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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사고로 인해 스크린도어 수리공 '김군'이 사망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꽃다운 나이에 억울하게 숨져간 젊은이에 대한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려 사고의 의미를 되새기고 재발방지를 다짐하고 있다. 언론도 특집기사를 쏟아내 사고 이후 서울지하철이 과연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우리의 뇌리에 잊혀진 사람들도 있다. '김군'같은 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갈 몫을 가로채 자신들의 배만 불렸으며, 비정규직에게 일을 떠넘기는 바람에 사고를 불러온 원흉으로 찍혀 퇴출된 '전적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수십년 간 서울메트로에 근무하다 외주사로 옮겨온 그들이 당시 언론에 비쳐진 모습은 '김군'이 월급 144만원을 받을 때 무려 440만원이나 받는 '귀족' 노동자였다.

또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업무도 제대로 모르고, 툭하면 점심시간에 술을 마시거나 서울둘레길을 걷는 등 딴짓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언론은 이들에게 '메피아(메트로+마피아)'란 낙인을 찍었다.

사고를 미연에 막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서울시는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스크린도어(PSD) 관리 업무 등 지하철 안전업무 인력을 전부 직고용했다. 그 와중에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지하철 양 공사의 전적자 182명은 작년 6월 30일부로 퇴출돼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쫓겨났다.

전적자들은 전적 당시 서울메트로의 약속을 근거로 "직고용하고 정년을 보장하라"며 저항했고, 서울시는 "법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퇴출을 강행했다. 전적자들은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은성PSD 전적자들이 작년 7월 7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서울메트로가 고용승계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은성PSD 전적자들이 작년 7월 7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서울메트로가 고용승계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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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일로 내몰린 전적자들... 야간 능 경비 하는 사람도

구의역사고 당시 숨진 '김군'이 소속됐던 은성PSD 출신 전적자 최춘재(61)씨는 퇴출 이후 하던 막일을 최근 그만뒀다.

다른 전적자 한 명과 같이 아침 일찍 인력회사에 가서 그날 그날 주어진 일을 하는 건데 너무 위험하고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집이나 아파트 철거하면 나오는 철판이나 함석을 정리하는 건데, 날카로운 철물들이라 자칫하면 다칠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체력적으로 힘들어 몇 달 하다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퇴직금과 실업급여를 합치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최씨는 "퇴직금은 서울메트로를 나올 때 이미 중간정산을 받아 쓴데다, 이번에 은성PSD에서 받은 퇴직금은 1600여만에 불과했다"며 "실업급여도 이제 다 끊어졌고 생활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대부분 60대 전후인 전적자들이 하고 있는 일은 공사장 막일. 아파트 경비 자리를 얻은 사람은 다행이다. 야간에 옛 왕들의 능 경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최씨는 그럼 어떻게 '메피아'가 됐을까. 직접 물어봤다.

- 서울메트로에서 은성PSD로 언제 전적했나.
"2011년 12월 1일자로 왔다."

- 잘 다니던 서울메트로에서 왜 작은 외주사로 옮겼나.
"정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월급은 지금의 65%만 주되 정년을 2-3년 늘려준다는 말만 듣고 솔깃해 옮겼다. 지금 와서 보면 그걸 믿은 게 큰 실수였다."

- 비정규직은 144만원 받을 때 전적자는 440만원이나 받은 건 불평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단순 비교하면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 440만원은 평균 월급이 아니라 최대 액수다. 설사 그렇다 해도 경력 40년이 다 돼가는 사람 월급으로 그게 그리 많은 건가. 그리고 우리와 갓 들어온 직원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정규직이 적게 받은 건 맞지만, 우리가 빼앗아 간 게 아니다."

- 전적자들은 일을 하지 않고 비정규직에게 다 떠넘겼다는 얘기도.
"메트로에선 기계 일을 했는데 옮겨서는 스크린도어 일을 해야 하니 처음엔 힘들었던 게 맞다. 그러나 배워가며 일했고 오히려 우리가 새로 들어온 비정규직에게 일을 가르쳐 줬다."

- 언론은 왜 전적자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을까.
"겉으로만 보면 전적자들이 비정규직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한 봉급을 받는다. 전적자들이 비정규직의 몫을 빼앗아가다 보니 이런 사고가 유발됐다는 식으로 몰아간 거다. 이렇게 써야 선악구도가 명확해지지 않나. 근무 태만과 관련한 일들은 회사가 미운털 박힌 사원들에 대해 미행사찰로 얻은 정보를 언론에 제공한 결과다."

- 본인은 여전히 메피아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잘못이라면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순응해서 자회사로 옮긴 것뿐인데, 그게 왜 잘못인가. 우린 희생양이고 진짜 메피아는 은성PSD 대표와 임원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6월 16일 시청청사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관련 후속 대책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년 6월 16일 시청청사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관련 후속 대책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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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자 "월급 깎이고 외주사 옮긴 것, 약속했던 정년 연장 보장해야"

작년 7월부터 길거리로 내쫓긴 은성PSD 전적자 36명 중 33명은 곧바로 서울메트로를 상대로 복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당시 제기한 소장에서 "우리는 서울메트로의 경영합리화 방침에 부응해 외주사로 나간 사람들"이라며 "메피아로 매도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시 서울메트로는 외주사가 파산하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전원 고용승계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은성PSD로의 전적에 동의했다"며 퇴출 조치가 부당함을 호소했다.

은성PSD 외 전동차경정비, 모터카, 역무, 구내운전 등을 맡은 외주사들의 전적자들도 속속 소송에 가담했다.

전적자들은 여전히 퇴출 조치의 부당함을 호소하면서 그간 못 받았던 임금을 지불하고 당초 연장해줄 것으로 약속했던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인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서울메트로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이런 가운데 서울메트로는 작년말 퇴출된 전적자 중 60세가 되지 않는 29명에게 복귀를 권유하는 재임용통보를 내린 적 있다.

이 가운데 8명은 실제 외주사로 나올 때 받은 명예퇴직금 5000만원을 반납하고 메트로에 돌아갔다.

그럼 나머지 전적자들은 왜 돌아가지 않았을까.

최춘재씨는 "퇴출된 전적자들은 대부분 나이가 이미 60세 정년 가까이 된 사람들"이라며 "메트로가 당초 약속한 2-3년 정년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명퇴금을 반납해가면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돌아간 사람들도 대부분 지금은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정년연장 형평성 논란... 법적인 판단 받아보겠다"


결국 가장 중요한 쟁점은 서울메트로가 당초 제시한 '외주사 이동시 정년 2-3년 연장' 약속이다.

메트로는 이들을 받아들이더라도 '정년 60세'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전적자들은 정년이 연장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미 60세가 넘은 사람도 있는데다, 외주사로 가면서 깎인 급여를 회복하려면 더 근무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적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김기덕 법무법인 <새날> 대표는 "전적자들의 퇴출 사태는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전적자들을 메피아로 매도하는 언론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 결과로 빚어진 것"이라며 "서울시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구제할 수 있는 만큼 판결이 나기 전에 전적자들을 받아들이는 게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이야말로 그 사이 겪을 노동자들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무책임한 말"이라며 "잘못 됐다고 판단했을 때 바로잡는게 맞다"고 말했다.

우형찬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교통위원회)는 "퇴출을 강행하는 바람에 전적자들은 불명예퇴진이라는 한을 떠안게 됐고, 시가 재판에서 질 경우 금전적 보상으로 인해 세금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며 아쉬워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 지하철 업무를 총괄하는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오마이뉴스>와 가진 통화에서 "서울메트로의 정년은 명확히 60세로 돼 있는데 전적자들의 정년만 연장해주는 게 맞는지 형평성 논란이 있어서 사법적인 판단을 받아보기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사법적 판단에만 기대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자세가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그분들의 손을 들어주면 금전적으로 보상하든 특수채용을 하든 사후에 구제할 방법이 있지만, 그들을 일단 채용해 놓고 나중에 반대의 판결이 나오면 시 입장이 곤란해진다"며 "우선 1심 결과라도 받아봐야 향후 대응방향이 서지 않겠냐"고 말했다.


태그:#전적자, #메피아, #박원순, #구의역사고, #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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