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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개X끼"

1976년 중국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하북성 탕산시에서 진도 7.8 규모의 지진이 발생합니다. 탕산 대지진은 23초간 지속했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24만 명이 사망하고 44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이 사고는 '탕산대지진'이라 불리게 됩니다.

2010년 중국에서 국민 영화감독으로 칭송받는 펑샤오강 감독이 탕산대지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듭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지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남편과 집 근처 사무실에 있다가, 지진이 발생하자 집으로 달려갑니다. 주인공의 여섯 살 배기 쌍둥이 아들과 딸은 집에서 잠을 자다 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탈출하지 못하고 집에 갇히지요. 주인공이 남편과 집에 도착했을 때, 자녀들이 있던 아파트가 막 무너지려고 합니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출입구로 뛰어가던 남편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파편에 맞아 죽습니다.

남편이 죽는 모습을 본 주인공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자식을 구하기 위해 무너진 건물 잔해로 달려가, 돌무더기 아래에 있는 자식을 발견합니다. 그들을 구하려는 순간, 또다시 시작된 지진으로 건물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눈앞에서 자식들이 사라지고 맙니다.

영화 <대지진>에서 주인공(쉬판 분)이 "하느님 개X끼"라고 외치는 모습.
 영화 <대지진>에서 주인공(쉬판 분)이 "하느님 개X끼"라고 외치는 모습.
ⓒ 필라멘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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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하늘을 향해 "라오티엔예, 니거왕빠단"(老天爺 你個王八蛋)이라고 소리칩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하느님 개X끼"입니다. 중국어에서 라오티엔예(老天爺)는 '하늘에 있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로 우리나라의 '하느님'과 같은 의미입니다. 개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한국사람은 '하늘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이라며 하늘을 원망할지언정, '하느님 개X끼'라며 대놓고 욕하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사람은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세상의 선악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내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별로 믿지 않습니다. 중국사람에게 '하느님'은 경배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 거지요.

중국사람은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 세상에는 권선징악이라는 법칙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사람은 세상 모든 일을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행동합니다. 이제부터 중국사람이 왜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현실 세상에 '권선징악'이란 없다

2500년 전 공자가 살던 중국 노나라는 주변의 어느 나라보다도 도덕적 정통성이 있었습니다. 노나라는 '주공'이 세웠습니다. 중국 고대사에 '하, 은, 주' 세 나라가 있는데, '주공'은 주나라를 세운 문왕의 둘째 아들로, 형인 무왕이 죽은 뒤 나이 어린 조카를 대신해 나라를 운영합니다. 조카가 성인이 된 뒤에는 깨끗하게 실권을 넘겨줬습니다.

이런 도덕적 정통성을 가진 '주공'의 노나라에서 공자 시대에 와서 제후(왕)가 실권을 잃고 귀족들이 판쳐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공자 초상화
 공자 초상화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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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직면한 공자는 하늘에 있는 초자연적인 뭔가가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어 간다는 생각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자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하늘 신의 존재나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으로 변해 귀신으로 존재한다는 관념을 믿지 않게 됩니다.

공자는 제자가 귀신과 사후 세계에 관해 물었을 때, "사람의 일도 아직 잘 모르는데 귀신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또 살아생전의 일도 아직 잘 모르는데 죽어서의 일을 어떻게 알겠냐"라고 답합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잘 모르는 일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은 사람이 해결해야 하고, 사람이 세상일을 해결하는 이데올로기로 '인'(仁)이라는 사상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공자의 사상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봤을 때도 상당히 합리적입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람이 해결해야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하늘이나 신이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공자의 철저한 현실주의 사상을 2500년 동안 교육받은 중국사람은 매사에 현실적입니다. 중국사람은 하늘에 신이 있고,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 후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극락이나 천당에 가고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초자연적인 신의 존재나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돼 극락이나 지옥에 간다는 종교는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1850년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기독교 예수의 동생이라며, 기독교의 천국을 '현실'에서 이루겠다고 설파했습니다. 이래야만 사람이 모입니다.

현실적인 실재의 일에만 관심있는 중국사람의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은 공자의 현실주의 사상에서 연유합니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이 도덕이나 윤리 상식에 벗어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려고 하면, '하늘이 보고 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냐', '천벌을 받는다'라며 세상일은 결국 권선징악에 따라 결말이 나니 항상 하늘을 염두에 두고 미리 생각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세상일을 관장하는 '하늘'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말 '사람의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사람의 일은 하늘에 달렸다'(人在做天在看)는 한국과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는 상대방이 좋은 일을 했는데도 보상받지 못했을 경우, 또는 상대방이 나쁜 일을 했는데도 벌을 받지 않을 경우 즉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가 상식과 벗어났을 때 그 결과를 수용하는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한국에서처럼 미리 행동과 생각을 조심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발생한 결과를 자신의 '운명'(運命)으로 받아들이는 의미가 있습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않는다

중국사람은 현실의 조건이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좀 심하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리니엔구(李年古)는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나 중국 창사(長沙) 텔레비전 방송국 뉴스 부부장으로 일했습니다. 그후 1995년부터 일본 기업의 중국 현지 회사에서 근무하며, 일본기업 미쓰비시, 소니, 도시바, 히타치, 도요타 등에서 일본 기업인들에게 '중국매니지먼트'라는 주제로 강의했습니다.

책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표지.
 책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 표지.
ⓒ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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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일본 기업인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출판했는데, 그 책 제목이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않는다>입니다.

중국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한마디로 정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세상 모든 일이 권선징악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중국사람은 당연히 주변의 불의(不義)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생기는 건 현실적으로 나와 이해관계가 있기에 당연히 참지 못하지요.

중국사람은 하늘이 세상의 선악을 주관한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내가 현실 세상에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꺼릴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팽배합니다.

또 내가 주변에서 생기는 불의(不義)한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직접적인 이해관계만 없다면 나의 불의(不義)한 행동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주위 사람 모두가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나도 주위 사람을 속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모습이 세상 현실이라고 여깁니다.

작게는 공중도덕을 지키는 일에서부터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중국사람의 이런 현실주의적인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사람과 부대끼며 살면서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보고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국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한국 사람보다 더 솔직하고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국사람은 중국사람이 의뭉스러워 속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제가 겪은 중국사람은 너무 분명하게 생각하고 명확하게 행동해서 오히려 한국사람보다 가식이 없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많은 쪽이 옳다고 여깁니다

중국사람은 세상일에 대해 명쾌하게 원칙을 제시해주는 하느님이나 신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자기 생각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옳다고 여깁니다. 설혹 자신의 판단으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지라도, 많이 사람이 옳다고 하면 옳다고 판단해버리는 거지요. 어쩌면 다수 쪽에 속해있으면 혹시 분란이 일어나더라도 더 안전하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2016년 중국 정부는 '효'를 강조했습니다. 중국은 1980년부터 한 명의 자식만 낳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35년이 지나자 젊은이 한 명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외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해서 모두 6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016년 중국에서 홍보한 '효'
 2016년 중국에서 홍보한 '효'
ⓒ bai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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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효를 강조하는 공익광고가 방영됐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효를 강조하자 사람들이 자신도 효자라는 걸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모든 출연자가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부모님에게 효도를 못 해서 잘못했다며, 앞으로는 꼭 효도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방청객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고요.

이렇게 되자, 즐거워야 할 예능 프로그램이 눈물바다가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바탕 눈물 잔치를 벌이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대담 프로그램에서는 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몸을 흔들며 흥겹게 노래를 부릅니다.

2017년 정부 정책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효를 강조하는 공익광고가 사려졌고 그래서 당연히 대담 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불효했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1800년대 후반 중국에서 생활한 미국사람 아서 헨더슨 스미스는 <중국인의 특성>이라는 책에서 중국사람에게는 연극 본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사람은 마치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현실의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바뀌면, 또 바뀐 현실의 상황에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말과 행동을 하지요.

마치 현실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A가 옳다고 하면 그렇게 여기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고, 현실의 상황이 바뀌어, 많은 사람이 A가 틀리고 B가 옳다고 하면 또 그렇게 여기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국사람은 중국사람이 어제하고 오늘 다르게 말하고 행동한다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사람은 서로서로가 '아, 지금 상대방이 현실 상황에 맞게 연기하는구나' 알아채고, 상대방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더라도 단지 보여주려고 저렇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에서 효를 이야기하니, 나도 텔레비전에서 효를 보여주기 위해 눈물을 흘려준 거지요. 마음에서 우러나 저절로 눈물이 나온 게 아니라, 눈물을 흘려준 겁니다.

[About Story] 한국에서 무역 일로 중국 사업가를 만나면서, 중국에서 장사 일로 중국 고객을 만나면서, 중국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중국 선생님과 중국 대학생을 만나면서 알게 된 중국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제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쓰려고 합니다. 나무만 보고 산을 못 보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 관한 개략적인 이야기는 인터넷에 넘쳐 나므로 저는 저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글을 풀어가겠습니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의 피드백을 부탁합니다.


태그:#중국, #중국문화, #중국사람, #현실주의, #탕산대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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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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