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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 날을 맞이하여 순천시 선암사 대웅전에서 불교행사를 하고 있다.
 3일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 날을 맞이하여 순천시 선암사 대웅전에서 불교행사를 하고 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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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다. 멀리 광양 백운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숨 크게 쉬고 싶다는 생각에 차창 문을 열었다. 역시 초여름 같은 초록 봄기운이 코끝에 와 닿는 느낌이 좋다. 미세먼지 없는 이런 날들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이런 날에 무엇을 할까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불기 2561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다들 산사를 찾아들 갔는지 시골 도로 길은 더 없이 한적하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방향 감각을 잃은 듯 시골 아버지 집으로 갔다. 사실 오늘 매화나무 밭 예초작업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불가에 사람들은 생명활동이 왕성한 계절에 바깥나들이를 삼간다고 한다. 길을 걷다 개미 한 마리 이름 모른 미물을 밟을까봐 하는 생명존중에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같은 날에 예초작업도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매화나무를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수많은 풀들을 무참히 잘라야 한다는 게 잔인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여든 살을 넘긴 우리 아버지입니다. 오늘 농사일정인 예초작업을 미루고 산사 나들이에 기뻐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 선암사 일주문 앞 여든 살을 넘긴 우리 아버지입니다. 오늘 농사일정인 예초작업을 미루고 산사 나들이에 기뻐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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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벌써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9시에 퇴근하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여든 살을 넘긴 아버지의 기억은 여전히 빈틈이 없다. 평생을 농부로만 살아오셨기에 농사일은 절대 미루는 일이 없었다.

오늘 하루는 하는 수 없이 어깨가 빠져라 예초작업을 해야겠구나 하는 각오로 예초기를 챙기는데 칼날을 고정하는 공구가 없다. 예초기는 작년에 사용하고 올해 처음으로 사용하는 기계라 칼날 고정공구를 멀리 읍내에 살고 있는 동생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잘됐다.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우리도 산사로 떠나자 부처님 오신 날이라는데.

주차장에서 선암사 입구 삼인당(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연못까지 1킬로미터 정도 숲길이 이어진다.
▲ 순천 선암사 가는 숲길 주차장에서 선암사 입구 삼인당(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연못까지 1킬로미터 정도 숲길이 이어진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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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조계산 선암사로 봄날들이 출발. 아버지도 내심 싫은 눈치는 아니다. 주차장 매표소에 이르자 차가 밀린다. 서다가다 반복하다 요금 소에 다다르자 오늘은 무료 주차란다. 소형차 1000원, 중형차 2000원, 대형차 3000원이지만 왠지 횡재한 느낌. 그런데 주차할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산사에 주차전쟁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절로 가는 도로가로수가 만들어준 연초록 터널녹음이 좋다. 숲길을 걸어 조금 가자 조계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실이 나온다. 매표소 입구에 무료입장이란 푯말이 놓여 있다. 또 한 번 횡재한 느낌. 매일 무료입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표소에서 선암사 입구 삼인당(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연못까지 1킬로미터 정도 숲길이 이어진다.

사람들 물결을 따라 산사로 걷는 길에 통제되지 않은 웬 불청객 승용차들까지 뒤섞여 올라간다. 문화재관람료가 공짜라는 느낌을 무색하게 만든다. 사연이야 있겠지만 승용차에 뿜어져 나온 매연과 흙먼지까지 일으키고 간다. 한적한 숲길에 부랑자들 같다. 운전자들이 괜히 미워진다.

천년고찰 순천 선암사. 사찰내로 들어서자 울긋불긋 연등이 화려하다. 대웅전 앞마당 3층 석탑 위로 줄지어 걸려 있는 연꽃모양과 등불모양의 연등이 부처님오신 날을 환영하고 있다. 대웅전에서는 부처님 씻김 행사를 하면서 불자들은 복을 기원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88호. 사찰에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600여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합니다.
▲ 순천 선암사 선암매 천연기념물 제488호. 사찰에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600여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합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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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을 뒤로 돌아 선암사에서 매년 봄이면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선암매가 심어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매화꽃은 벌써 졌지만 초록열매가 제법 눈에 들어온다. 초록잎사귀에 덮여 매실이 제법 살쪄 있다.

원통전과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으로 오르는 담 길에 5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수령이 600년이 넘은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백년도 살지 못하면서 온갖 욕심과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과 사찰과 함께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소담스런 열매를 키워내는 매화나무에 불심이 느껴진다.        


태그:#부처님 오신 날, #선암사, #선암매, #매화꽃, #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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