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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는 민심의 향배를 파악하고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갖는 정치권, 전문가, 일반인 모두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지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 그래서 수치화된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인사, 전문가들도 이러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 불신론은 무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렇다보니 이번 대선에서도 현재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민심 사이의 괴리가 상당히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는 오차범위 내에서의 변동을 전제한다. 그런데 지금 제기되는 것은 그 수준이 아니라 실제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변동 가능성을 뜻한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던 최근 계기는 2016년 11월에 실시된 미국 대선 결과였다. 당시 수많은 미국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결과와 역대 주별 선거 결과 등을 근거로 하여 힐러리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이와 같은 충격적인 결과에 대한 원인이 '샤이 트럼프 지지층'에 있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잡히지 않는 '샤이' 트럼프 지지층이 존재했었고 이들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결과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상을 깬 트럼프 후보의 당선은 우리나라 대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불신론이 형성되는 데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필자는 트럼프 당선을 여론조사 불신론의 근거로 내세우는 현재 한국 내 풍토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당선 결과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생략한 채 문제를 과장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리를 여론조사의 실패 사례라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힐러리가 우세하다고 본 이유는 무엇이었나?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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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분석을 위하여 먼저 미국 대통령 선거 시스템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대통령 선거일에 실제 미국 국민들이 선출하는 대상은 총 538명의 선거인단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특징은 총 538명의 선거인단을 각 후보의 총득표수에 따른 비율로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별로 선거인단이 배정되어 있고 해당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승자독식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에서 과반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므로 개별 주의 선거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정당도 지역 기반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래서 미국 중남부 지역인 텍사스주, 미시시피주, 캔자스주, 테네시주 등은 공화당의 아성이다. 반면 민주당은 미국 동부 및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뉴욕주, 뉴저지주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등에서 확고한 우세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주에서는 배정된 선거인단을 사실상 미리 확보한 것처럼 판단하고 선거 운동을 전개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당, 공화당 어느 당도 확고한 우세를 점하지 못하는 경합주가 존재한다. 그래서 이 경합주의 선택에 따라서 선거 결과가 좌우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대표적인 경합주(괄호안의 숫자는 해당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수)가 바로 플로리다주(29), 오하이오주(18), 노스캐롤라이나주(15), 아이오와주(6), 뉴햄프셔주(4), 버지니아주(13), 콜로라도주(9), 네바다주(6) 등이다.

이 중에서 여론조사 추이를 보았을 때 트럼프는 오하이오주와 아이오와주에서 힐러리는 버지니아주에서 안정적인 우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콜로라도주는 버지니아주만큼은 아니지만 힐러리 후보의 우세가 예측된 상태였다. 그리고 4곳의 실제 결과는 모두 예측대로 나왔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역대 투표 결과 등을 고려해볼 때 투표함의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한 곳은 플로리다주, 노스캐롤라이나주, 네바다주, 뉴햄프셔주 등 총 4개주였다.

이렇게 보면 전통적 경합주에서 경합우세로 평가받았던 버지니아, 콜로라도를 포함해서 힐러리 후보는 당선에 필요한 270명에 육박하는 26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트럼프는 216명을 확보했고 초경합 4개주에 속한 54명의 구성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중에서 힐러리는 4개 중에서 1개주만 이기면 승리할 수 있다고 예측되었으며 대신 트럼프 후보는 4개주 모두에서 이겨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실제 선거 결과 힐러리는 중대형주인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졌지만 네바다주와 뉴햄프셔 주에서 승리하여 1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였다.

그래서 처음 예측대로 되었다면 힐러리는 27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여 260명을 확보한 트럼프에게 승리했어야 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힐러리는 232명 트럼프는 306명을 얻어서 상당히 큰 패배를 당했던 것이다.

패배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격차도 놀라웠다. 1992년 힐러리의 남편 클린턴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 민주당이 232명의 선거인단을 얻은 것은 가장 적은 수였다. 그 이전에 가장 적게 얻은 경우는 2004년이었다. 그 때 재선을 노리던 부시에게 민주당의 케리 후보는 패배하였는데 그 때 케리후보가 얻은 선거인단수는 252였다.

이렇게까지만 보면 힐러리는 단순 패배를 넘어서 대패를 한 것이다. 그래서 여론조사 결과가 틀렸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주장이다. 왜 그런가?

힐러리, 여론조사 예측대로 실제 투표에서 이겼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전체 미국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는 사실상 같았다. 이것을 미국의 저명한 정치전문매체인 리얼클리어폴리틱스(www.realclearpolitics.com)의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선거 직전인 2016년 11월 1일부터 7일까지 10군데 여론조사 결과 평균를 보면 힐러리는 트럼프를 3.2%p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실제 투표 결과를 보면 힐러리 48.2%, 트럼프 46.1%를 얻어 힐러리가 2.1%p 이겼다. 그렇게 보면 힐러리는 여론조사 예측대로 직접 투표에서 이겼으며 그 격차도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미국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주별 선거인단 독식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미국 국민들의 직접투표 결과와 선거인단 구성 사이의 불일치가 나올 수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이러한 경우가 미국 대선에서 2016년 대선을 포함해서 총 5번 있었다. 그런데 1800년대에 3번 있었고 그 이후에는 그런 경우가 없다가 2000년 대선에서 나타났었다. 그만큼 이러한 불일치는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불일치의 정도가 2000년보다도 심했다는 사실이다.

2000년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고어 후보는 공화당 부시 후보보다 직접 투표에서 50만여 표를 더 얻었다. 그런데 선거인단에서는 267명을 얻어 부시 후보 271을 얻은 부시 후보에게 패해서 낙선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격차가 두 측면에서 모두 심화되었다. 우선 직접 투표에서 힐러리는 트럼프에 비해서 286만여 표를 더 얻었다. 그럼에도 선거인단수에서는 고어의 267명보다도 훨씬 적은 232명을 얻는 것에 그쳤다. 

직접투표에서도 실제 여론조사와 근접할 정도로 2.1%p의 286만표의 안정적 우세를 점했고, 초경합주 4곳에서 2곳에서 승리하여 278대 260 승리가 가능해보였던 힐러리 후보가 이처럼 예상치 못하게 대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상치 못한 3개 주가 승부 갈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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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예상치 못하게 힐러리 후보가 트럼프 후보에게 패배한 펜실베니아(20), 미시건(16), 위스콘신(10) 등 3개주 결과 때문이다. 이 3개 주 예측이 결정적으로 빗나가면서 나온 문제였던 것이다.

이 3개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주였다. 1992년 클린턴 후보때부터 2012년 오바마 후보때까지 역대 대선에서 항상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던 주였다. 물론 이 3개주는 미국 동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미국 민주당 초강세주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민주당이 공화당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일정 정도 우세를 안정적으로 점하고 있었다.

역대 선거 결과도 그렇고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 3개 주에서 힐러리가 약간 우세한 것으로 나왔었다. 선거인단 20명이 배정된 펜실베니아주를 보면 10월 29일부터 11월 5일까지 6곳의 여론조사 평균 힐러리 1.9%p 앞섰다. 이 중에서 1곳은 트럼프가 1%p로 승리, 한 곳은 동률로 나왔었다. 그리고 실제 결과는 트럼프가 0.7%p 차이로 이겼다.

그리고 선거인단 16명이 배정된 미시건주를 보면 11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5개의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가 평균 3.4%p 높았는데 그 중 한 곳에서는 트럼프가 2%p 앞서는 것으로 나오기도 했었다. 실제 결과는 트럼프가 0.3%p 차이로 승리했다.

끝으로 선거인단 10명이 걸린 위스콘신주는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실시된 4곳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모두 우세했고 평균 6.5%p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실제 결과는 트럼프가 0.7%p 더 얻었다.

이렇게 보면 위스콘신주의 결과가 실제 여론조사 결과에서 크게 어긋났다. 그리고 펜실베니아주와 미시건주는 이미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힐러리 입장에서 보면 불안한 징후가 감지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3개 주에서 전문가들이 힐러리가 이길 것으로 보았던 이유는 격차가 줄었어도 전체적으로 보면 앞서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와 역대 선거 결과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가장 적었던 펜실베니아를 만약 힐러리가 놓친다고 해도 힐러리는 다른 초경합주인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만회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힐러리가 트럼프보다 우세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힐러리가 이렇게 3개 지역에서 예상외로 모두 지고, 초경합주에서도 중대형주인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모두 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힐러리의 예상 외의 대패는 여론조사의 오류로 접근하는 것은 무리다. 위스콘신 주는 여론조사 오류가 명확하지만 펜실베니아, 미시건에서는 이미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가 힐러리를 매우 근소한 차이로 접근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물론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 샤이트럼프층이 존재하는 것은 맞다. 펜실베니아, 미시건, 위스콘신 등 3개주는 오대호 인근에 속해 있는데, 트럼프 지지로 이동한 백인노동자층이 많이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특성이 미국 전체 대선 결과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여론조사보다는 간선제, 주별 승자독식제를 채택한 미국 선거제도에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 내용은 큰 오류가 없었다. 일부 주에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여론조사 불신론을 내세울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여론조사 불신론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판단된다.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대승은 여론조사 실패 탓이 아니며 미국 선거제도가 초래한 매우 독특한 현상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보수 세력에 의한 진보 내부의 의식의 식민화 현상 그리고 보수 세력의 '반노무현' 정치 전략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태그:#힐러리, #트럼프,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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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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