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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후 참석자들로부터 질의를 받고 있다.
▲ 나고야 '베델의 집'강연회 강연 후 참석자들로부터 질의를 받고 있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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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이 함께 모여 '생활공동체, 일하는 공동체, 돌보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일본 홋카이도 우라카와초(浦河町)의 '베델의 집' 이사인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홋카이도의료대학 교수의 강연회가 지난 4월 30일 일본 나고야 시내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회는 나고야에서 장애인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비영리법인 '아미노카이(愛実の会) ' 10주년 기념 행사로 열렸다.

'베델의 집'은 1978년 대학을 졸업한 스물 셋의 젊은 청년 무카이야치가 정신병원을 나와 갈 곳이 없는 당사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약물에의존해 살아가던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무카이야치 교수와 의기투합해 "돈 되는 일 한 번 해보자!"라며 지역 특산품인 다시마포장일을 하면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맘 놓고 농땡이를 부릴 수 있는 직장

'베델의 집'에는 '맘 놓고 농땡이를 부릴 수 있는 직장 만들기', '공사혼동 대환영', '손을 움직이기보다 입을 움직여라' 등 얼핏보면 이해하기 어렵거나조금은 우스운 내용들을 이념으로 삼고 있는데, 그 중에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세 끼 밥보다 대화가 우선'이다. 그만큼 이들은 대화를 소중하게여긴다.

"모두가 자신이 안고 있는 고통의 전문가. 그 '약함', '단점'을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서로 돕는 마음이 생긴다"라고 무카이야치 교수는 이야기한다. 환청을 듣거나 망상을 본 것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배척당해 온 사람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못하고 가두어 두면서 오히려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런 이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언어를 찾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일본 국내 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당사자연구'이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 소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걸까?', '내 안에 무엇이 있는 걸까?' 등 지금까지 숨겨오거나 눌러왔던 이야기들을 꺼내 동료들과 공유하고 분석해 해결책을 찾아나가는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흔히 '문제'로 생각했던 것들을 받아들이고그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간다. 힘이 들면 무리하지 않고 가끔은 '농땡이도 부려가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보내는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베델의 집'에서 출판한 관련 서적들. 이 중 한국에 번역, 소개된 책들도 다수 있다.
▲ 나고야 '베델의 집'강연회 '베델의 집'에서 출판한 관련 서적들. 이 중 한국에 번역, 소개된 책들도 다수 있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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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무카이야치교수(왼쪽)와 이토씨 .
▲ 나고야 '베델의 집' 강연회 베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무카이야치교수(왼쪽)와 이토씨 .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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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회에 무카이야치 교수와 함께 해, 강연 도중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거나 관련된 의견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 이토 노리유키씨도 자신을 '허둥대기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이토씨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부탁에 대해 언제나 허둥대면서 '네, 네' 하고 바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모든 요구에 응하다보면 어느 순간 몸의 에너지가 모두 방전되어 쓰러져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면에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몸이 이토씨 본인에게 보내주는 친절한 신호일 수도 있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이토씨의 경우를 들어 "자신의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데도 위험신호가없거나 깨닫지 못하는 비장애인의 경우가 오히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위험한 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숨기지 않고 꺼내어 말로 표현하고 공유함으로써 조금씩 공존의 지혜를 배우고 자립의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무카이야치 교수는 "자립이란 어느 누구의 힘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에 있는 사람과 사물에 도움을 받고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이렇게 '베델의 집' 사람들은 오늘도 '농땡이 부리면서' 그들만의 자립을 꿈꾸며 살아가고있다.

이런 결코 쉽지 않은 40여년간의 노력의 결과 현재 1만2천명이 사는 우라카와초에는 2000년 전후 130여개까지 있었던 병상이 2016년 현재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베델의 집'의 '당사자연구'는 '베델의 집'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일본 국내 각지에서 '당사자연구' 모임이 생겨나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의 장애와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더욱 넓게 확산되고 있다.

병원과 약물 이외의 선택이 가능한 사회

홋카이도 우라카와초의 '베델의 집' 사람들
▲ 나고야 '베델의 집'강연회 홋카이도 우라카와초의 '베델의 집' 사람들
ⓒ '베델의 집'페이스북 사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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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국에 있는 아주 가까운 사람 중 하나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당해 온 몸이 묶인 채로 지낸 적이 있다. 다행히도 상태가 호전되어 몇 달 뒤에 퇴원할 수 있었고 이제는 별 탈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과 그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방식의 강제 입원은 좋지 못한 선택이지 않았나' 하고 이야기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냐?"였다.

만약 그 때 가까이에 '베델의 집'과 같은 곳이 있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베델의 집' 이야기는 이미 한국에서도 많이 소개되었고, 책도 여러 권 번역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베델의집을 찾고 있다. 이제는 소개하고 찾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국내에 그런 장소가 하나 쯤 생길 때도 되지 않은 걸까? 한국의 '베델의 집'을 기대해 본다.


태그:#베델의 집, #정신 장애인, #무카이야치, #당사자연구, #일본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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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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