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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가 삭감된 근로계약서에 합의하는 것을 거부한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한 것은 부당해고라는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12일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4조가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자연스러운 결과라 하겠다. 그렇다면 근로자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자발적 의사로 합의한 사항은 모두 법률적 효력이 있을까?

근래 회사가 제시하는 연봉 근로계약서들을 보면 문서의 말미에 "상기 연봉계약 내용은 본인 이외에는 절대 비밀을 유지할 것이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회사로부터의 징계 등 어떠한 제재도 감수할 것임을 확약합니다"와 같은 문구가 삽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연봉 비밀 유지 의무'를 근로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직원들에 대한 연봉 관련 정보가 공개될 경우, 직원들 간 위화감 조성, 연봉산정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분쟁 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회사가 인사관리의 편의상 근로자의 서약을 미리 받아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봉 비밀 유지 의무'에 서명한 직원이 이를 어기고 본인의 연봉을 내외부적으로 공개한다면 계약위반을 이유로 회사가 해당 직원에 대해 해고(근로계약 해지) 등의 징계를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 등으로 징계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경우라도, 이 사유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근로자를 징계할 '정당한 이유'로 인정되어야 징계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법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근로자의 행위가 회사에서 정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만으로 근로자를 징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근로자가 직장의 내부사실을 외부에 공표하는 것은 공표된 내용과 그 진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목적, 공표방법 등을 고려하여 사용자의 비밀, 명예, 신용 등을 훼손하는 행위로 인정될 때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므로, 정보 주체인 근로자가 본인의 연봉을 공개하는 행위가 징계 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 상황은 매우 제한적이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직원이 본인의 연봉을 공개함으로써 회사의 비밀·명예·신용이 훼손된다고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연봉의 공개가 비밀로 지켜져야 한다는 법률적인 근거는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다만, 계약 일반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 간에 약정한 계약 내용은 위법하지 않는 차원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지켜져야 할 것이고, 이를 위반 시 회사는 계약위반을 이유로 직원에게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회사로서는 어떤 손해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입증하기가 사실상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회사가 '연봉 비밀 유지 의무'와 관련하여 직원들로부터 받는 확약은 사실상 선언적 의미로서만 기능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사실 비밀 유지 의무와 상관없이 직장인들은 원래 서로의 연봉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연봉은 곧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고, 실질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만큼 연봉을 받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설사 연봉이 많다고 하더라도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 정서상 쉽게 공개하지 못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렇다면 회사가 연봉계약을 체결하면서 '연봉 비밀 유지 의무'와 관련하여 구태여 "~를 위반할 시에는 회사로부터의 징계 등 어떠한 제재도 감수할 것임을 확약합니다"와 같은 위협성 문구를 삽입할 실익이 없다. 회사로서는 이를 통해 직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비밀을 유지하길 바랄 테지만, 직원들로서는 사기만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려고 앉았다가도 엄마로부터 공부 안 하냐는 잔소리를 들으면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지 않은가. 사장님들·인사담당자들은 "상기 연봉계약 내용은 본인 이외에는 비밀을 유지할 것임을 서약합니다"와 같은 부드러운 문장을 활용해 보는 것을 적극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후록 시민기자는 공인노무사입니다.



태그:#연봉 비밀 유지 의무, #근로계약서, #연봉계약서, #징계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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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로서 '노무법인해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노무자문, 급여관리, 근로자들의 부당해고, 체당금 사건 등을 수행하면서 널리 알리면 좋을 유용한 정보를 기사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blog.naver.com/lhr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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