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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스터(Gloucester)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세계적인 국립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 글로스터가 멀리 보인다.
 글로스터(Gloucester)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세계적인 국립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 글로스터가 멀리 보인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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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가끔 만나는 친척보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자주 만나는 이웃이 친척 이상으로 가깝다는 뜻일 것이다. 

80년대 중반 어린 딸을 데리고 이민 온 이후 시드니에서 주로 살았다. 따라서 나의 이웃사촌은 시드니에 많이 살고 있다. 그러나 시드니에서 3시간 조금 더 걸리는 곳으로 이사 온 이후 이웃사촌이 한두 명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아직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사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시드니에 살 때보다 더 자주 보는 이웃사촌이 있다. 복잡한 도시의 삶에서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흔히 요즈음 유행하는 힐링에 도움이 된다면 한 달이 멀다고 찾아온다. 우리도 덕분에 이곳저곳을 같이 다니며 즐긴다. 가지고 온 한국 음식으로 입맛을 돋우고 시드니 소식을 듣는 재미도 있다. 

지난 주말 시드니에서 푸짐한 한국 음식을 가지고 또 찾아 왔다. 아내는 배링턴 탑 국립공원(Barrington Tops National Park)을 가고 싶다고 한다. 배링턴 탑 국립공원은 넓은 지역이다. 따라서 북부, 중부 그리고 남부로 크게 나눈다. 북부와 남부는 예전에 같이 가본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중부 국립공원을 찾아 나선다.

일요일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 길을 떠난다. 하늘에는 두꺼운 구름이 덮여있으나 비는 오지 않는다. 일단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동네, 글로스터(Gloucester)로 향한다. 가는 길은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경치가 좋은 이유도 있지만 같은 길로 왕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10여 분간 달린 후에 시골길로 들어선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높고 낮은 초원이 아름답다. 한국의 계절은 여름의 문턱이겠지만 이곳은 겨울의 문턱이다. 조금은 싸늘하고 선선한 바람이 함께하는 푸른 초원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얼룩무늬 젖소가 보인다. 숯을 칠한 것처럼 온몸이 검은 소도 보인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황갈색 소도 있다. 사람들은 인종 차별이라는 것을 하는데 소들은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하면서 가고 있는데 달걀을 판다는 큼지막한 글씨가 도로변에 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인 판매대다. 큼지막한 통 안에는 12개짜리 4판만 달랑 남아 있다. 아침이지만 거의 다 팔린 모양이다. 달걀을 차에 싣고 돈을 내려고 하는데 잔돈이 부족하다. 자동차와 핸드백을 뒤져가며 어렵게 정확한 금액을 통에 넣고 길을 떠난다. 믿고 파는 사람에게 10센트라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  

가끔 들린 적이 있는 글로스터 동네 입구에 있는 전망대에 차를 세운다. 동네가 한눈에 보이고 왼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눈을 즐겁게 한다. 작은 캐러밴을 끌고 온 노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다. 시골에 살면서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다. 시드니에서 왔다는 친구에게는 안됐다는 표정을 짓는다. 시드니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말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글로스터 시내에 들어선다. 동네 사람보다는 여행객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오토바이도 10여 대 주차해 있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 여행하는 것이다. 두툼한 가죽옷을 걸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다.  

시내를 벗어나 국립공원으로 들어간다. 비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들어가니 작은 강줄기가 도로를 막는다. 그러나 다리는 없다. 콘크리트 도로를 만들어 다리를 대신한다. 도로 위로는 강물이 흐른다. 자동차로 물줄기를 헤치며 강을 건넌다. 걸어서 건너려면 종아리까지 바지를 걷어 올려야 할 정도의 물이 흐른다. 굽이굽이 도는 강줄기 때문에 이러한 물줄기를 7번인가 8번 정도 건넜다. 비가 많이 오면 물에 막혀 국립공원 입구에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가끔은 길을 잃고 싶다

베링턴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산봉우리.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베링턴 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산봉우리.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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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세계문화 유산이라는 팻말이 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을 계속 오르니 너른 들판에 캠프장이 나온다. 추운 산속임에도 텐트를 치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 밤에는 무척 추울 것이다. 그러나 인적 없는 산속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밤하늘의 밝은 별을 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남다른 것을 찾아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국립공원 정상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정상이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분다. 폭포를 구경할 수 있는 산책길을 골라 걷는다. 조금 걸으니 세 갈래 길이 나오고 표지판이 있다. 폭포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깊은 숲속의 오솔길이 멋지다. 숲속을 휘젓는 바람 소리가 물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꽤 걸었음에도 폭포가 나오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었음이 확실하다. 표지판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다른 길을 택해 걷는다. 조금 걸으니 폭포 소리가 난다. 폭포를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폭포가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물줄기가 떨어진다. 강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물소리와 함께 걸으며 주차장에 도착했다.

많이 걸었다. 길을 잘못 들어 더 많이 걷고 생각하지 않았던 구경도 했다. 가끔은 길을 잃어볼 만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진정한 여행은 길을 잃었을 때부터 시작한다는 어느 여행가의 글이 생각난다. 

삶을 흔히 여행에 비교하기도 한다. 나만의 삶에 빠져 지내는 일탈을 잠시 생각한다. 길을 잃은 나만의 삶을.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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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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