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늑해보이는 남의 집 거실
 아늑해보이는 남의 집 거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나를 위한 여백을 찾겠다고, 미니멀리스트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은 지 9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 후로 내 삶은 어떻게 변했나. 중간점검 겸, 내가 저질렀던 혹은 저지를 뻔했던 실수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실 아직은 공간이 여백보다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다만 입지 않는 옷들을 꽤 정리해서 옷장과 행거가 조금 여유로워졌고, 냉장고에서 상해서 버리게 되는 음식이 꽤 줄었다. 그리고 예전엔 베란다에 천장형 건조대와 설치형 건조대 모두 꽉 차게 빨래를 널곤 했는데 요즘은 설치형 건조대는 펴지 않고도 빨래를 널게 되어 베란다에도 약간의 여유 공간이 생겼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초보 미니멀리스트들이 하게 되는 실수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이건 누굴 주나?' 남에게 물건 떠넘기기

이건 상황에 따라 실수일 수도 있고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 내 상황을 예로 들자면 특별히 유행을 타지도 않고 깨끗한, 거의 새 제품에 가까운 전자제품이나 주방용품 등은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고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주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다 보면 '이건 내가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버리기 아깝다'거나 '이거 멀쩡한데 분리수거함에 버리긴 좀 그렇다'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어 물건이 잘 쓰이면 다행이다.

하지만 '이건 새것이니까 00이한테 필요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물어보지도 않고 그 물건을 누군가에게 준다거나 하는 일은 내 기준에서는 '실수'에 포함된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추측만으로 그 물건을 떠넘기는 건 실수다. 유행이 지나거나 낡아 입지 않는 내 옷들이 대부분 헌옷수거함으로 간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실수는 대부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게 된다. 내가 안 쓰는 물건, 안 입는 옷은 가족들도 안 쓰고 안 입을 가능성이 크다.

잡화점의 주방용품 진열장
 잡화점의 주방용품 진열장
ⓒ 정혜윤

관련사진보기


2. '이거면 다 정리가 되겠지?' 정리용품과 수납용품 구입

"내가 하려고 하는 건 '정리'가 아니다. '비우기'다!"

자주 되새겨야 한다. 자질구레한 물건들이나 버리고 정리해도 줄어드는 것 같지 않는 옷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인터넷으로 서랍장이나 수납용품을 검색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것이 있어 잡화점에 가면 나도 모르게 수납용품을 구경하다가 시간이 휙휙 지나가곤 한다. '저게 있으면 자질구레한 것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비우기'가 먼저이고 '정리'는 두 번째 할 일이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고 나면 물건의 부피와 개수가 줄어 수납이나 정리에 필요한 용품을 추가로 구입해야 하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더 버린 후에 꼭 필요한 수납 용품만 사려고 너저분한 가운데서 아직 버티고 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고 내가 산 정리, 수납용품은 옷걸이와 빨래 집게, S자고리가 전부이다. 옷걸이 덕분에 베란다에 빨래를 널 때 건조대를 따로 피지 않고도 천장형 건조대에 빨래를 다 널 수 있게 되었고, S자 고리는 자주 쓰는 조리도구를 걸어 놓거나 입었던 청바지 등을 선반에 걸어놓는 용도로 잘 쓰고 있다.

S자 고리
 S자 고리
ⓒ 정혜윤

관련사진보기


3. '할 수 있다?' 한 번에 다 정리하기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8월이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났지만 우리집은 여전히 너저분하고 쓰지 않는 물건이 꽤나 많은 것 같다. 유명한 미니멀리스트들이 쓴 책에는 대부분 한꺼번에 다 꺼내놓고 정리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난 한 번에 다 꺼내놓고 정리할 공간도 없거니와, 한 번에 다 정리할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도 없다. 누가 보면 핑계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좀 더디게 비우기를 실천하는 중이다. 어차피 내가 편하려고 하는 미니멀리즘인데 내 사이클에 맞춰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 모든 자기계발서와 미니멀리즘 관련 책들이 조금씩은 다른 것처럼 나도 조금 다를 수 있다는 핑계와 함께, 천천히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정리용 바구니
 정리용 바구니
ⓒ 정혜윤

관련사진보기


4. '어쩔 수 없이 쇼핑을' 마음에 안 드는 건 몽땅 버리고 새로 사기

SNS에서 종종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을 찾아본다. 게을러지고 싶을 때, 집에 분리수거 해야 할 쓰레기가 쌓여 갈 때 보면 자극도 되고 얼른 일어나 청소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런데 불필요한 가구나 물건 따위는 보이지 않으며 원목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깔끔하고 포근한 이 미니멀리스트들의 집을 보다 보면 우리 집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자취생 시절 저렴하게 구입한 알록달록한 색깔의 조리도구나 월세라 내가 손댈 수 없는 싱크대 색깔이나, 오래전 물려받아 쓰고 있는 색이 바랜 전자레인지. 쌀이 많이 들어가 쓰고는 있지만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 황토쌀독. 이 모든 걸 내 마음에 드는 물건으로 한 번에 바꾸면 참 좋겠지만 그 정도의 비용을 한꺼번에 지출할 여유는 없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 중 정말 평생 쓸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이 나타나면 여유가 되는 선에서 하나씩 바꾸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미니멀리스트의 멋진 집은 아니겠지만, 나 편하자고 하는 거니까 무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올봄에는 내 공간에서도, 마음에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조금 더 비우고, 바쁜 가운데 여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좀 더디더라도 천천히 비울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집도 전보다 여백이 생기고, 충동적인 쇼핑으로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것들로 삶을 채우게 되겠지. 내 미니멀리즘 라이프는 계속되고 있다.


태그:#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