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학교 교문 옆에 조성한 노란 리본 가로수길입니다. 글씨가 지워지고 헤졌을지언정 지난 3년 동안 비바람을 꿋꿋하게 버텨냈습니다.
 학교 교문 옆에 조성한 노란 리본 가로수길입니다. 글씨가 지워지고 헤졌을지언정 지난 3년 동안 비바람을 꿋꿋하게 버텨냈습니다.
ⓒ 서부원

관련사진보기


우리 학교 들목엔 노란 리본을 매단 가로수 길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몇 달 뒤 교사와 아이들이 뜻을 모아 조성한 것이다. 그때 아이들은 각자의 리본 위에다 추모와 다짐의 글귀를 적어놓았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아름드리나무에 줄을 이어 묶고 하나하나 리본을 매달던 그땐 사실 얼마나 갈까 싶었다. 거센 장맛비에다 여름철 뙤약볕, 겨울철 눈보라와 거센 바람을 하늘거리는 리본이 견뎌내지 못할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가장자리의 올이 풀려 나풀거리고, 끝이 헤져 길바닥에 나뒹굴라치면 쓰레기처럼 보일 텐데, 내심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지금 리본 위 아이들의 검정 글씨는 이미 지워져 버렸다. 직접 썼던 아이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을 뿐이다. 언젠가 글씨가 희미해져 가는 걸 유난히 아쉬워하던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검정 글씨의 절반은 세월호 친구들을 따라 하늘로 날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노란색에 스며들어 리본과 한 몸이 되었다고.

리본 달았던 아이들은 교정을 떠났지만...

노란 가로수 길을 만들었던 아이들은 이미 졸업해 학교를 떠났다. 대신 조성된 사연을 알 길 없는 새내기들이 등하굣길이나 점심시간 때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 쓰다듬듯 어루만지며 가는 새내기들의 모습이 익숙하다. 지난 3월 초, 그 길에서 마주친 한 새내기는 이 길이 우리 학교의 '첫인상'이라고 말했다.

엊그제 졸업생 한 아이가 학교를 찾아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꺼이꺼이 울며 누구보다 슬퍼하던 아이였다. 이후 그는 학교 안팎의 여러 추모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교정에 가로수 길을 조성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군 입대를 앞두고 그가 만든 가로수 길이 보고 싶어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길을 따라 부리나케 걷던 그는 직접 써서 매달았다는 노란 리본을 금세 찾았다. 검정 글씨는 이미 바래 거뭇한 자국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당시 적은 글귀를 또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세월호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달라질 것이다.'

학교를 찾기 며칠 전 팽목항에 다녀왔고,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만난 뒤 입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세월호가 누워 있는 목포 신항엔 가족과 함께 갈 거라고 했다. 그곳에도 다짐을 적은 리본을 매달아 두고, 제대하면 맨 먼저 찾을 것이라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에게 세월호는 '트라우마'이자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세월호 세대'에게 세월호는 삶의 나침반

그래선지 또래 아이들은 '세월호 세대'라는 명명을 외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의 기억이 지난 촛불에 심지를 당겼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쫓았다는 자부심이 묻어있다. 노년 세대에게 6.25 전쟁이, 중년 세대에게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이 그러하듯, 아이들에게는 세월호 참사가 그들의 생애에 최대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 대통령이 내려오자 세월호가 올라왔다. 학교 내 아이들의 수동적인 삶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당장 세월호 리본을 가슴에 패용하고, 손목에 노란 팔찌를 찬 아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한 교실에 절반 가까이 된다. 마치 유행처럼 리본과 팔찌를 구할 수 없는지 물어오는 아이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시작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이어진 지난 3년간의 격동의 시간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몰고 왔다. 무엇보다 시사와 정치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학교 내에서 공공연해졌다. 지금껏 대학입시에 목맨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정치는 딴 동네 이야기이거나 호사스러운 고민이었을 뿐이다.

팍팍한 학교생활에 숨통을 틔워주거나 대학입시에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면, 학교는 물론 아이들에게조차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학교생활의 꽃이라는 동아리 활동조차 그러한 범주 안에서만 운영되었다. 하물며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이야깃거리라 해봐야 스포츠 아니면 연예인에 관한 가십거리가 사실상 전부였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 달라진 학교 모습

9일 오전 육지이동 최종점검을 마친 세월호가 이날 오후 본격적인 육상작업을 위해 반잠수선 위에서 600대의 모듈트랜스포터 위에 실린 채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 육지로 이동하는 세월호 9일 오전 육지이동 최종점검을 마친 세월호가 이날 오후 본격적인 육상작업을 위해 반잠수선 위에서 600대의 모듈트랜스포터 위에 실린 채 부두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급기야 올해 '시사평론 동아리'까지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학년과 학급 구분 없이 뜻 맞는 아이들끼리 빈 강의실에 모여 토론하는 모임이다. 숙제와 시험공부를 하는 대신, 정치와 사회를 논하는 '불온한' 동아리인데도, 게시판에 모집 공고를 붙이자마자 10여 명의 아이들이 앞다퉈 모여들었다.

그들이 선택한 '교재'는 종이 신문이다. 진보와 보수 성향의 다섯 종류의 신문을 교차해서 읽고 언론사별 논조를 비교, 분석해 토론한다. 아이들이 굳이 신문에 주목한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우리 사회의 갈등이 무엇보다 언론의 책임이라 여긴 까닭이다. 이를 두고 한 아이는 '박근혜가 무능했다면, 언론은 사악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요즘 그들의 토론 주제는 단연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에 대해서다. 처참한 몰골의 세월호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의 모습을 먼저 보도하는 신문과, 인양 비용부터 따지고 보는 신문 사이에서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게 됐다고 말한다. 여러 신문을 비교해가며 읽다 보니 우리 사회에 언론 개혁이 왜 시급하고 중요한지 절감했다고 했다.

교사인 나도 가만있을 수 없어, 학기 초 방과 후 수업의 일환으로 글쓰기 반을 개설했다. 역사 전공자가 무슨 글쓰기 수업이냐며 생뚱맞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성찰적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홍보했다. 수험과목과는 사뭇 동떨어진 것이어서 과연 몇이나 수강신청을 하게 될지 반신반의했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애초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요령을 가르치려는 건 아니었다.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으면서, 그들 앞에서 교사랍시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아이들의 굳게 닫힌 입을 틔워주고 싶어서다.

지금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 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만히 있어라'는 어른들의 그 한마디. 지금껏 가정과 학교에서 숱하게 들어야 했던 그 무책임한 말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고 싶었다. 이것이야말로 침몰하는 세월호를 닮은 지금의 교실을 바꿔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그러자면 일단 입을 열도록 해야 한다. 가슴과 머리가 이끄는 외침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입을 통해 터져 나올 수 있도록 북돋워 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이 수업만이라도 기꺼이 그들의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가슴 속 이야기들을 충실히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주기로 다짐했다. 과연 원고지 위에선 아이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월호... 아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그들이 정한 글쓰기 주제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대한 비평이다. 특히 교육 관련 공약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듯 원고지의 뒷면까지 빼곡하게 채웠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마구 질러댄다며 분노하는가 하면, 정작 학생들이 아닌, 학부모들을 위한 공약들뿐이라며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결국 투표권이 없는 게 '죄'라는 걸 깨달은 거다.

아이들의 말마따나, 이게 다 세월호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수습 과정에서 벌어진 지난 3년간의 야만적인 행태가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를 향한 '삐딱한 시선'을 갖게 만든 것이다. 아무리 경제 위기가 심각하고, 여전히 학벌 구조가 온존하다고 해도, 세월호가 열어젖힌 아이들의 입을 다시 닫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둔 오는 15일, 이곳 광주에서는 '청소년 촛불 문화제'가 열린다. 버스킹 공연과 기록 전시회 등 시민 참여 프로그램부터 토크콘서트까지 아이들이 직접 기획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그들이 정한 이번 문화제의 슬로건은 '기억,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새로운 시작'에 아이들이 앞장서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지난 3년간 아이들은 분명 달라졌고, 이러한 변화는 곧 치러질 대선에 비할 바 아니다.


태그:#세월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