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랑 밥 한 번 먹은 적 없는 직장 상사가 대뜸 반말을 했다. 먼저 양해를 구하고 호칭을 정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랑 밥 한 번 먹은 적 없는 직장 상사가 대뜸 반말을 했다. 먼저 양해를 구하고 호칭을 정했다면 좋았을 텐데.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은지야, 볼펜 있니? 잠깐 볼펜 좀 빌려줘."

같은 회사지만 다른 빌딩에서 근무하는 과장님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 대신 볼펜을 빌려 달라며 손을 뻗었다. 나는 의례적으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볼펜을 건냈다. 과장님이 가신후,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반말을 허락한 적이 있었나? 왜 이름으로 부르지? 나랑 밥 한 번 먹은 적도 없는 사람인데.'

볼펜을 빌려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불편한 기분이 뒤늦게 찾아왔다. 타이밍을 놓쳤으니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다. 회사에서 내 직함이 따로 있고,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반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랑 티끌만큼의 친분이나 안면이 없음에도 인사 대신 반말이 먼저 날아온다.

본인께서는 친근함을 담아 부른 호칭이겠지만, 내게는 반작용을 일으킬 뿐이었다. 앞으로도 얼굴 볼 관계기에 불쾌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쌓아둔다. 회사에서 이름을 불리는 것은 반가움보다 거북함이 먼저 다가온다. 먼저 양해를 구하고 호칭을 정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에서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정치적 성향의 보수를 떠올린다면 그건 아니다. 유교와 효 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옛 사람의 고지식한 보수주의자를 생각하면 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만나는 어르신들마다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나는 의문과 의심 한 점 없이 그 가치를 받아들였다. 순종적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다. 거친 면 하나없이 문제나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내 성격은 무난했다. 그 테두리가 나의 외피임을 모르고 나는 그렇게 보수적인 사람으로 자랐다.

내가 듣기 싫은 건 타인도 듣기 싫을 것이다

어른을 공경하듯이 아우(나보다 어린 연배의 사람)를 존중해야지. 술, 담배, 늦은 귀가, 반말, 욕설 한 점 없이 하늘을 우러러, 땅 아래 홍익인간을 표본으로 살았다. 어린 사람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존댓말을, 오늘 본 사람 또 봐도 인사하는 성인으로 12년을 살았다.

작년 벚꽃이 피기 전의 어느 봄날, 회사생활에 지쳐 나홀로여행으로 간 제주도에서 저녁마다 술 파티가 열리는 게스트하우스에 숙박한 적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가득한 여행자 숙소는 '반말'이 '빨리 친해지는 지름길'이요, 미덕인 곳이었다. 그 게스트하우스가 가진 고유한 미덕을 숙소에 늦게 도착한 나는 알 길이 없었다. 막 거실에 발을 내딛으니 커다란 술상들 앞에는 나란히 얼큰히 취한 젊은 남녀들로 가득했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야! 너 늦게 왔으니 자기소개해야지. 박수!"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마구 손뼉을 쳐서 쏟아치는 박수소리가 당황스러웠다. 나는 낯선 이의 반말에 놀랐음에도 얼떨결에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은 이은지고요, 나이는 서른 한 살입니다. 서울에서 왔습니다."

박수갈채 후, 한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한 5분쯤 지났을까? 옆 테이블에 있던 남자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 서른 한 살이지? 반갑다, 친구야!"

다짜고짜 반말이었다.

"...왜 반말하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의 가벼운 말투와 행동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막 숙소에 도착했을 때 들었던 반말에 이미 한 번 울컥했던 신경줄이었다. 주변에서 "오오~!" 하는 의미가 모호한 감탄사가 터졌다. 상황이 민망해졌다. 웃음으로 무마 아닌 마무리가 되었지만, 상대방에게 반말한다고 면박을 준 사람에게 말을 걸 용기 혹은 객기 있는 사람은 없었다.

딱히 술을 즐기지도 않아 자리만 차지하던 나는 십 분쯤 더 자리를 지키다 피곤하다고 말하며 일어났다. 예의상 잡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모두 섭섭하지 않은 이별이었다.

"왜 반말하세요?"

나는 졸지에 앞뒤가 꽉꽉 막힌 보수적인 사람이 됐다. 나는 초등학생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데.
 나는 졸지에 앞뒤가 꽉꽉 막힌 보수적인 사람이 됐다. 나는 초등학생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데.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일순간 내 얼굴을 채웠던 그 웃음은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경고였다. 술도 싫고, 가벼운 분위기도 싫고, 가벼운 사람은 더 싫다.

이 이야기를 주변 지인들에게 하니 반응이 다양했다.

그게 왜 기분 나빠? 동갑이면 반말할 수도 있지. 넌 너무 보수적이야. 내 반말은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괜찮나요? 네 앞에서는 말 조심해야겠다. 면전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고요? 대단하다.

나는 졸지에 앞뒤가 꽉꽉 막힌 보수적인 사람이자, 그런 말을 내뱉어 상대방에게 무안을 준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초등학생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 동갑인 친구에게도 말 놓는데 몇 개월이나 걸린다. 나는 내가 듣기 싫어하는 반말을 초면에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연하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친해지자는 이유로 상대방의 반말을 허용해야 하나?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의사를 가진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행태로 접근해도 의도가 순수하다고 해서 감내해야 하는 걸까? 난 그 사람이랑 친해지지 않아도 되는데? 하룻밤 스쳐가는 여행자들의 숙소에서 마주친 사람을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불편한 상황을 감수해야 하나. 꽉 막혔다든가 무섭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허락한 적 없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왜 반말하세요?

이 말은 나도 하기 싫었다.



태그:#반말, #반말금지, #듣기싫은말, #왜반말하세요, #상호존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범하고 낯선 일반인입니다. 낯익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