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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내정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김 후보자의 공약으로 설립된 혁신학교에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보낸 지난 시간은 내 인생의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김 후보자는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후 선출된 최초의 진보교육감으로, 나는 그가 구현해낸 진보적 교육의 혜택을 받은 첫 세대다. 교육계 진보 진영의 선봉장이었던 김 후보자는 '혁신학교'라는 새로운 공교육 모델을 제안했다. 그의 당선으로 혁신 초·중·고등학교 여럿이 만들어졌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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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경쟁과 입시만을 위한 공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을 도모하는 교육 방식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나는 2012년에 혁신고등학교(경기도 용인시 흥덕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내가 입학하던 해에 이 학교는 비로소 세 개 학년을 모두 채워 온전한 학교의 형태를 갖췄다. 김상곤의 진보 교육은 이렇게 작은 발걸음으로 시작했다.

혁신초·중·고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것은 단연, 고등학교였다. 혁신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동네 주민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할 정도의 기대를 받았지만, 고등학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3년은 대학 입시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시기이고, 이 기간에 학생으로서의 덕목은 오직 '공부'에 맞춰진다. 고등학교의 이름값, 그 안에서 쌓아 올린 내신, 스펙 등 모든 것이 대입의 당락을 결정한다. 학생에게나 학부모에게나, 고등학교는 가장 예민한 시기가 아닐 수없었다. 수능에 모든 것이 맞춰진 고등학교 교육을 '혁신'한다고 하면, 대학 입시는 포기하라는 말 아닌가!

내가 '그 중요하다는' 고등학교 시기를 이 혁신학교에서 보내기로 결심한 맥락은 꽤나 다층적이었다. 그중 나를 이러한 선택으로 이끈 가장 주요한 이유는, 지루하고 따분하면서도 답답하고 경쟁적인 학교생활을 그만하고 싶었다는 데 있다. 교과서를 넘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싶었고, 그리고 학교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넘치게 눈부신 경험들을 선사했다.

지난 3년을 온전히 전달하자면 100페이지짜리 논문을 하나 써내도 모자랄 듯하지만, 짧게 전한다.

내가 '혁신학교'에서 배운 것들

혁신학교인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에서 '공정무역'을 주제로 모둠활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혁신학교인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에서 '공정무역'을 주제로 모둠활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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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교장공모제도'로 '선발된', 학교 현장에서 교사로서의 경험이 풍부한 젊은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매일 등굣길 교문 앞에는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전교생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주셨다.

선생님들은 열정적이셨다. 같은 수업을 하더라도 매번 다르게 전달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셨다. 수업 시간에는 이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가치들, 민주주의, 인권, 노동, 평등의 가치를 일상적으로 알려주시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것의 가치는 지난 3년 내내 모든 학교생활 속에서 배워온 개념이었다.

학생들은 칠판을 보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처음에는 꽤나 쑥스러울 수 있는 책상 배치이지만, 이 학교에서 3년을 보내면 짝꿍이랑 마주 보고 않는 것 정도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모든 과목에서 이루어지는 모둠 수업은, 그 어떤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목표했다.

친한 친구 몇몇이 모여 소규모로 떠나는 수학여행, '백두대간 등반'이라는 흥미로운 처벌(?) 방식, 자율성이 보장되었던 학생회, 졸업할 즈음에 만들어졌던 협동조합 매점... 모든 면에서 새로운 학교였고, 학생들은 그 새로움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성장했다.

이토록 독특한 학교에서 보냈던 3년 그 자체는, 삶과 가치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다. 주입식 가치 지향이 아니라, 스스로 내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할 가치들을 찾아냈다. 시야를 열고 보니, 세상에는 대학 입시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너무도 많을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을 좇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고, 이 맛을 보지 못한 또래 학생들에 대해서는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게 됐다. 경기도의 혁신 교육은 내 인생에서 너무나 큰 혜택이었고, 이 경험을 모두가 누리길 원했다. 하지만 이는 관내 모든 학교가 혁신 학교로 바뀌어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대학 입시의 영향으로 점점 더 보수적이게 될 수밖에 없는 고등학교 교육 터전에 큰 기대를 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혁신교육'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때까지

김상곤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대표적인 진보성향 인사로, 교육계 내에서는 '혁신의 대부' 내지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대영초등학교에서 열린 교육정책 간담회에서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문재인 후보와 나란히 입장하는 모습.
 김상곤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대표적인 진보성향 인사로, 교육계 내에서는 '혁신의 대부' 내지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대영초등학교에서 열린 교육정책 간담회에서 당시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문재인 후보와 나란히 입장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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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후보자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예상보다 더 파격적인 교육 개혁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저 진보 교육감의 공약 중 하나였고 몇 학교만의 정체성을 나타냈던 '혁신교육'이, 이 나라 전반의 교육 기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교육이 '정상의 것' '보통의 것' '일반적인 것'이 될 때, 무엇이 기존의 것이고 무엇이 혁신적인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흐려질 때, 저기 저 약간은 촌스러운 이름을 가졌던 '혁신교육'이라는 단어는 사라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저는 혁신학교에 다녀요"라고 말하면, "그게 뭐야?"라는 물음이 항상 되돌아왔고, 이 개념을 주변에 설명하기 급급했다. 그 정도로 낯선, 특히나 고등학교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더 낯선 개념이었다.

시대가 변했고, 상황은 달라졌다. 교육대학교 4학년인 우리 언니가 지난주부터 혁신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고 있다. 교대 수업에서는 혁신학교의 사례를 아주 심도있게 공부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모든 실습 학교를 혁신 학교로 지정하는 데 이르렀다고 한다.

교생 실습을 하고 있을 언니 같은 사람들이 진짜 선생님이 되어있을 가까운 미래, 혁신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들이 어른이 될 미래, 그리고 진보 교육의 선봉장에 섰던 김상곤 전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이 될 '현재'가 이루는 조화로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내게는 너무나 많다.


태그:#김상곤, #김상곤 후보자, #진보교육감,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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