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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문재인 대통령.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소감과 다짐을 이야기하고 있다.
▲ 소감과 다짐 말하는 문재인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소감과 다짐을 이야기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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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이 탄생했다. 2017년 5월 9일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41.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로써 민주당은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2012년 대선에서도 실패한 이후 10년 만에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제3기 민주당 정권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재인 정권 탄생의 역사적 의미는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대선에서는 수많은 정치적인 쟁점이 격렬하게 부딪치게 되므로 선거 이후에는 이와 관련된 많은 분석과 논의가 이뤄진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촛불 항쟁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격변 속에서 실시되었기 때문에 그 정도가 더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여러 가지 쟁점 중에서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거시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2017년 문재인 정권의 탄생을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이어져온 '민주주의 공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유산, 미완의 '민주주의 공고화'

한국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평화적인 방식의 민주화 이행에 성공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민주주의 공고화'가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민주주의 공고화'는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이 된다. 그러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고려해볼 때 '민주주의 공고화'의 주된 내용은 무엇일까?

1987년 민주화 이행 이전의 한국은 냉전분단 구조 속에서 권위주의적 발전 전략을 취했다. 그렇게 볼 때 민주주의 공고화는 냉전분단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고 권위주의적 발전 전략을 민주적인 발전 전략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적 특수성에 따른 '민주주의 공고화'의 주요 내용이 된다.

그런데 1987년 이후의 역사적 진행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 공고화'는 불완전하게 그리고 굴절된 방식으로 이뤄졌다. 1987년 민주화 이행을 이끌어낸 민중항쟁의 강력한 영향력을 고려해보면 이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사태 전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1987년 대선에서 민주 진영의 분열과 1990년 3당 합당이 시민사회 내에서 형성된 변화의 동력을 정치적으로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등장한 노태우 정권이 북방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 분야에 업적을 남겼고, 김영삼 정권이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없애서 민주주의 발전에 업적을 남겼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계가 명확했다.

그래서 결국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한 주된 과제는 정권교체를 통해서 등장한 민주당 정권 1기인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 정권 2기인 노무현 정권 10년의 시기에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은 '민주주의 공고화'에 있어 매우 큰 성과를 냈다.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민주적 발전 전략의 수립이라는 '민주주의 공고화'의 본질적 내용을 정확하게 인식했으며 이것을 위해 전진했다. 다만, 그 시기 동안 이에 대한 완전하면서도 불가역적인 해결을 하지 못한 채 정권을 내주었다는 사실이 매우 아쉬운 대목이었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경우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주기적으로 교체되기 때문에 한미 양국이 동시에 햇볕정책을 추진한 시기가 길지 않았고 단절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두 차례에 걸친 결정적 기회에서 최종 해결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에 성공하였으나 경제적 불평등 문제 해결에 미흡한 결과 그 가치가 빛이 바라게 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3가지 중대한 역사적 과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신보수주의 세력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연이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9년의 역사에서 확인되었듯이,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주의 공고화'에 역행하는 국정운영을 하면서 다음 3가지의 심각한 문제점을 초래하였다.

첫째, 민주주의 위기다. 지난 9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처참할 정도로 망가졌다. 2012년 대선에서의 국가기관에 의한 댓글개입, 블랙리스트, 언론자유 훼손, 인권 침해 등 민주주의 기본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또한 폐쇄적인 극소수 파워엘리트들에 의한 권력 사유화는 심화되었고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이것의 정점이었다.

두 번째는 사회통합의 위기다. 두 정권은 자신들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하여 무차별적인 종북몰이를 하였다. 이 자체로도 큰 문제인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극우 세력들의 혐오 문화가 독버섯처럼 자라났다는 점이다. 광주민중항쟁 희생자,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피해자들을 향한 극우 세력들의 혐오 행위는 공동체의 기본 상식과 양심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셋째, 남북관계 악화에 따른 평화의 위기다. 이명박 정권은 선핵폐기를 내걸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부시 미국 대통령을 오랜 기간 설득하여 만들어 놓은 결정적 기회를 무력화시켰다. 그 뒤 오바마 정권은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전략을 감안하여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방치했다. 그리고 이것은 박근혜 정권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현재와 같은 심각한 평화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민주주의 공고화' 대신 '민주주의 퇴행'으로 이끈 지난 9년

이렇게 볼 때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이룩해놓은 수많은 업적을 무력화시켰으며 더 나아가 노태우-김영삼 정권이 기여한 부분까지도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부터는 군사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부정적 모습까지 나타나면서 퇴행의 강도가 더욱 심해졌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이전에 한국은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모범적인 국가로 평가받았었다. 평화적이면서도 성공적인 민주화 이행을 이뤄냈고 그 이후 '민주주의 공고화'에 있어서도 꾸준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자생적 민주화,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9년을 거치면서 이것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난 9년은 '민주주의 공고화'를 완성하지 못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위주의 체제로의 복원력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매우 뼈아픈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매우 비참한 일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양극화되었다.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서적·문화적 측면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보수주의 세력이 이와 같은 갈등 증폭 구조, 적대 친화적 구조를 악용하면서 끊임없이 소모적인 정쟁을 부추기면서 단기적인 면피만을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지난 9년 동안 이와 같은 문제점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만큼 민심의 분노는 누적되고 있었다. 2016년 총선에서 보듯 신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민심이반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는 임계점에 도달한 민심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래서 촛불 항쟁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그 결과로 인해 실시된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격차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1987년·1997년 상황과 비교해서 본 2017 문재인 정권

문재인 정권이 처한 국내외 환경은 1997년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열악하다. 지금부터는 문재인 정권이 고도의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볼 때 문재인 정권은 유리한 조건 한 가지, 불리한 조건 한 가지를 갖고 있다.

유리한 조건은 촛불 항쟁에 의해서 시민사회 내부의 진보적 정치 공간이 크게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 힘입어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다르게 민주당 단독으로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권은 DJP연합을 통해서, 노무현 정권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비록 투표 전날 밤에 정몽준 후보가 일방적으로 파기했지만, 단일화 효과는 이미 반영된 뒤였음) 통해서 탄생할 수 있었는데, 문재인 정권은 민주당 단독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회 상황을 보면 문재인 정권은 불리한 여건에 있다. 그리고 총선이 3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광장의 열기가 의회 재구성의 동력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0년 전인 2007년 대선-2008년 총선처럼 만약 이번에도 대선 직후에 총선이 실시되는 경우였다면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재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이 매우 아쉽다.

그래서 정치사회 즉 의회의 상황은 1997년과 마찬가지로 불리하다. 그리고 이번 선거 과정에서의 모습 그리고 선거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았을 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1997년 대선 패배 이후의 한나라당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권은 의회와 시민사회인 광장 사이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국회선진화법과 현 의회 구성상 위와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 대신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연정을 고리로 하여 정체성 측면에서 가까운 국민의당, 정의당과 높은 수준의 연대를 이뤄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선 과정에서 격렬하게 충돌한 국민의당과의 관계설정이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승패는 결정 났고, 호남이 문재인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국민의당이 여기에 반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회 구성상의 약점이 있지만, 문재인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보다 2가지 측면에서 더 나은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주의 논리로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또한, 문재인 정권은 1987년과 1997년의 유리한 요인이 결합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촛불 항쟁에 의해서 형성된 현재의 시민사회 내부의 상황을 본다면 지금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와 매우 유사하다. 그 당시 조성된 변화의 열기가 1991년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도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97년처럼 선거에서 승리를 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문재인 정권은 '민주주의 공고화'를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 뒤를 이은 민주정부 3기 문재인 정권의 시대적 사명이다. 김대중-노무현 정신의 계승은 바로 '민주주의 공고화'의 완성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보수 세력에 의한 진보 내부의 의식의 식민화 현상 그리고 보수 세력의 '반노무현' 정치 전략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태그:#문재인, #김대중,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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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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