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도 돼?며칠 전이었다. 둘째 산들이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 우리 제주도에 배 타고 가?""응?""아빠가 엄마한테 우리 제주도에 배 타고 간다고 했잖아. 배에다가 차도 싣고."녀석은 아내와 내가 이번 연휴에 제주도를 가는데 비행기 표 값도 비싸고 어버이날을 맞아 처갓집도 가야하니 겸사겸사 완도에서 배를 타자고 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귀도 밝지. 또 언제 엄마, 아빠 이야기를 들었대.
"응. 배 타고 갈 건데. 신나겠지? 배 타고 바다도 보면서 제주도 가면.""아니. 어린이집 준영(가명)이가 우리 배타고 가면 세월호하고 충돌한다고 했어.""이제 세월호는 땅으로 올라왔잖아. 너도 뉴스에서 봤잖아.""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불안해. 세월호처럼 바다에 침몰하는 거 아냐? 비행기 타고 가자.""아냐. 괜찮아. 비행기보다 배가 더 안전할 수도 있어. 배는 고장 나면 바다에서 수영이라도 할 수 있지만, 비행기는 고장 나면 어떻게 되겠어?"그제야 아이는 질문을 멈췄지만 그래도 불안함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하물며 아빠도 조금 꺼림칙한데 너희야 오죽하겠니. 다만 그와 같은 불행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이에게 세월호에 대해서 물었더니 옆에 있던 까꿍이가 말을 받았다.
"너희들은 세월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몰라. 이상해.""누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선장이랑 박근혜. 선장은 언니, 오빠들을 그대로 배에 두고 나왔고, 박근혜는 그때 올림머리 하느라 구하지도 않았잖아."아이의 정확한 지적에 그만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작년 10월부터 아빠가 뉴스 보는 게 지겹다고 툴툴거리던 녀석들이었지만, 너희도 볼 건 다 봤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과연 세월호는 앞으로 너희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문득 학창시절 내가 봤던 삼풍백화점 붕괴 장면이 떠올랐다.
삼풍백화점에 대한 기억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1995년 6월 29일은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난 다음 날 있을 영어시험을 공부 중이었는데 저녁 6시쯤인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장 TV를 켜보라는 것이었다. 공부는 안 하고 뭔 TV를 봐?
난 TV를 켰고, 그 이후로 더 이상 책을 볼 수 없었다. TV에서는 영화 같은, 전혀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전 해 가을에 성수대교가 끊어졌을 때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이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멀쩡한 백화점 건물이 무너져 내려 수백 명의 사람이 죽다니.
다음 날 학교를 가자 모든 아이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삼풍백화점 뉴스 때문에 시험을 망쳤고, 이제는 겁이 나서 큰 건물에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뉴스는 삼풍백화점의 붕괴 원인으로 부실공사를 지적했는데, 당시 10대였던 나도 건축회사들이 건물을 지으면 철근 10개 기준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3~4개 정도 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삼풍백화점 사건은 당시 나에게 대한민국의 건물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트라우마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존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가르쳐주었다.
붕괴된 건물더미 안에서 17일을 버텼던 생존자. 그리고 그를 발견했을 때 모두 내 일처럼 기뻐했던 사람들. 내가 기억하는 삼풍백화점 붕괴는 슬픔이자 기쁨이었으며, 절망이자 희망이었다.
자, 그럼 2014년 세월호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
희망을 노래하기 위하여2017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다.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수습되지 못한 9명이 아직 배에 남아있고,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 배가 왜 저렇게 쉽게 가라앉았는지, 그리고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조차 모른다. 세월호를 그만 보내고 싶지만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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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세월호 추모퍼포먼스가 진행됐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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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 재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세월호를 떠올렸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지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올라서가 아니다. 우리는 지난겨울 내내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우리는 세월호의 힘으로 촛불을 켰고, 세월호와 함께 그 촛불을 지켰으며, 결국 그 촛불로 많은 것을 바꿔냈다.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 했지만 우리는 행동했고, 그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우리는 세월호를 구하지 못했지만, 세월호는 우리를 구했다.
따라서 우리는 세월호와 함께 희망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의 아우성을 안고 침몰해가는 세월호와 함께 촛불을 들어 올린 세월호를 기억해야 할 것이며, 하릴없이 흘렸던 눈물과 함께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지를 되새겨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에 남겨진 9명의 희생자들을 어서 수습해야 하고, 세월호의 침몰 원인과 구조가 늦어졌던 이유를 밝혀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 시각에 최종책임자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세월호를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책무다.
혹자는 망각을 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슬픈 기억을 떠올리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일 텐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일 뿐, 사회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아프고 슬픈 집단기억을 끊임없이 반추해야 한다. 결국 공동체란 그 기억을 바탕으로 더 끈끈해지며, 사회는 그것을 기반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3주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당신들이 우리를 구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나저나 아빠가 누나와 형한테 계속해서 세월호를 묻자, 그 옆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막내 복댕이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세월호? 세월호는 이거지. 퇴진해는 박근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