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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시생(일명 공무원시험 준비생)을 응원, 격려하고 공공일자리 만들기를 약속하는 자리로 노량진 고시학원을 방문해 강연하고 있다.
 지난 2월 6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시생(일명 공무원시험 준비생)을 응원, 격려하고 공공일자리 만들기를 약속하는 자리로 노량진 고시학원을 방문해 강연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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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역에 다다르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하철에 탔다. 약속이나 한 듯 편한 옷을 입고, 한 손에는 수첩이나 교재를 들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공시생이었다. 다음 역인 한티역엔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 장소인 단대부중·고가 있다.

시험 전에 사실상 남은 마지막 공부 시간이니만큼 이들 중 그 누구도 딴짓을 하지 않고 열심히 들고 있는 자료를 봤다. 이들은 예상대로 대부분 한티역에서 내렸다. 그리 크지 않은 한티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대다수는 고사장이 있는 출구로 향했고 나도 느릿느릿 그들 뒤를 따랐다.

만일 내가 진지하게 시험을 보러 가는 거였다면 나도 저 무리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치 이 일과 별로 관련이 없는 제3자처럼.

사실 이날 (지난 4월 8일) 시험을 보러 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회사를 다니고 있고, 게다가 대선 취재 때문에 한창 바쁘던 차에 모처럼 맞이한 여유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말부터 명목상으로는 약 6개월 정도 공무원 공부를 했지만, 실상 열심히 공부한 건 초반 3개월 정도였고 그 이후엔 다시 이런저런 언론사에 지원하기 시작해 약 3개월 만에 모 언론사 입사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사실 하면 얼마나 했겠나. 3개월 동안 애써 쌓은 지식들은 그렇게 몇 개월 만에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린 터였다.

요즘처럼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엄청난 시기에 그 정도 준비한 것 가지곤 사실상 합격은 불가능하단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런데도 보러 온 이유는 순전히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라시는 어머니의 '혹시나' 하는 요구 때문이었다. 물론 내심, 사실상 수능과 다름없는 위치까지 올라가 버린 공무원 시험의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시험장 정문
 시험장 정문
ⓒ 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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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전] 질서정연하지만 팽팽한 분위기

고사장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눈에 띈 사람은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한 한 아저씨였다. 40~50대로 보이는 그 아저씨 역시 다른 젊은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으로 교재를 읽으며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이 든 공시생들이 많다고 하더니 시험장에서 그런 사람을 본 것이다. 기자로 왔다면 인터뷰를 바로 요청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니 그냥 흘끗 그 사람을 살피기만 했다. 그러고 보면 내 바로 앞에 앉은 여성분도 얼굴만 보면 30대 초중반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고사장엔 빈자리가 많았다. 내가 살짝 늦게 왔는데 여전히 절반 정도가 비었고, 시험지가 들어오고 시험장 진입이 폐쇄됐을 즈음엔 총 13자리가 비었다. 신청자 수와 응시자 수 차이가 난다고 해도 설마 절반 넘는 자리가 빌 줄은 몰랐기에 조금 놀랐다. 그래도 그와 관계없이 고사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팽팽했다. 어찌나 조용했는지 기침 한 번 하기도 되게 조심스러웠다. 마침 그날 목감기가 아직 완전히 다 낫지 않아 기침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는데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궁여지책으로 지니고 있던 목캔디를 하나 입에 넣었다.

어차피 오늘 내가 이 시험을 치러 온 유일한 의미는 그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는 것에 있었기에, 수험표 뒤에 내가 본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다 적었다. 마치 취재수첩에 자기가 본 모든 걸 적어 두는 기자처럼. 그렇게 열심히 적고 있는데 뭔가 느껴져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옆의 공시생이 나를 흘끗 보고 있는 거다. 약간 탐탁잖은 표정처럼 보였는데 아무래도 내가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걸로 오해하나 싶었다. 살짝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시험 시작 이후엔 100분간 화장실을 못 가니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여자 화장실 앞엔 제법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줄을 선 수험생들 중 몇몇은 그 순간에도 책을 읽고 있었다. 잡담을 나누거나 웃고 떠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그곳 역시 생활소음을 제외하면 그냥 정적이었다. 특이한 것은 화장실 안에 들어가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건데 그런 점에서 수능과는 매우 달랐다(시험장 전체가 금연 구역이었다). 오래 전 수능을 봤을 때 너구리굴이 된 화장실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오죽하면 그 화장실을 쓰길 포기했을까.

곧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인지 방송에선 끊임없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수험생들의 옷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데,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편하다. 사실 이건 모든 시험이 다 그렇긴 하겠지만, 유독 인생을 건 사람이 많은 공무원 시험의 경우엔 그런 게 더 두드려져 보이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같은 날 공무원 시험을 보는 내 주변 사람들 생각을 하게 된다. 몇몇 사람들 이름이 생각난다. 그중 한 명과는 절친이기도 하다.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모습(자료사진)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의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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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한 시험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별 세세한 것까지 다 보게 된다. 그래도 시험은 시작된다. 9시 30분이 되자 칼같이 모든 교재를 집어넣으라고 지시하고 핸드폰도 끄게 한다. 그리고 긴소매 옷을 입은 사람들은 소매를 반 정도 걷게 했고, 머리가 긴 사람들은 귀 뒤로 머리를 넘기라고 지시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커닝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설마 그렇게까지 해서 커닝을 하는 사람이 있겠나 싶었지만, 워낙 중요한 시험이기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다가 정확히 9시 54분에 문제책이 들어오자 고사장 진입이 완전히 폐쇄됐다. 시험 시작 6분 전이었다. 그리고 10시 정각, 100분 동안의 시험이 시작됐다.

[시험 중] 공부 길게 쉬었다간... 피본다

내가 선택한 과목은 공통과목 3과목(국어, 영어, 한국사)에 선택과목 2과목(행정법, 행정학)이었다. 어차피 시험을 그리 열심히 본 건 아니니 시험문제에 대한 후기는 길지 않게 쓰겠다.

국어: 어렵지 않았다. 한자 문제가 많이 나와서, 한자를 잘 안다면 더더욱. 한자가 많이 나왔는데도 어렵지 않았다고 느꼈던 건 골치 아픈 문법 문제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문법 쪽 열심히 판 사람은 뒤통수 맞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엉뚱하게도 문학 쪽에서 두 문제를 틀렸다. 그러고 보면 공부를 했을 때도 문학 분야에서 내가 분석한 관점이랑 문제에서 원하는 답이랑 어긋나는 경우가 제법 많았었다...

영어: 단어와 숙어를 충실히 외웠다면, 독해가 어렵지 않았던 편이라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험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공부를 몇 개월 안 해서 그동안 기껏 외운 단어를 다 까먹었다.

한국사: 한국사는 '레알' 암기과목이란 걸 시험을 치면서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인강 듣고 개념 정리했을 땐 다 알 것 같은 기세였는데 몇 개월 공부 안 했다고 이렇게 머리가 리셋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문제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기본 개념을 탄탄히 다지고 참고문헌 발췌해 놓은 거 충실히 읽었으면 그리 난해해 보이진 않았다.

행정법, 행정학: 행정법은 솔직히 공부 많이 못 했다. 문제는 거의 이번에 처음 풀어보는 건데 세상에... 행정학은 공부할 땐 매우 재밌게 했는데 어차피 외울 땐 다 암기과목처럼 외우다 보니 몇 개월 지나니 개념이 초기화돼 버렸다. 정작 문제 풀 땐 하나도 도움이 안 됐음.

아무튼 문제를 그렇게 막 열심히 푼 것도 아니고, 사실 모르는 문제들도 많다 보니 오히려 시간이 좀 남았다. 애써 안 풀리는 문제를 들여다보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솔직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한심하긴 했다. 도대체 내가 몇 개월 동안 공부한 지식들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공무원 공부 하시는 분들, 돈 벌거나 딴 거 한단 핑계로 공부 길게 쉬지 마시라... 나중에 피 본다.

시험을 마치는 종이 마침내 울렸다. 시험을 다 치고 나서 '아 제발 과락만 되지 말자'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나중에 시험 난도를 확인해 보니 선택과목을 제외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시험 후] 100분에 인생이 달렸다니

지난 3월 23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앞 도로에서 차들이 달리고 있다. 노변에는 공무원시험 준비학원 건물들이 성업 중이다.
 지난 3월 23일 오전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앞 도로에서 차들이 달리고 있다. 노변에는 공무원시험 준비학원 건물들이 성업 중이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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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 동안 100문제를 풀었다. 이날 응시자 수는 약 17만 명. 이 중 4910명만이 최종합격의 기쁨을 맛보게 될 테다. 그야말로 한 고사장에 한 명이라도 붙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맞는 셈이다. 감독관은 일일이 책상 하나하나를 다니며 답안지를 걷은 뒤에야 수험생들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교실 앞에다 놓은 가방을 다시 가져가는 수험생들의 표정에선 겉보기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사실 공무원 시험이라고 해서 다른 시험에 비해 막 특별한 건 아니었다. 지금껏 수차례 본 언론사 입사 필기시험이랄지 토익시험 직후 분위기와 별달리 다르진 않았다. 하긴 어떤 시험이든 시험을 치는 사람은 절실하긴 매한가지니까. 그래도 시험이 끝나서 그런지 어쨌든 좀 기쁜 표정을 짓는 이들도 보였고,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고, 자기들끼리 잡담을 하는 이들도 볼 수 있었다.

근데 개인적으로 좀 허망하긴 했다. 100분의 시간 동안 사실상 1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 자체가 그랬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도 헛헛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수능은 하루의 상당 부분을 투자해야 하는 긴 시험이라 그런지 헛헛하다기보단 힘들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적어도 문제를 푸는 동안엔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 만일 내가 제대로 마음을 다지고 시험을 봤으면, 아니 취직을 하지 않은 채로 시험을 봤으면 그 허무함은 더하지 않았을까 싶다. 머리를 텅 비운 채로 멍하니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수험생들을 보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연으로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됐는진 잘 알지도 못하고 일일이 다 물어볼 생각도 없다. 다만 길을 걷던 중 우연히 듣게 된 한 남자의 전화는 상당수 공시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짚어 주었다.

"딱히 공무원을 원한 건 아닌데, 안정적인 직업을 찾다 보니 시험을 친 거지."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감히 판단하자면 그게 대다수 공시생들의 마음 아닐까. 진정으로 공무원이란 직업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서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절실하겠지만. 과연 그게 '하고 싶은' 직업인 건지는 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응답자들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정년 보장(55.2%)을 꼽았다. 우수한 복지제도 및 근무환경(27.1%), 노후 연금(26.2%)이 그 뒤를 이었고 공무원이 적성에 잘 맞아서 준비하게 됐다는 비율은 25.7%였다. 복수 선택이어서인지 4개를 다 합하면 100이 넘어가는데 어쨌든 '안정성'에 대한 열망이 이들을 끌어들였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같이 공무원 시험을 본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이번 시험 커트라인이 생각보다 높게 형성됐다고 한다. 그 때문에 좌절할 수험생들이 눈에 선했다. 친구 녀석만 해도 생각보다 커트라인이 높다며, 자기 점수는 좀 불안정하다며 울상이다. 난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합격 커트라인은 날로 높아지는 추세란다. 그야말로 공무원 시험으로 인재들이 몰려드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서울시 공무원 시험도 얼마 안 남았다. (6월 24일) 공시생들은 정말 쉴 틈이 없다.


태그:#공무원시험, #공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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