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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지난달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지난달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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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성소수자에게 유독 인상 깊은 한 해이리라. 내가 당사자임에도 성소수자 의제에 관심을 가진 지는 비록 얼마 안 되었지만 단언할 수 있다. 과연 누가 예상했을까. 엄혹한 계절의 그 광장을 무지개와 촛불로 함께 한 우리는 지난 정권의 탄핵이라는 역사적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겨우 탄핵만으로는 결코 그렇게까지 인상 깊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은 단언컨대 어떤 의미로든 성소수자의 해였다. 나는 아직도 지난 2월 16일을 기억한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포럼에서 성평등 공약을 얘기할 때 한 활동가가 "저는 여성이고 성소수자인데 제 평등권을 반으로 나눌 수 있냐는 말입니까"라는 말을 절박하게 부르짖었고, 거기에 대한 청중들의 화답은 "나중에"였다.

누군가는 그 '나중에'는 끝에 발언 기회가 있을 때 주겠다는 말이었다며 대답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 땅의 성소수자들이 느낀 것은 그런 단순한 서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는 발언권과 생존권은 나중으로 미뤄질 수 있는 후순위의 사람, '나중인간'이라는 뜻이었고 다수를 위해 소수가 참으라는 말이었으며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했던, 마주하는, 마주할 거대한 현실의 벽이었다.

현실을 방증하듯 연이어 사건들이 터졌다. 육군에서는 참모총장의 지시로 성소수자 군인이 '색출'되었으며 대선 토론회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발언이 있었고 이에 항의하던 활동가들은 연행되었다. 심지어 다른 후보의 발언에서는 동성애를 엄벌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결국 색출되어 구속되었던 A대위에게는 유죄가 선고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본 '나중에'였다. 정말로,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난한 한 해였다.

'나중인간'에서 추한 죄인으로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캠페인 이미지. 지난 2월 16일 당시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배제한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참가한 성소수자들은 피켓팅을 했다. 하지만 행사 참가자들은 '나중에! 나중에!'를 집단으로 연호하며 피켓팅을 야유했다. 이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지금 당장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요구하고자 인증샷 캠페인을 진행했다.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캠페인 이미지. 지난 2월 16일 당시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배제한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참가한 성소수자들은 피켓팅을 했다. 하지만 행사 참가자들은 '나중에! 나중에!'를 집단으로 연호하며 피켓팅을 야유했다. 이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지금 당장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요구하고자 인증샷 캠페인을 진행했다.
ⓒ 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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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사건들이 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친구들이었다. 일이 있을 때마다, 질곡의 시점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고민 끝에 커밍아웃하는 것을 봐야만 했다.

그날도 그랬다. 5월 24일 오전 10시, 구속되었던 A대위에게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결국 '나중인간'들은 죄인이 되었다. 죄목은 추행. 강제추행이 아니라 동성 간의 성관계가 추하다며 붙은 죄명. 사실 선고 당일에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구형 당일에 이미 분노했었고, 그동안 많이 지쳤던 탓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애써 괜찮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친구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 보고 싶지 않아서 애써 낮잠을 잤다.

계속해서 낭독된 판결문의 문구가 머릿속을 떠돌았다. "(...)군인의 복무 사회의 건전한 상황과 군기 확립 및 엄격한 상황의 유지를 저해하여 엄벌에 처할 필요(...)" 그제야 실감했다. 아, 나는 건전하지 못한 사람이고, 엄벌에 처해져야 하는구나.

잘못한 것이 없는 '추한 죄인'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모습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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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이후, 스스로 죄인이라며 자조하는 것을 숱하게 보았다. 자조라는 소소한 저항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잘못한 게 없어서, 그런데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A대위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성관계 영상을 업로드하지도 않았으며, 휴식시간에 사적 공간에서, 성인끼리 상호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은 것이다. 군형법 제92조의6, 군형법상 추행죄(강제추행이 아니라 추한 행위를 뜻한다)는 말한다. "제1조 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저 이 한 문장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추한 죄가 된다. 씁쓸한 일이다.

법에는 보호법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군형법 제92조의6는 도대체 무엇을 보호하는 것일까. 추측컨대 혐오세력의 '기분'을 보호하기 위한 법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92조의6을 제외한 나머지 조항에서 성폭력을 처벌하고 있는데 굳이 제92조의6이 존재할 리가 없다.

나는 참 사람을 좋아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군대를 가지 않았다. 이미 모든 사람이 내가 성소수자임을 안다.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하였고 너무도 감사하게 모두가 나를 변함없이 아껴준다. 그러나 군대라는 공간에 가는 순간 나는 색출당할 것이고, 종국에는 구속되고 유죄판결을 받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나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이다. 성경에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데 사랑이 왜 죄가 되는지 본인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시대는 달라야 한다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지시로 논란에 휩싸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도착하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장 총장에게 “어떤 이유로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냐”며 “차별주의자 장준규는 물러나라”고 항의하고 있다.
▲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에게 항의하는 성소자차별반대 활동가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지시로 논란에 휩싸인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도착하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이 장 총장에게 “어떤 이유로 동성애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냐”며 “차별주의자 장준규는 물러나라”고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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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입대할 때부터 관심병사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내 삶에 어떤 불이익이 올지는 솔직히 아직 모르겠다. 굳이 벌써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사회와 권력이 내 삶의 정답을 정해줄지라도 계속 저항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만의 방식으로 인정받았으니까, 결국에는 내가 맞다는 것을 인정받았으니까. 나는 힘이 닿는 한 끊임없이 저항할 것이다. 위에 말한 온갖 일보다도 더 큰 희망을 보기 때문이리라. 모두의 생각에서 당연한 듯 지워져 있던 우리는 목소리를 얻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대선 토론회에서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우리는 그에 화답하였다. 내가 속해있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에서 주최한 촛불문화제의 제목은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였다. 감히 말하건대 이제는 정말로 우리의 시대이다.

주인공답게 행동하자. 목소리 높이며 외치며 주장하자. 우리의 필요를 모으고 말하자. A대위의 무죄를, 군형법 제92조의6의 위헌 결정과 폐지를,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성교육 표준안의 폐지를, 당연한 것의 당연함을, 우리의 정당함과 떳떳함을. 우리의 시대는 달라야 하니까.

'성소수자 지지하지만...'이라며 뒤로 숨지 말자. 선택의 순간에 나는 당신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선택할 시대는 구습과 적폐가 있는 옛 시대인지,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리의 새로운 시대인지.


태그:#성소수자, #A대위,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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