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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튀튀하던 대지가 연록색깔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땅에서 어찌 저리도 고운 빛깔을 뿜어내고 있는지 경이로울 뿐입니다. 연록빛깔로 물든 산사로 가는 길마다 알록달록한 연등이 올망졸망 내걸려 있습니다.

아이들 눈에는 큼지막한 눈깔사탕으로 보일지도 모를 그 연등 길을 따라 가면 절이 나옵니다. 초파일이 머지않으니 어쩌면 눈깔사탕보다 맛있을 수도 있는 절밥을 먹어볼 날이 멀지 않습니다.

절밥하면 제일 먼저 설악산 봉정암에서 먹던 한 끼가 생각납니다. 봉정암에서 나누어 주는 밥은 밥그릇이나 국그릇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반찬이 별도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줄기 듬성듬성한 미역국에 밥 한 덩어리 넣고, 숭숭 썰어 버무린 오이무침 몇 조각 얹은 게 전부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그 미역국을 다들 맛있다고 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먹는 밥만 맛있는 게 아니라 하산을 할 때 나누어주던 주먹밥도 그랬습니다. 김 부스러기를 넣고 짭조름하게 간해 조물조물 주무른 주먹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습니다. 

음식점처럼 화려하게 차린 것도 아니고, 맛을 내기위해 어떤 특별한 조미료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절밥이라는 특성 때문에라도 고기를 사용할리도 없는데 참 맛있었습니다.

그때는 단지 허기 때문에 절밥이 그렇게 맛있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이 책을 읽다보니 그때 맛봤던 맛이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느낀 '무맛'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봄나물 냉이에서 겨울 두부까지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지은이 박찬일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7일 / 값 16,000원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지은이 박찬일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7일 / 값 16,000원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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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지은이 박찬일, 펴낸곳 불광출판사)는 요리사인 저자가 사찰 음식으로 널리 알려진 스님들과 전국방방곡곡을 동행하며 담은 기행문이자 지역별, 계절별, 음식별 조리법입니다. 

저자가 아무리 요리사라고 하지만 전생에 어떤 덕을 쌓아 이런 특혜(?)를 누리는지 부럽기만 합니다.

회심곡에 나오듯 좋은 밭에 원두 심어 행인해갈하고, 배고픈 이 밥을 주어 아사구제 하였으며, 목 마른 이 물을 주어 급수공덕을 하였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많은 스님들과 음식을 주제로 한 기행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설명이 궁해집니다. 

저자와 동행하는 스님들은 사찰음식하면 내로라하는 스님들입니다. 그런 스님들과 지역곳곳을 찾아다니며 체험을 하듯이 직접 만들기도 하고, 전수를 하듯이 몸소 조리까지 해가며 전개되는 음식이야기입니다. 

"사찰음식이 뭐예요?"
내게 물으신 건가. 그러시더니 "무맛이요, 무맛" 하고 스스로 답한다. 맛을 내는 게 이상한 거지……. 혀를 차지는 않았지만, 스님 말씀 사이의 조용한 간격. 시속의 음식 문화에 대한 직설이다. 참된 미각을 잃어버린 세상. 나조차 그러하다. 매일 간사한 맛에 길들여지면 참맛을 모르는 게 당연한 일. 생각해보면, 오늘 악행을 하면 내일 더 큰 악행을 하듯, 음식과 맛도 몸이 길들여진다. 매일 고농도의 맛이 혀에 퍼부어지니, 순수한 맛을 달게 여길 수 없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78쪽.

봄에는 제철 나물인 냉이, 미나리, 고사리, 명이 나물을 주제로, 여름에는 보리, 오이, 감자, 옥수수 등을 주제로 한 음식들을 이야깃거리로 버무렸습니다.

"요새는 맛이 다 달려들기만 하지 이처럼 순하고 솔직한 느낌을 내지 않아요. 그래서 이 두부가 더 각별합니다."

스님이 두부를 저으며 한마디 보탠다. 달려든다. 그 말을 원고를 쓰면서 다시 음미한다. 무섭다. 우리의 맛은 미친 듯 달려드는 것들에 미혹되어 있지 않은가. 김 사장이 두부를 천천히 젓는다. 열과 수분을 조절하고, 단백질의 응고를 가져오는 젓기의 기술이 거기에 있다. 급하게 저으면 좋은 두부를 만들 수 없다.

"두부는 원래 게으른 며느리가 잘 만든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천천히 해야 좋은 두부가 됩니다." -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236쪽

사찰음식하면 내로라하는 열세스님과 버무린 이야기

연등이 내걸린 길을 따라가면 절이 나오고, 절엘 가면 절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연등이 내걸린 길을 따라가면 절이 나오고, 절엘 가면 절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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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먹는 음식은 미각만 만족시키고, 포만감만을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맛보는 음식들은 상상의 맛을 더하며 행복감으로 다가옵니다. 음식에 얽힌 전설과 특성, 조리법까지 상세하게 소개돼 있어 상상의 맛으로 느끼던 행복을 직접 조리할 수도 있습니다.

고기도, 육수도, 향신채나 조미료도 사용하지 않는 절밥이 다들 맛있다고 하는 까닭을 찾아냄으로 지금 여기서 먹고 있는 음식에서 또 다른 맛과 삶의 의미를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절밥이 왜 그리도 맛있느냐고 물어온다면 절밥은 '무맛'이고, 그 무맛에 계절의 맛과 시절의 맛, 재료 본연의 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무맛이 본질적 미각을 돋아주기 때문일 거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사찰음식하면 내로라하는 열세 스님과 함께 버무린 이야기들을 오물조물 버무리고 보글보글 끓여 담아놓고 있어 산사에서 맛보던 절밥만큼이나 맛나게 읽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지은이 박찬일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7년 4월 7일 / 값 16,000원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요리사 박찬일의 순수 본류의 맛 기행

박찬일 지음, 불광출판사(2017)


태그:#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박찬일,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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