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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글쓴이 말) 시골에서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살림노래(육아일기)를 적어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이었다면, 아이들이 제법 큰 요즈음은 아이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아이랑 고맙게 배우는 살림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와 지내는 나날은 '육아일기'보다는 '살림노래'가 어울리지 싶어요. 살림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배우고 누리는 나날이라는 마음입니다. 며칠에 한 번씩 공책에 짤막하게 적어 놓는 살림노래를 이웃님과 나누면서 '살림하며 새로 배우는 기쁨'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아이들은 안 위험해요. 우리 생각을 바꿔 보아요.
 아이들은 안 위험해요. 우리 생각을 바꿔 보아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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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한테 팔이란

사람은 팔이 있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꼭 팔이 아닌 발을 써서도 일을 하는데,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면, 팔로 호미를 쥐어 땅을 쪼고, 낫을 쥐어 풀을 벱니다. 삽을 쥐어 땅을 파고, 칼을 쥐어 도마질을 합니다.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해서 널고 걷고 개지요. 짐을 들어 나르고,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겨요. 아이들을 씻기고, 어버이인 내 몸을 씻습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합니다. 행주질을 합니다. 설거지를 마치면서 개수대를 슥슥 비벼서 물때를 벗겨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요. 자전거 손잡이를 쥐고 달려요. 마을에서 보름에 한 차례씩 마을 어귀 빨래터 물이끼를 슥슥 수세미로 밀어서 벗깁니다. 바야흐로 저녁을 차리고서 팔에 힘이 다 빠지네 싶으면서 지끈지끈합니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나서 기운이 더욱 도니 더 신나게 놀고 싶습니다. 어버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팔심을 가다듬으면서 이것저것 건사해야지 하고 느낍니다. 네 식구 나란히 곯아떨어질 무렵까지 씩씩해야지요.

안 위험해요, 즐겁지요

아이들이 논둑을 타든 담벼락을 타든 안 위험해요. 어른들이 "위험해!" 하고 말을 터뜨리기에 그때부터 위험해요. 아이들은 다치는 적이 없어요. 어른들이 "다칠라!" 하고 말을 내뱉기에 그때부터 다쳐요. 아이들은 힘드는 때가 없어요. 어른들이 "힘들겠네!" 하고 말을 늘어놓기에 이때부터 힘들어요. 아이들은 못하는 일이 없어요. 어른들이 "못히겠네!" 하는 말을 섣불리 꺼내니 그만 못하고 말아요.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생각인가요? 아이들이 씩씩하고 힘차게 자라기를 바라도록 북돋우려는 생각을 말에 담아서 들려주려는가요? 아이들이 즐겁고 아름답게 크기를 비는 마음으로 말 한 마디를 가려서 이야기하려는가요?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놀이벗 작은 종이인형이 놓인 걸상
 놀이벗 작은 종이인형이 놓인 걸상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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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놀이벗

아이는 종이를 오려서 빚은 인형을 주머니에 살포시 넣습니다. 마실을 나가며 종이인형을 데리고 갑니다. 마실길에 주머니에서 종이인형을 슬그머니 꺼내어 바람을 쏘여 줍니다. "○○야, 너 여기 처음 와 보지?" 하면서 종이인형한테 이곳저곳 보여줍니다. 새로 핀 꽃송이를 보여주고, 커다란 나무를 보여주네요. 구름을 보라 이르고, 풀내음을 맡으라 하는군요. 이러다가 책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책을 읽느라 종이인형을 얌전히 내려놓습니다. 종이인형한테는 책을 안 읽어 주니?

두어 접시를 그 자리에서 다 비우고 만 아이들. 얘들아, 아버지는 튀겨 주느라 한 점도 구경을 못 했구나. 어머니도 구경을 못 하고.
 두어 접시를 그 자리에서 다 비우고 만 아이들. 얘들아, 아버지는 튀겨 주느라 한 점도 구경을 못 했구나. 어머니도 구경을 못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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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 놓기

양파랑 호박이랑 감자를 부칩니다. 밀가루하고 쌀겨를 반죽해서 양파하고 호박하고 감자를 둘러서 부치고는, 앵두나무 곁에서 잘 자란 쑥을 뜯어서 쑥지짐이를 합니다. 두 아이는 쑥지짐이는 거의 손을 안 대고 양파부침하고 호박부침하고 감자부침을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습니다. "우리 아이들아, 아버지 몫은?" 따로 접시에 덜어 놓으면 아이들이 안 건드립니다. 이때에는 어머니나 아버지 몫을 다른 접시에 챙겨 놓는 줄 알아요. 그러나 안 던 채 밥상에 올려놓으면 이 아이들은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고 다 비웁니다. 잘 먹으니 고마우면서, 덜어 놓지 못하니 아쉽습니다. 막상 부침개를 한 사람은 한 점도 못 먹기 때문에 아쉽지 않아요. 아버지가 부엌일이며 빨래이며 부산하게 일을 하느라 함께 밥상에 둘러앉지 못할 적에 한 점씩 남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밥상 매무새를 놓고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습니다.



한 걸음씩 들어갈 수 있는 곳.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알 수 없지만 재미있는 곳. 무엇을 만날는지 알 수 없기에 새로운 곳.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수많은 노랫소리가 흐르는 곳. 발걸음 내딛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면서 우리 걸음걸이를 새삼스레 느끼는 곳. 풀내음에 나무내음이 섞여 바람맛을 누리는 곳. 보금자리가 숲이 되고, 숲이 보금자리가 되는 자리에서 살림이 깨어나는 곳.

우리 도서관학교 가는 길. 숲이란 어떤 곳일까요.
 우리 도서관학교 가는 길. 숲이란 어떤 곳일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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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태그:#살림노래, #육아일기, #아버지 육아일기, #삶노래, #시골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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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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