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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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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봇도랑 물길을 잡아 논에 물을 댔다. 다음주 모내기 날짜에 맞춰 오늘 논을 삶으려고 논에 나가보니 논에 물이 없다. 어쩐 일인가 하고 논쪽 물고를 보니 물이 쫄쫄 흘러든다. 어라? 밤새 위에서 물길을 돌렸나? 봇도랑을 보니 역시나 물이 쫄쫄 내려온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역시나 윗다랑이로 봇도랑물을 죄다 들어간다. 논물은 위에서부터 잡아 내려오는 것이 불문율이니 윗다랑이에서 잡은 물고를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싸움 난다. 하지만 윗다랑이보다 내가 물을 먼저 잡았고 모내기철이라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이 워낙 많아 윗다랑이 보를 조금 열어 물을 내려 보냈다.

그런데도 내려오는 물 양에 비해 논에 물이 잘 안들어간다. 아하, 물고 어딘가가 막혔구나. 쌀농사 지으면서 물고 중간이 막힌 경우가 처음이다. 물고 길이가 5미터도 넘고 농로 아래에 있으니 어디가 막혔는지도 뭐가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물이 찔찔 거리면서도 논에 흘러드니 아예 막힌 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봇도랑 쪽 입수구로 나뭇가지를 넣어 쑤셔보니 1.5미터쯤에서 뭐가 걸린다. 흙물이 나오는 걸로 봐서 물고가 막히면서 진흙이 쌓였나 보다. 좁고 깊은 구멍이라 손이 닿지 않으니 이를 어쩐다? 천상 논 쪽에서 물고를 뚫는 수밖에 없다. 5미터가 넘는데 무얼로 뚫을까 하는데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 궁리 저 궁리 하면서 뾰족한 방법은 생각이 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가니 속이 타들어 간다. 논 농사는 물 농사. 물이 없으면 모내기를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번쩍 유레카! 오미자 지주대로 쓰는 10미터 철근 파이프가 밭에 있잖아. 바로 그거야. 불이나케 오미자밭으로 트럭을 몰고가서 출렁거리는 10미터짜리 오미자 파이프를 실어왔다.

대장 내시경 하듯이 파이프를 물고로 밀어 넣었다. 한참을 들어가더니 무엇가가 단단한 것이 걸린다. 힘을 주어 밀어보니 움직인다. 뭐지? 돌 같기도 하고. 설사똥 나오듯이 흙탕물이 밀려 나온다. 단단히 막혔구먼. 파이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참을 밀고 당기다보니 봇도랑쪽까지 파이프가 나갔다. 그런데도 물고로 흙탕물이 찔찔 흘러 들어온다.

막힌 걸 봇도랑 쪽으로 밀어내야 한다. 한번 더 해 보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감으로 어림잡아 파이프로 물고 속 단단한 무엇가를 힘껏 밀어내기를 서너 차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왜일까? 또 궁리를 한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생각하니 또 한 번 유레카! 봇도랑에서 밀려드는 물의 압력 때문이구나. 봇도랑 보를 열어 물고로 물이 들어오지 않게 하고는 다시 파이프를 밀어 본다. 무엇인가가 쑤욱 밀려 나간다. 뚫어 뻥!

뭐였을까? 물고를 막아 아침 내내 고생시킨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봇도랑으로 가보니 아뿔싸! 지난해 돌에 헌옷을 둘둘 말아 물고를 막았는데 그게 물고 안으로 들어가 변비를 일으켰구나. 천재가 아니라 인재였구나. 어설픈 농사꾼인 내 탓이로다.

다시 봇도랑 물을 물고로 흘려 넣어본다. 논물이 콸콸콸 시원스레 쏟아져 들어간다. 벼 농사 10년 만에 10미터 파이프로 꼭 막힌 물고 관장을 해보는 새로운 경험을 해 보았다. 농사일 또 한가지를 배우고 또 한가지 세상사를 깨닫는다.

막힌 물고가 뚫리듯이 적폐로 꼭 막힌 이 세상도 우리 논 물고처럼 뻥 뚫려 새 물이 콸콸콸 흘렀으면 좋겠다. 새 물을 맞이하여 논에서 새 생명이 자라듯이 적폐 없는 세상에서 밝고 맑은 새 사람들이 자라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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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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