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재를 시작하며 : 교육감은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자리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하고 다녀도 강원도 넓은 땅덩이 구석구석 학교마다 마음을 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말은 많아지고 현장의 소리를 듣는 데 소홀해지기 쉽다. 어떻게 하면 가감 없이 보고, 듣고 그 이야기를 교육 구성원들과 나눌 수 있을까?
그래서 떠올랐다. 등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한 번도 기사를 써보지 못했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기자로 찾아가서 질문을 던지자. 그들이 주인공임을, 나는 그들의 대변인임을 알려주자. 그래서 용기 내어 시작한다. '민병희가 만난 사람'. 올 한해 틈틈이 이렇게 펜과 수첩 들고, 사진기 메고, 두 발로 강원도 교육 현장을 찾아가 보려 한다. -기자 말
홍천읍에서도 70km나 떨어진 내면에 자리 잡은 원당초를 찾아가는 길. 4월을 며칠 앞둔 봄이건만 눈발이 앞을 가린다. 서울의 3분의 2 정도 되는 넓은 내면 지역에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학교. 16명 학생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들려오고, 마을 사람들의 추억과 희망이 담겨있는 그곳을 향하는 마음이 설렌다.
지난 겨울, 소복이 눈이 내린 홍천 내면의 원당초. 16명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꿈을 일구고 있다.
▲ 눈 내린 원당초등학교 지난 겨울, 소복이 눈이 내린 홍천 내면의 원당초. 16명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꿈을 일구고 있다.
ⓒ 신영식

관련사진보기




4년 전, 아홉 살 딸 아이와 함께 이곳에 자리를 잡은 신영식, 박미숙 부부 교사. 어느 교육 잡지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에겐 기피 대상인 벽지의 작은 학교 선생님으로,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 땅을 일구는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물론 도 교육청 홍보팀이 간다는 얘기만 했지, 교육감이 간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교사인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

"20년 교직 생활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처음엔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이들에게 평안하고 행복한 기운이 느껴진다. 보통 작은 학교에서는 교사 한 명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적지 않다. 일상생활의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도 20년 교직 생활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이 부부 교사.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교실에서 반갑게 맞아준 신영식, 박미숙 부부교사. 취재 기자가 교육감이라니 처음엔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행복한 미소로 격의 없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 신영식, 박미숙 교사 교실에서 반갑게 맞아준 신영식, 박미숙 부부교사. 취재 기자가 교육감이라니 처음엔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행복한 미소로 격의 없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 최형신

관련사진보기


(박미숙) "16명의 전교생 중 학원 다니는 아이가 한 명도 없어요. 4시 반, 에듀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고, 놀고, 이야기를 나누죠. 행복한 아이들을 만나서 아이들이 제게 주는 행복이 너무 커요. 아이들이 저에게 칭찬, 격려, 존중 이런 것을 주면 '내가 참 좋은 선생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신영식) "저는 큰 학교에 있을 때도 행복했어요. (웃음) 하지만 아이들과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하기 힘든 아쉬움이 컸어요. 이곳에서는 한 명 한 명 아이 수준에 맞춰 공부를 가르칠 수도 있고, 우리 집 옥상에 텐트 쳐놓고 캠핑도 하고, 교실에서 아이들 각자의 어항에 물고기도 키워요. 하고 싶은 교육 활동을 다 할 수 있어요."
(민병희) "저도 큰 학교에서 천천히 배우는 스타일이어서 힘들어하던 학생이 작은 학교로 전학 가면 싱글벙글 웃으며 학업성취가 금방 늘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아이의 수준에 맞게 선생님이 지도해 준 덕분이었겠죠."
(신) "네 맞아요. 우리 학교 한 아이는 입학 때부터 혼자여서 과외 같이 수업을 해요. 모둠 활동이 필요할 때 못해서 아쉬운 것도 사실이예요. 하지만 그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 보완이 가능해요. 아이의 바람에 맞춰 서울로, 강화도로 여행도 가고... 교사의 에너지에 따라 얼마든지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거죠."

시골 작은학교 아이들은 학원에 다닐래야 다닐 수가 없다. 대신 친구들과 맘껏 놀 수 있다. 학교에서.
▲ 맘껏 노는 아이들 시골 작은학교 아이들은 학원에 다닐래야 다닐 수가 없다. 대신 친구들과 맘껏 놀 수 있다. 학교에서.
ⓒ 신영식

관련사진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여건이나 오지에 근무하면서 겪는 힘든 점이 있지 않나요?
"힘든 게 별로 없어서 답하기 곤란한데... 산골이어서 좀 춥다는 정도? (웃음) 업무 많은 걸 걱정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긴 해요. 물론 교사 수가 적어서 1인당 업무 가짓수는 좀 많은 편이긴 한데 대신 아이들 가르치는 걱정이 적기 때문에 상관없어요. 실은 업무도 교무행정사 선생님들 덕분에 정말 많이 줄었어요."

"시골에서 아이 키우기 힘들다구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이곳을 선택했죠"

강원도 벽지의 작은 학교에는 오늘도 하루하루 교사의 보람을 찾아가는 분들이 많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마을 주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두 선생님 역시 '학원도 없는 시골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려고 하냐'는 주변의 우려 섞인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사실 시험관 아기로 어렵게 낳은 딸 아이를 좋은 곳에서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시골의 작은 학교를 찾아다녔죠. 초등학교 1학년을 도시의 큰 학교에서 다니다 여기로 왔는데, 다호(딸)는 이곳을 정말 좋아해요. 중학교도 시골의 작은 학교로 가고 싶어 하죠. 아이가 시내의 큰 학교에 가고 싶다면 존중해주려고 했는데, 덕분에 저희는 좋아요."

-작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사회성을 키우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잖아요? 교사로, 학부모로 시골에 살아보니 어때요?

"작은 학교는 가족의 개념으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16명이 한 가족으로 언니, 오빠, 동생을 배려하며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거든요. 교사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그 관계에서 얻는 배움이 정말 커요."

한 가족처럼 배려하며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원당초 아이들
▲ 친구들 한 가족처럼 배려하며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원당초 아이들
ⓒ 신영식

관련사진보기


이 부부교사는 마을의 빈집도 싸게 빌릴 수 있었다. 집 앞에 텃밭 300평까지 딸려왔다. 농사는 아직도 어려운 숙제처럼 남아있지만, 이렇게 마을 사람이 되어간다.

"동네 분들에게 땅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 줄 알기에 그냥 놀릴 수 없어요. '선생님네는 밭을 풀밭으로 만들어놨네'라는 말을 들을 수 없잖아요. 다행히 저희가 출근한 사이 동네 분들이 트랙터로 밭도 갈아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세요. 솔직히 아직도 힘들긴 하지만요. (웃음)"

"작은 학교는 학교 이상의 의미,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질 거예요"

지난해에는 농사가 잘 안돼 마을 전체가 어려웠다. 그 영향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났다. 하지만 두 선생님은 그 어떤 설명이나 상담 없이도 아이들의 마음을,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질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곳에 살며 이곳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교사로서 많은 의미가 있어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아이들에 대한 마음도 달라져요. 부모님들과도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죠."

마을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전해지는 작은 학교. 하나둘 떠나는 이웃들을 지켜봐야 했던 마을 사람들은 교육부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에 시름이 깊었다고 한다. 

- 얼마 전 KBS 특집 보도 보면, 학교 통폐합이 지방소멸로 이어진다. 이런 경고도 나왔어요. 학교는 마을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떤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 "시골의 작은 학교는 학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요.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없는 곳에 젊은 부모들이 왜 살려고 하겠어요. 우리 학교에는 집에 가려면 학교 버스에서 내려서 4km를 더 가야 하는 학생도 있어요. 그래도 학교가 있어 귀농하는 분들이 있고, 아이들이 있어 마을에 희망이 있어요. 학교가 사라지면 머지않아 마을도 사라질 거예요."

(신) "물론 경제관료 시각으로 경제성을 따지면 고비용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스트레스 심한 큰 학교를 기준으로 두고 작은 학교를 평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단 한 명의 학생이 있는 학교도 국가가 소홀히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담임 선생님 집 옥상에서 캠핑을 하는 원당초 아이들. 신영식 선생님은 "하고 싶은 교육 활동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작은학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
▲ 하고 싶은 교육을 맘껏 할 수 있는 학교 담임 선생님 집 옥상에서 캠핑을 하는 원당초 아이들. 신영식 선생님은 "하고 싶은 교육 활동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작은학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
ⓒ 신영식

관련사진보기


"도시의 편리함 포기할 수 있다면 교사로서 가장 보람된 곳이 작은 학교"

강원도에는 시골 벽지의 작은 학교도 많고, 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 등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도 많다. 주거환경이나 문화시설도 부족하다. 솔직히 이런 조건을 피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고향이 서울인 두 선생님은 20년 전, 일부러 강원도를 선택했다. 

(신) "도시의 편리함을 일부 포기할 수 있다면, 교사로서 가장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강원도 아닐까요. 교육과정, 방학계획서도 모두 교사 자율에 맡기죠. 번거로운 결재를 받지 않아요. 정말 원하는 교육활동을 다 할 수 있어요."

(박) "가끔 서울에 가서 친구 교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처음엔 '정말?' 하다가도 곧 '강원도 부럽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웃음)"

문득 얼마 전 대도시에서 강원도로 전입하신 한 선생님께서 보내주셨던 메신저 쪽지가 떠올랐다.
"교직 생활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교육 교사 된 보람을 느낍니다"


"도시의 편리한 삶을 일부 포기할 수 있다면, 교사로서 가장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는 곳은 강원도 작은학교" 이 부부교사의 확고한 생각에 공감이 간다.
▲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우리 반 "도시의 편리한 삶을 일부 포기할 수 있다면, 교사로서 가장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는 곳은 강원도 작은학교" 이 부부교사의 확고한 생각에 공감이 간다.
ⓒ 최형신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원도 초등 임용시험은 2년째 정원 미달이다. 분석을 했는데, 역시나 시골 근무에 대한 기피심리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교직원 합동 관사나 여러 복지 혜택을 최대한 보강하고  있지만, 그래도 도시의 편리함을 똑같이 만들어줄 순 없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선생님도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만약 이들이 부럽고 이들처럼 행복해지고 싶은 교사라면 강원도로 꼭 오게 하고 싶다.

"폐교 대상의 작은 학교야말로 젊은 시절 꿈꾸던 교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곳이에요. 이 부분을 잘 알리면 지치고 힘든 도시 교사들이 많이 올 것 같은데... 물론 강요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가 누리는 행복이 우연히 교장 선생님 잘 만나서,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어야 하겠죠. 강원도 어느 학교에 가도 지금처럼 아이들과 함께 맘껏 가르치고, 배우고, 살아갈 수 있는 학교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어요."

역시나. 두 부부 교사의 마음이 참 고마웠고, 작은 학교든, 큰 학교든 학생도 교사도 소중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두 교사의 마지막 당부에 숙제를 받아든 기분이 들었다.

추신 1. 참고로 난 사진을 좋아한다. 사진은 피사체의 행복감을 찍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증거로 헤어지기 전에 이 행복한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신영식, 박미숙 선생님과 원당초 5학년 재학중인 딸 다호.
다호의 표정에서 때묻지 않은 평화로움과 행복감이 느껴졌다.
▲ 다호네 가족 신영식, 박미숙 선생님과 원당초 5학년 재학중인 딸 다호. 다호의 표정에서 때묻지 않은 평화로움과 행복감이 느껴졌다.
ⓒ 민병희

관련사진보기


추신 2. 돌아오며 수행비서에게 '인터뷰 잘한 것 같냐'고 물었다. 여전히 내가 말이 많다고 했다. 다음에는 말을 더 줄여야겠다.

덧붙이는 글 | 4월 12일에 강원교육희망재단 개소식을 합니다. 앞으로 이들 부부교사처럼 행복한 작은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을 위해 유연한 지원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글을 쓴 민병희 시민기자는 강원도 교육감입니다.



태그:#민병희, #원당초, #신영식, #박미숙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