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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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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 반대' 헌재 소장,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나"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이다. 그냥 자기들이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면 될 것을, 애먼 '국민'을 끌어들인다. 어쨌든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었으니 답변부터 하자.

'그래, 받아들일 수 있다.'

김이수 지명 이후 집계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80%를 훌쩍 넘어섰다. 리얼미터가 집계한 국정 수행 지지도가 84.1%였고, 한국갤럽이 발표한 결과도 84%였다. 당연히 이 평가에는 대통령의 개혁적 인선에 대한 국민의 호응이 담겨 있다.

이 사실은 갤럽이 조사한 '긍정 평가 이유' 항목에서 잘 드러난다. 응답자들은 대통령을 호평한 첫 번째 이유로 '소통'(18%)을 들었고, 두 번째로 '인사'(10%)를 꼽았다. <조선>은 '국민'의 이름으로 문제 삼고 있지만, 국민들은 현 정부의 인사를 문제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5주차에 들어 리얼미터 집계 지지도가 78.1%로 조정 국면에 있으나, 여전히 압도적인 지지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 사실은 갤럽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 첫 직무 수행평가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일례로 이명박은 52%였고, 박근혜는 44%였다.

<조선일보>는 제 코가 석 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듯하다.  이 신문이 지지해 온 정당의 후신에 '국민'이 보이는 지지도는 고작 8~13%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끔은 이런 자문도 해보면 좋겠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싸고돌던 신문,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나."

갤럽은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를 전하면서 '전 (박근혜) 대통령의 단점이 현 (문재인) 대통령의 장점으로 반전되었다'고 덧붙였다. 과거 박근혜가 '소통'과 '인사'에서 파국을 달릴 때, <조선일보>와 <티비조선>은 어떤 비판을 가했던가? 날 선 채찍질은커녕, '패션 외교'니, '대통령이 8개국어를 한다'라느니 하며 칭송하기 바쁘지 않았던가?

<조선>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한 두 권력을 앞장서서 밀고 후원했을 뿐 아니라, 4대강 사업이나 국정교과서 같은 몰상식한 정책마저 찬성하며 여론몰이를 했다. 제대로 된 언론은 권력이 바른 일을 할 때 칭찬하고 그른 일을 할 때 비판한다. 언론의 판단 기준은 당연히 시민,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눈높이에 두어야 한다. 핀리 피터 던의 말대로, 언론의 사명은 '편안한 자를 불편하게 하고, 불편한 자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이익이 될 때 칭찬하고 손해가 되면 비판해 온 언론은 '국민'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니 그냥 자기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하라. 하지만 그에 앞서, 한국사회를 이 꼴로 만드는 데 일조한 과오부터 반성할 일이다.

<조선일보>와 한국당의 무지와 모순

<조선일보>는 "'통진당 해산 반대'라는 말로 독자를 호도하지만, 김이수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에 반대'한 게 아니다. 단지 특정 개인의 책임을 조직 전체에 전가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해석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 차이가 이해가 안 되는가?

김이수 재판관이 내놓은 해석은 매우 온건하고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개인의 잘못을 핑계 삼아, 조직 전체를 해산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테니 말이다. 예컨대 자유한국당이 한나라당 시절 벌였던 '차떼기' 뇌물수수 사건이나, 새누리당 시절 대통령이 벌인 국정농단사건을 이유로 '정당 해산'을 결정한다면 어떻겠는가?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이 신문사의 송희영 전 주필은 기업으로부터 호화접대를 받고 호의적인 기사를 써 준 혐의를 받다가 스스로 물러났다. 만일 그의 행위를 조직 전체의 책임으로 몰고 간다면 수긍할 수 있겠는가?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개인의 처벌에 반대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른 개인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행위를 조직으로 귀속시켜 처벌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어긋나며, 궁극적으로 민주적 질서를 훼손할 위험성이 크다. 이처럼 타당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통합진보당은 5명의 의원과 10만 명의 당원이 활동하던 합법적 정당이었다. 이 정당은 대통령 후보까지 냈고, 그는 박근혜와 나란히 앉아 대선 토론까지 벌였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정당 자체를 해산시킨 탓에, 이정희를 포함해 아무 혐의가 없던 의원들까지 의원직을 잃었고, 수만 명의 당원들까지 권리를 박탈당해야 했다.

해산심판의 청구인 법률상 대표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으며, 정부가 나서서 정당 해산을 밀어붙이던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원한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해산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 적용해야 한다는 재판관이 한 명이라도 나왔다는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북한 싫다면서 북한 닮아가는 보수세력

무지와 모순으로 말하면 자유한국당도 만만찮다. 지난달 23일 정태옥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김이수 후보자에 대해 "자진 사퇴와 지명철회"를 요구했다. 그 이유는 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으며, 교원노조법 위헌 심판 때도 유일하게 위헌 의견을 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북한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소수의견'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이 북한을 증오하는 이유가 이런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보수파는 김이수가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왜들 그렇게 북한을 싫어하면서 북한을 닮아가는지 모르겠다.

만일 통진당 해산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 문제라면, 그건 헌재소장뿐 아니라 재판관 자격부터 문제가 돼야 했다. 김이수 지명에 반대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그의 소수의견 전문을 읽어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헌재 결정문과 비교해서 읽어보라. 거의 유일하게 논리적 일관성을 지닌 견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비록 서슬 퍼런 공안정국의 속에서 다수의 재판관이 통진당 해산에 합헌 의견을 내놓았지만, 헌법 학자들 사이에서는 위헌이라는 입장이 '다수 의견'이었다. 당시 JTBC가 헌법 학자들을 대상으로 견해를 물었을 때, '합헌' 의견을 낸 학자들은 16명 가운데 6명에 지나지 않았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자격에 대한 의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신임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했을 때, 헌재는 물론 헌법학자 대다수가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언론이든, 정당이든 '국민' 이야기를 꺼내려면 시민들이 대체로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국민은 그들의 욕구를 대신 충족시켜주는 대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 개입설' 주장하던 자유한국당, 5.18로 김이수 비판?

가장 기막힌 일은, 자유한국당이 5.18로 김이수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당의 곽상도 의원은 "김 후보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판사 자격으로 시민군 7명을 버스에 태워 운전했던 운전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가 군부에 협조했기 때문에 헌재소장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어떤 곳인가? 광주 5·18 민중항쟁 추모제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해 왔을 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허위로 드러난 "북한군 개입 의혹"을 제기해 온 정당이다. 무엇보다 곽상도 의원 자신이 강기필 유서 대필 사건의 담당 검사로서, 한 사람의 인생과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암흑 속에 몰아넣은 장본인이었다.

최소한 김이수는 자신의 판결에 대해 뉘우치기라도 했다. 곽상도 의원은 강기훈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에도 어떤 사과나 반성도 표하지 않았다.

김이수가 용서받지 못할 자인지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측에 묻는 것이 옳을 터이다. 5.18 단체들은 기꺼이 그를 이해하고 용서했다. 계엄 시절 군법회의에서 중위였던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넓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의 소신 있는 판결을 볼 때, 헌재소장으로서의 활동이 기대된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러니 김이수가 부끄러움을 깨닫고 '광주 정신'으로 한국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자.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은 '봉사'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그저 부끄러움이나 깨닫기 바란다.


태그:#김이수, #헌재소장, #광주민주화운동, #조선일보, #통진당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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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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