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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시내에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 행사인 6.10민주난장 동학농민군풍물굿 대행진에 참여하고 있었다. 학교 후배인 오한숙희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강경화를 배제하려는 야당과 언론들에게 우리가 뭐라고 좀 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지 않아도 사방에서 '우리 여자들이 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강경화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와 이화여중, 이화여고 동기·동창이다. 같은 반을 한 적은 없지만 6년을 한 캠퍼스에서 생활했다. 담임도 오랫동안 나와 내 짝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무난한 외모를 가진 나를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고를 졸업한 지 30년 가까이 지난 뒤에 뉴스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하는 그녀를 보고는 단박에 동기임을 알아차렸다. '엇? 저 친구가 영어를 잘 했던 모양이네? 조신하고 얌전하더니...' 반가움도 잠시, 나는 바쁜 내 일상에 묻혀 그녀를 잊었다.

언니들의 이유 있는 강경화 구하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친후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다.
▲ 머리 쓸어올리는 강경화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친후 머리를 쓸어올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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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년이 흘렀다. 산 속에 살면서도 뉴스를 제대로 챙겨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사는 나는 SNS 단체 대화방에서 외교부 장관 후보로 그녀의 이름을 들먹이며 환호하는 글을 보았다. '우와, 그 친구가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었구나. 그동안 유엔에서 근무하고 있었네?' 그리고 감탄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강경화를 발탁한 게 아니라 그 이전인 코피 아난 전 UN 사무총장이 발탁했다고? 유엔총장 3인이 인정한 최고의 인물이며,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실력파라고? 사무총장 정책특보였어? 아이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술자리에 예쁜 여군을 보내라는 상사의 명령에 전투복을 입혀 내보냈다는 피우진처럼 '핵사이다' 인사가 아닌가.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며 오한숙희가 새벽에 보낸 성명서 메일을 스마트폰으로 열어봤다. 수년 전 스마트폰 따위는 필요 없다고 선언했을 때 말없이 눈빛을 교환하며 나를 끌고 가 스마트폰을 개통해준 아들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수정 메일을 몇 번 주고받은 뒤 '무서운 언니들'이 포진해 있는 몇 개의 단체 대화방에서 곧바로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 이대생들의 달팽이 민주주의 시위 때 지지 서명을 받아낸 후배들은 이번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특정 일간지에 이대생들의 시위 해산을 종용하는 광고가 게재됐을 때, 우리는 고립되어 있는 이대생들을 구하기 위해 즉각 서명을 시작했다. 며칠 만에 3천 명의 서명을 받았고, 이를 최경희 총장에게 전한 바 있다.

그 인연으로 우리는 최순실이며 정유라의 비행들을 살금살금 알게 되었고, 그것을 모 언론사에 제보하며 최순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강경화를 도울 일이 또 터진 것이다. 세상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두 시간 여 타고 가는 기차 안에서 눈을 좀 붙이려던 계획을 접고, 성명서 내용을 주고받으며 수정하고 내용을 공유했다. 단체대화방 여러 곳에서 서명을 받으니 삽시간에 220명을 넘겼다. 이 정도라면 단 하루 동안만 구글을 통해 온라인 서명을 받아도 승산이 있다. 일요일 자정까지 받아 월요일 아침에 공개해야지. 예전처럼 장소를 얻어 기자회견을 열 필요도 없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순식간에 수천 명과 소통이 가능하지 않는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얼굴마담'될 거라고? 몽니도 이런 몽니 없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회와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라면 먼저 대통령께서 세분(강경화, 김상조,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4당 원내대표회담에서 한국당이 빠진 상태에서 추경을 심사하기로 했다는 것에 대해 제1야당인 한국당이 빠진 상태에서 추경에 대한 법적 요건을 못 갖춘 것이다”고 말했다.
▲ 정우택 "국회와 원만한 소통 위해 대통령이 먼저 결자해지해야"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국회와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라면 먼저 대통령께서 세분(강경화, 김상조,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회의장과 4당 원내대표회담에서 한국당이 빠진 상태에서 추경을 심사하기로 했다는 것에 대해 제1야당인 한국당이 빠진 상태에서 추경에 대한 법적 요건을 못 갖춘 것이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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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 책임있는 정당이 아니던가. 그래, 반대해라. 국민이 예전처럼 '묻지마 지지'를 해줄 것 같으냐? 새벽 3시에 마감한 구글 온라인 서명을 포함에 17시간 만에 서명 인원 3천 명을 훌쩍 넘겼다(관련 기사 : "무서운 언니들이 나섰다, 강경화를 일하게 하라"). 핵사이다 인물을 귀신처럼 알아본 무서운 언니들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강경화가 '얼굴마담'이 될 뿐이란다. 김이수, 김상조, 강경화를 임명하면 협치에 '파국'을 맞을 거란다. 몽니도 이런 몽니가 없다. 국민의당,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강경화 후보자는 인권 분야나 분쟁 지역에서 합의를 이뤄내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평이 자자하다. 지금 '뭣이 중할까'.

박근혜 정부 아래 외교부는 어땠는가. 위안부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10억 엔에 불가역적 합의를 밀어붙이지 않았던가. 이제 그런 자들의 시대는 끝이 나야 한다. 역사 의식도 없고, 공감 능력도 없고, 정치 능력도 없는 모든 관료와 박근혜를 앞에 내세워 국회의원 배지를 단 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제 그만 입을 다물라.

당신들이 망쳐 놓은 그 자리에 강경화가 들어가 일하게 하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다면, 국민은 다음 총선에서 당신들의 자리를 허하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언니들이 날카로운 눈매로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오른쪽부터) 박옥선, 이용수, 이옥선 할머니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오른쪽부터) 박옥선, 이용수, 이옥선 할머니가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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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전문 : 나라의 정상화를 바라는 여성들이 국회와 언론에 고함

강경화 외교부 장관 지명자는 하루빨리 임명되어 세계무대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뛰어야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의 역대 외교부 장관 10명이 이미 역량과 자질이 충분하며 당면한 외교 사안 해결의 적임자라고 지지를 천명했다.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일부 흠결도 외교부 장관으로서의 역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게 국민정서이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은 협치를 내세우며 강경화 지명자를 반대하고 나아가 임명을 강행할 경우 추경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문성을 의심하고,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며, 의혹을 부풀리면서 정치 협상의 제물로 삼고자 하고 있다.

국민의 이름으로, 자유한국당에게 묻는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외교식물국가를 만든 게 누구인가. 당신들이 몸 담았던 집권여당의 책임이 가장 크지 않은가.

바른정당에게 묻는다. 창당의 동기가 집권여당으로서의 대 국민 반성이라면 새누리당이 죽여 버린 외교의 동력을 살려내는 일에 적극 동참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국민의당에게 묻는다. 진정 '국민'의당 이라면 국민의 입장에 우선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은 지금 북핵과 사드와 일본의 무시 앞에서 불안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국민들이 강경화 지명자의 전문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구한말에 비길만큼 심각한 국가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국격의 조속한 회복과 국익을 최대한 담보한 외교적 해결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민의 정서를 거스르면서 과연 국민의당이라 할 수 있는가.
국회에 요구한다.

지명자의 능력과 자질에 초점을 맞춰라. 국가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를 놓고 야당의 존재감 과시를 위한 뒷거래의 희생제물로 취급하는 행위는 주권자 국민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주권의 위탁운영자에 불과한 자신들의 위치를 망각한 것이다. 국민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에 요구한다.

성인지 감수성에 입각한 보도인지 성찰하라. 강경화 지명자의 공공연한 낙마설에 편승하여 의혹을 부풀리거나 기정사실화하기보다 성차별 없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검증인가를 검증하는 것이 '국민의 공기'로서 마땅한 자세이다.

지금은 2017년, 촛불혁명으로 나라를 구하고 세계사에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록한 우리 국민은 그 자체가 시대정신이다. 강경화 지명자의 청문 보고서 채택여부는 야당과 언론이 이러한 국민의 수준에 부합하는지 국민이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숨 가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적임자를 놔두고 기회를 놓친다면 국민은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강경화를 지금 당장 임명하여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오늘부터 뛰게 하라.

2017. 6. 12

이이효재 외 나라의 정상화를 바라는 여성 일동



태그:#강경화, #외교부장관, #청문회,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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