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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민중항쟁 생존자 박영순씨
 5.18 민중항쟁 생존자 박영순씨
ⓒ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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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37년이 지난 지금도 5월이 되면 아프다고 했다. 17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37주년기념 시민난장 오월여성생존자 부스에서 만난 박영순씨. 그는 37년 전 5월 27일 새벽 2시 30분 전남도청 1층 상황실 옆 방송실에서 시민군 상황을 마지막까지 알린 주인공이다. 당시 박씨는 송원대 유아교육학과 졸업반이자 광주여고, 전남여고의 가야금 교사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고 교문을 통과해 걸어 나갔는데 얼마 못 돼 학생 한 명이 다리 관통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게 보이더라고. 너무 놀라서 학생 피가... 하고 말을 못이었어."

그가 시민군을 도와 가두방송을 하게 된 데는 눈 앞에서 목격한 참상이 크게 작용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안으며 집에 돌아가는 중에 만난 시민군에게 광주 상황을 알리는 걸 도와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내가 책을 들고 있으니까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방송을 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지."

이렇게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박씨는 시민군과 함께 있었다. 뜻을 같이 했기에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계엄군이 곧 전남도청으로 쳐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날따라 가두방송을 오랫동안 해서 도청에 늦게 들어왔어. 계엄군이 도청으로 들어오니까 노약자나 어린이, 여성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돌려보냈거든. 그런데 내가 너무 늦게 와서 집으로 가기가 힘들었어. 설마 국가에서 우리를 한꺼번에 죽이진 않겠지 생각한 것도 있었고. 그렇게 도청에 남았는데, 새벽 2시 30분에 시민학생투쟁위원회에서 방송을 해달라고 원고를 가지고 온 거야."

박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원고를 세 번 읽었다고 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을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출소하고 신분 숨긴 채 살아온 세월

 박영순씨가 새벽방송을 한 시민군 본부이자 상황실
 박영순씨가 새벽방송을 한 시민군 본부이자 상황실
ⓒ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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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의 목소리는 도청 옥상에 설치된 대형스피커를 통해 계엄군의 진압작전 소식에 숨죽이고 있던 광주시내 곳곳에 파고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드르륵 총질을 하며 전남도청으로 들어온 계엄군에게 박씨는 체포됐다.

그는 상무대 보안실에서 두 달 넘게 조사를 받았다. 밤마다 고문을 받으면서 협박도 받았다.

"조사할 때마다 너는 새벽방송 했기 때문에 사형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야. 두 달 넘게 끌려다니면서 두들겨 맞으면서 협박 받아봐. 아침에 눈 뜨면 오늘 죽으면 어떻하지?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

매일 두려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는 박씨는 재판에 넘겨져 1년 실형 선고를 받고 6개월 복역하다 형 집행 면제로 출소했다. 그의 죄목은 계엄법 위반과 내란부화수행.

그 일이 있은 뒤 그는 광주를 떠났다. 박수현이란 가명으로 살며 철저하게 5월 광주를 지우고 살았다. 아이들도 모를 정도였다. 그가 살았던 경상도에선 5.18을 빨갱이가 일으킨 폭동으로 아는 이들이 많았다. 동서로 나뉘어진 나라이다 보니 "호남민들 다 쓸어 버려도 우리나라 끄덕 없다"는 말을 예사로 들어야 했다. 게다가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고문후유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심신을 갉아먹었다.

"너무 몸이 많이 아팠을 때는 차라리 그 때 내가 총에 맞아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했었어."

상무대 취조실에서 사람들이 고문받는 걸 본 기억도 그를 괴롭혔다. 눈만 감으며 머리 속에서 불화살처럼 그 장면이 스치고 지나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면증 때문에 빼빼 마른  박씨를 보고,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다이어트를 그렇게 하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1987년 사면복권을 받은 박씨는 작년에 재심 청구를 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꽃다운 나이를 숨어 지내듯 지낸 그는 지난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냐며 가슴을 쳤다.

"지만원은 아직도 내가 북에서 보낸 마지막 방송선봉자래. 좌파네 우파네 이용하는 정치인들도 여전히 있고. 우리나라가 분단국가가 아니라면 정치인들이 동서로 갈라서 빨갱이네 그렇게 이용하지 못할 거야. 다 분단국가여서 겪는 일이지. 정치인들이 이제 국민들을 둘로 쪼개는 언행을 그만 했으면 좋겠어."

 생존자 이야기 체험부스
 생존자 이야기 체험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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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담(多談) 대표이자 회고록 작가.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