만을 제공해서, 이용자가 특정 정보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통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의 소식은 점차 보여주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다.

상호 교류가 늘지 않고, 강제로 멀어지는 셈이다. 그런 점을 인식하여 좀 더 폭넓게 정보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교류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디지털 투명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투명정부 - 유능한 정부는 비밀을 만들지 않는다

개빈 뉴섬 지음, 홍경탁 옮김, 항해(2017)


태그:#투명정부, #투명사회, #개빈 뉴섬, #투명성, #용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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