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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르시대를 대표하는 건물

나란제스탄 궁전
 나란제스탄 궁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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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제스탄 궁전은 나시르 알 몰크 모스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구시가지를 동서로 잇는 로트프 알리 칸 도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찾기가 쉽다. 궁전 입구는 작게 만들어져 있어 궁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란제스탄 궁전은 상업으로 돈을 번 카밤(Qavam) 가문의 저택으로 1879년에서 1886년 사이에 지어졌다. 카자르시대 이 건물은 지방장관의 관저로 사용되기도 했다.

카밤 가문은 잔드 왕조부터 팔레비 왕조에 이르기까지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상류층 생활을 했다. 19세기에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가 이브라힘 칸(Mirza Ibrahim Khan)에 의뢰해 지었다. 정원과 건물이 어우러진 건물로 카자르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유리거울로 된 실내, 가구와 그림, 벽의 조각, 야자나무와 오렌지나무로 이루어진 정원, 분수 등이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아시아 연구소와 박물관 표지판이 걸려 있는 현관문
 아시아 연구소와 박물관 표지판이 걸려 있는 현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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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팔레비 왕조 때까지 비즈니스용 사무실로, 공적인 회의와 의식을 위한 공간으로, 고위 손님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었다. 1930년부터는 쉬라즈대학교의 아시아 연구소가 들어왔고, 1966년 이란 고고학, 건축, 예술 전문가인  포프(Arthur U. Pope)가 부인과 함께 이곳에 초빙되었다. 1970년부터는 프라이(Richard N. Frye)가 아시아 연구소를 맡아 이란의 언어와 역사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데 앞장섰다.

프라이는 페르시아 문명과 문화의 위대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이슬람 전래 이후 페르시아 문명이 소홀히 여겨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을 중시하면서 과거 페르시아 언어와 문화를 잊으려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정신과 도덕 그리고 문화에 대한 존중 없이는 이란의 미래 발전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아시아 연구소가 문을 닫았고, 그곳에서 수집한 문화유산이 나란제스탄 지하공간에 전시되었다. 이것이 나란제스탄박물관의 시작이다. 나란제스탄 궁전은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건물이 남향하고 있는 형태다. 입구의 로비 건물은 사무실 대기실 등 관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리동 조각을 통해 아케메네스시대로 되돌아가다

양을 팔짱에 낀 사람
 양을 팔짱에 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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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로비 건물에 있는 조각품부터 살펴본다. 건물 안쪽 기단부에 양각으로 새긴 조각이 인상적이다. 아케메네스시대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궁의 공물진상도를 연상시킨다. 조각 속의 인물들이 무언가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각의 수준이 페르세폴리스의 조각에 훨씬 못 미친다. 페르세폴리스의 조각이 예술이라면, 이곳의 조각은 그 아류인 키치(Kitsch)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황소와 싸우는 페르시아 전사다. 그렇지만 싸우는 건지 노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다음으로 음식을 바치는 사람들을 불사친위대가 이끌고 있다. 음식 그릇도 뚜껑이 열린 것이 있고, 닫힌 것이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전사들이 양을 바치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재미있는 게 한 사람은 양을 어깨에 메고, 다른 한 사람을 팔짱에 꼈다. 이 조각이 로비 문 양쪽으로 새겨져 있다.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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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위 벽에는 타일로 만든 일종의 모자이크가 있다. 카펫의 기법을 타일에 응용한 것 같다. 모자이크 그림에서 현대풍이 느껴진다. 그것은 카자르시대 복식과 풍속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림은 화려한 복장의 시종들이 음식과 차 그리고 과일을 나르는 모습이다. 과일은 배로 보인다. 가운데 사람은 페르시아식 모자를 썼고, 양쪽의 두 사람은 아라비아식 터번을 썼다.

이곳 관리동 앞에서 우리는 잠시 정원과 건너편 본전 건물을 살펴본다. 정원 가운데로 물이 흐르고 중간에 분수를 설치했다. 수로 양옆으로 화초를 심어 꽃이 한창이다. 제비꽃과 팬지꽃 계열로 보인다. 이들 꽃밭 양쪽으로는 본전과 로비를 연결하는 길을 냈다. 그리고 그 바깥으로 오렌지 나무를 심었다. 오렌지나무 밖으로는 키가 큰 야자나무를 심어 조화를 꾀했다. 아름다운 정원이다.

본전은 궁전처럼 화려하게 장식했다
 
거울의 방
 거울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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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다. 가운데 거울의 방(Mirror Hall)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건물에 기단부를 만들어, 1층으로 올라가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하다. 그리고 기단부에 문살과 조각을 새겨 건물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 격자창(Lattice) 문살은 지하에 빛이 들어가게 하면서도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게 당초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 비해 조각은 아케메네스 양식이다. 계단 양쪽으로 총을 든 전사가 궁전을 비키고 있다. 계단 밖으로는 사자와 황소가 보인다. 사자는 쇠줄로 목을 묶었고, 황소는 자유롭다. 그리고 페르세폴리스 궁전에서 볼 수 있는 황소를 공격하는 사자상 비슷한 것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용이 사자를 공격하는 모습이다. 돌의 재질이나 예술적인 수준은 페르세폴리스의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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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계단을 올라가면 가운데 거울의 방이 나온다. 이곳은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그랜드 홀로, VIP를 접대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주인의 접견실(Reception Room) 또는 대연회장이다. 그 뒤에 방이 있어 주인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거실 주변에는 방이 네 개 있으며, 이곳은 파티와 작은 연회용 공간이다. 또 다른 쪽 방은 사무실 등 비즈니스와 업무용으로 사용되었다.

거울의 방에서는 유리, 타일, 자개, 나무 등을 사용해 화려한 벽과 천정을 만들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고 서양식 가구를 배치했다. 페르시아식과 유럽식이 결합된 현대적인 실내장식이다. 다른 방은 타일과 목재를 사용해 화려함 보다는 우아함을 강조했다. 또 다른 방은 스테인드글라스형 창문이 아름답다.
 
천정의 그림
 천정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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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식의 창은 사파비 제국(Safavid Dynasty) 이래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이것보다 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스파한의 체헬소툰(Chehel Sotun) 궁전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잔드 왕조의 카림 칸 궁전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나시르 알 몰크 모스크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여기에 뒤지지 않는다.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꽃무늬, 벌집무늬, 사각무늬로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이곳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천정의 나무에 그려진 그림이다. 굉장히 세밀하고 사실적일 뿐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꽃과 새로 이루어진 화조도 속에 아름다운 여인들, 나무가 자라는 이상적인 저택, 숲속에서의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카자르시대 사람들이 이상으로 삼은 천국을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을 천정화(Roof Art)라고 부른다.

벽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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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도 있는데, 세밀화 수준이다. 기법은 천정화와 같다. 이들 그림에서는 페르시아 기법과 프랑스 로코코 기법이 뒤섞인 느낌이다. 꽃과 새를 아주 환상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꽃과 새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들 방을 떠나기 싫다. 그렇지만 이들 방을 나와 2층 한 가운데 서면 정원과 분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예술이 아닌 자연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천국을 느낄 수 있다.

천국 같은 나란제스탄 궁전
 천국 같은 나란제스탄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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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야자수 정원 한 가운데서 분수가 솟아오르고 있다. 녹색과 에메랄드빛이 어우러진 정원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누가 천국을 없다고 했던가! 우리가 계단을 오르며 만난 전통복장의 여인이 선녀가 아닐까? 그런데 그녀가 들여다보는 것이 핸드폰이었다. 그제야 이곳이 천국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이제 아시아 연구소에서 수집한 문화유산을 보러 박물관으로 간다. 

나란제스탄 박물관에서 본 유물들

기원전 1,000년경 도자기
 기원전 1,000년경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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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는 기원전 1000년경 유물부터 있다. 도자기와 청동제품이 대부분이다. 도자기는 접시, 항아리, 대접, 주전자 등 다양하다. 그리고 그곳에 그려진 문양도 상당히 단순하면서 원색적이다. 기하학적 문양도 있고, 새와 동물 문양도 있다. 이란 국립박물관의 것보다는 가치가 떨어져 보인다. 아마 대학의 연구소 차원에서 발굴하고 수집한 제품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더 유감스러운 점은 출토 또는 발견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고고학 또는 역사학에서 유물이 나온 장소를 모르면 그 가치는 뚝 떨어진다. 유물의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에서 그 권위를 인정해주는 쉬라즈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소장품이니 그 가치를 인정해 줄 수 밖에 없다. 청동제품도 있는데 이것은 제기로 쓰였을 것 같다. 손잡이와 주둥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1,000년경의 장레용 도자기
 기원전 1,000년경의 장레용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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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오면서 우리는 잠시 서점 겸 기념품엘 들른다. 서점에서는 이란을 소개하는 영어책을 한 권 샀다. 우리가 잘 아는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서 발간한 <이란> 책자다. 그리고 기념품으로는 카자르시대 타일 그림판이 있었다. 궁전과 마스지드에서 본 그림들이다. 또 사파비시대 세밀화도 보인다. 사파비시대 세밀화는 나중에 이스파한에서 좀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태그:#나란제스탄 궁전, #정원, #카자르시대, #아시아 연구소,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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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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