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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6조 제2항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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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는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영화배우로 후에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배우로 데뷔하기 전 미스터 올림피아, 세계선수권대회 등 보디빌딩 대회에서 13차례나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우수한 보디빌딩 선수였다. 때문에 영화배우로서 경력도 대부분 근육질 몸매를 앞세운 액션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코만도(Commando , 1985),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 , 1984), 토털리콜(Total Recall , 1990)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5편까지 제작되며 인기몰이를 한 터미네이터는 그의 액션배우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준 영화다. 그런데 우락부락한 근육의 소유자인 그가 때로는 부드러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중 주니어(Junior , 1994)에서 그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근육덩어리 몸을 가지고서 임신과 출산 연기를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주니어는 남성임신을 소재로 한 영화다.

해마는 암컷이 산란관을 통해 수컷의 육아낭에 난자를 주입하면 수컷이 정자를 보내 수정시킨 후 2~6주 정도 임신기간을 거쳐 출산한다. 수컷이 임신·출산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 대부분의 생명체에서 임신과 출산은 암컷이 담당한다. 주니어는 이처럼 여성만이 가능한 임신과 출산이 남성에게서 일어난다는 다소 엉뚱한 소재를 통해 신선한 감동을 준다. 특히 근육질 몸매로 통념적 남성성의 전형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임신과 출산을 하는 남성으로 캐스팅해 남성과 임신·출산이라는 대립적 요소를 더욱 부각시켰다. 이렇듯 남성임신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현실에서 임신·출산은 생물학적 여성에게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2010년 토마스 비티(Thomas Beatie)라는 미국의 남성은 실제로 세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 그는 낸시 로버츠(Nancy Roberts)라는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다. 하지만 낸시 로버츠가 불가피하게 자궁을 적출하게 되자 아내 대신 자신이 임신·출산을 한 것이다. 도대체 토마스 비티는 어떻게 임신·출산을 할 수 있었을까. 그는 트랜스 젠더 남성이었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었지만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던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수술 과정에서 자궁 등 내부 장기는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임신·출산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내인 낸시 로버츠는 생물학적 여성으로 정자를 생성할 수 없어 정자은행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토마스 비티의 출산은 세계 토픽이 되었다. 모두들 남성인 그가 출산하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내부 장기를 그대로 둔 FTM(femail to mail) 트랜스 젠더인 그가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후 남성의 임신·출산이라는 미스테리는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대중의 놀라움과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중은 출산 후에도 그들의 가정에 계속하여 관심을 가졌다. 대중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세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남성 아빠, 여성 엄마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가족)에 충실한 토마스 비티의 가족에 계속하여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은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성전환 수술까지 한 그에게 모성이 남아있는지, 남아있다면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대중에게는 남성에게도 모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신기한 현상이었다.

태아는 10달 동안 여성의 자궁에서 자란 후 태어난다. 태어난 후에도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모유를 먹고 자란다. 물론 근래에는 분유가 발달하여 모유에 의지하지 않고도 신생아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수 만년 인류의 역사에서 젖먹이 아이의 식사는 언제나 엄마의 책임이었다. 때문에 어린아이의 양육자는 엄마라는 인식이 은연 중 집단무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성의 사전적 의미는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 하지만 옳지 않은 해석이다. 모(母)는 어머니를 뜻한다. 그러나 이를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여성으로서의 어머니 보다는 아이를 키우는 자로서의 어머니로 해석해야 한다. 신생아를 유기한 여성에게 모성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남성이라도 아이를 정성 것 키운다면 그에게 모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모성은 "아이를 기르는 자의 성질이나 본능"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모성을 여성의 것으로 해석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임신·출산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에 여성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남성이 임신·출산에 도움을 준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출산과정이 종료되면 신생아는 엄마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실제로 근래에는 모유가 생성되지 않아 분유로만 자라는 아이들도 많다. 모유가 신생아의 면역력 등 건강에 미치는 영향, 엄마와의 관계가 아이의 정서발달에 미치는 영향 등은 아이에 대한 엄마의 중요성을 나타낼 뿐 육아를 여성이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 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모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육아의 모든 책임이 여성에게 지워지게 되고 만다.

이처럼 모성은 성중립적 개념이 아니다. 모성은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여성과 어머니에 대한 시각, 아니 우리 사회가 여성과 어머니에 대해 요구하는 모습이 반영된 개념이다. 모성은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슈퍼맘은 가사 일을 하면서도 직장생활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여성을 뜻한다. 반면 슈퍼대디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가사 일을 분담하는 남성을 뜻한다. 가사와 생업은 별개의 개념인데 둘 다 수행하니 슈퍼맘이고 슈퍼대디라는 것이다. 슈퍼맘에는 "집안일이나 하는 엄마가 사회생활도 잘하네"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반면 슈퍼대디에는 "돈 버느라 고생하는 남자가 집안일도 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맘(엄마)과 대디(아빠)에 무언가 뛰어나다는 뜻의 수식어 슈퍼가 붙었다면 엄마, 아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를 지칭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슈퍼맘과 슈퍼대디는 엄마, 아빠의 역할 외 다른 역할까지 잘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슈퍼맘과 슈퍼대디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게 된 것은 가사노동과 생업을 엄격히 구분하고 가사노동은 여성, 생업은 남성의 역할로 구분지은 성분업이라는 사회통념이 작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하다. 슈퍼맘, 슈퍼대디에는 여성의 전유물, 여성의 책임으로 인식된 모성이 전재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에게 모성보호를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과한다. 대부분의 헌법학자나 법률가들은 헌법의 모성을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가지는 성질이라 해석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하였듯 모성이 곧 여성의 성질을 뜻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큰 모성이라는 용어를 헌법이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임신·출산이라는 행위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국가는 임신과 출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 된다. 만약 출산 이후 아이들의 성장을 뜻하고자 한다면 "국가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장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 그만이다.

법은 당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헌법 역시 법이므로 만들어질 당시 사회의 모습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모성보호 규정은 현행 헌법인 1987년 9차 개헌에서 도입되었다. 이전 헌법에는 혼인과 가족에 관한 규정만 있었을 뿐 모성보호 규정은 없었다. 1987년 이전까지 임신·출산 그리고 자녀의 양육은 당연히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보호의 필요성도 없었다.

그렇기에 9차 개헌에서 모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여권신장의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9차 개헌 역시 임신·출산 그리고 자녀의 양육이 여성의 일이라 여긴 근본적 한계는 극복하지는 못한 것이다. 9차 개헌 후 30년 가까이 지났다. 이제 우리사회는 더 이상 임신·출산과 양육을 여성만의 일이라 보지 않는다. 헌법 제36조 제2항은 수명을 다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모성, #성평등,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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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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