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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잃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먼저 아가일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울음'입니다. 어른들로부터 "다 큰 녀석이 울긴 왜 울어!"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우는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을 참아내야 하지요. 그래서 어른이 되면 잘 울지 않습니다. 심지어 남자는 평생 동안 딱 3번 울어야 한다는 가혹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왜×100>, 강경수 글, 그림
 <왜×100>, 강경수 글, 그림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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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잃는 것은 또 웃음입니다. '까꿍'만 해도 웃던 아이들이 공부에 시달리고 엄마 잔소리에 시달리면서 차츰 웃음을 잃어갑니다. 겨우 웃고 있으면 공부 안하냐고 호통을 치니까요.

실없이 웃으면 욕을 먹는 세상이니 어른이 되면 더 웃지 않게 되지요. 사는 게 팍팍해 웃을 일도 적어지구요. 깔깔 웃고 엉엉 울며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낼 때 살맛이 날 텐데 말입니다.  

어른이 되면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입니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새롭게 배워가기 때문에 무엇이든 궁금합니다. 처음 보는 것들도 너무 많고, 처음 당하는 일도 많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 '왜?'를 외칩니다.

사실 이 '왜?' 속에는 세상을 향한 수많은 가능성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왜?'를 놓치면 세상의 발전도 변화도 없습니다. '왜?' 하고 반문하며 기존의 것들을 접어둘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지만 어른들은 사는 게 너무 바빠 '왜?'라고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남들이 하는 대로, 원래 하던 대로 따라 하며 사는 게 편하기만 합니다.

강경수의 <왜×100>(시공주니어>은 7살 아들을 키우는 아빠의 경험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무언가를 가르치려 합니다. 아이는 그런 아빠에게 수많은 '왜'를 외치지요.

'왜'라고 힘차게 외치는 아이
▲ 『왜×100』 내지 그림 '왜'라고 힘차게 외치는 아이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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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크게 벌리고 '왜'를 외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다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왜'라는 질문이 얼마나 당연한 질문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당연히 궁금해야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부터 궁금해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비가 안 온대. 그러니까 우비 좀 벗을래?"

왜 비가 오지 않는 날 우비를 입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자유롭게 옷을 입을 권리도 잃어버리고 만 것일까요?

"벌써 1시간째야. 목욕탕에서 그만 나올래?"

목욕탕에서 나오기 싫은 아이
▲ 『왜×100』/ 내지 그림 목욕탕에서 나오기 싫은 아이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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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상념에 빠져있다가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유레카"를 외치며 발견의 기쁨을 누린 아르키메데스를 생각하면 좀 더 노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도 뭔가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장난감이 가득한 마트에서 아이는 드러눕습니다. 장난감을 사달라구요. 아빠는 "이번만큼은 네 이야기 안 들어줄 거야. 이리로 와" 하고 호통을 칩니다. 아이는 여지없이 '왜'를 외치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장난감이 많은데 아빠는 왜 하나도 사주지 않는 걸까요? 아이에겐 이해가 안 되는 일일 수 있겠습니다.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건 태양빛이 반사돼서...."
"번데기는 조금만 있으면 예쁜 나비로 변신할 거야."

아빠가 알려주는 지식에도 아이는 '왜'로 답변합니다. 알고 보면 "왜?"라고 질문한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변화해 왔습니다.

자연의 이치에 "왜?"라고 질문을 던져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삶에 "왜?"라고 질문하여 철학이 섰습니다. 잘못된 관행에 "왜?"라고 질문을 던져 잘못이 드러나고, 무거운 권위주의에 "왜?"라고 용기 있게 항거함으로써 권리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잃었던 것들은 바로 "왜?"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놓쳐버린 것들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그저 가만히 있고, 모른다고 하면 모르는가 보다 하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며 "왜?"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한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세상에 호기심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왜?'로 돌아가 세상을 향해 "왜?"를 외치는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길이니까요. 그런데 그림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빠의 말에 반응하는 아이의 말 '왜'는 글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림 속의 아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왜'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요. 그림책의 소리 없는 '왜'에 소리를 입히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사실 우리 각자의 가슴 속에는 세상을 향한 수많은 '왜'들이 담겨있습니다. 그 소리를 내는 것도 우리의 몫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장난꾸러기 아빠의 이런 '왜'는 자제해야 될 것 같네요.

"아빠, 책 그만 읽고 나랑 놀면 안 돼요?"
"왜?"
"으아아아앙~"
"미안, 미안, 농담이야. 아빠랑 놀자."


왜X100

강경수 글.그림, 시공주니어(2017)


태그:#강경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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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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