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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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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불쑥 편지 한 통을 내민다.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큰 아들 편지다. 내용이 구체적이고 분량도 상당하다.

아내가 편지를 건내며 해맑게 웃는다. 아내는 젊은 날 내게 받은 편지도 그렇게 정성스레 읽지 않았다. 때문에 아내 모습이 참 낯설다.

종이를 펼쳤다. 큰애의 화려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헌데, 녀석은 왜 내겐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굳이 '어머니께'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뭘까? '부모님께'라는 화합의 단어도 있지 않은가.

편지는 치밀했다. 큰애는 아내가 이제껏 차려준 밥상 숫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감사를 표현했다. 그것도 숫자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글속에 아빠는 없다.

편지를 읽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동안 내가 녀석에게 보낸 '사랑의 표현'이 얼만가! 굳이 돈으로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하여, 녀석의 글을 분석했다. 큰애는 밥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글을 읽으며 요리학원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혔다. 큰애 감사편지는 깨끗이 포기한다.

내겐 아직 하늘이 준 두번의 기회가 있다. 둘째와 막내도 곧 학교에서 편지를 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오늘부터 밥상은 내가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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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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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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