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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한 세대를 풍미했던 오드리 햅번은 인생 2모작을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전 세계를 누볐다. 그 영향력이 어찌나 컸던지 지금도 유니세프 홍보대사 하면 으레 오드리 햅번을 떠올린다.

그런데 오드리 햅번보다 4년 먼저 유니세프 친선대사에 임명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인이 있다. 제1회 유니세프 어린이 생존상, 코르체크 상, 페스탈로찌 교육상, NHK방송문화상 등을 수상한 일본의 유명 배우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그 주인공이다.

<토토의 희망>은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한 1984년부터 2014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기 관리를 위해 한두 해 하고 말았으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경험담이다.

이 책은 친선대사로 임명된 지 처음 13년간의 이야기를 담았던 <토토의 눈물> 속편격으로 저개발국 아이들의 현실을 알리며,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이 책을 '우리가 구할 수 없었던 3억3천만 어린 영혼에게 바친다'고 했다.

<토토의 희망> 구로야나기 데쓰코 지음, 서혜영 옮김, 작가정신 출판
 <토토의 희망> 구로야나기 데쓰코 지음, 서혜영 옮김, 작가정신 출판
ⓒ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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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전 세계를 돌며 만난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눈앞에서 학살당한 아이, 게릴라에 팔과 다리를 잘린 아이, 부모가 사라져서 어린 동생과 함께 남겨진 여자아이, 친구처럼 지냈던 염소가 굶어 죽어 망연자실한 남자아이, 집도 학교도 모두 부서져버린 아이, 난민 캠프롤 전전해야 하는 아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몸을 파는 아이 등.

어느 아이 하나 상처 없는 아이가 없고, 슬픈 사연을 간직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움에 울었던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아이들이 모두 예뻤다고 말한다. 웃는 아이, 장난치는 아이, 아이를 업어주는 여자아이, 물구나무서기를 보여준 남자아이, 함께 노래한 아이, 자신의 뒤를 계속 따라온 아이.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눈물 속에서도 희망을 읽어낸다. 그래서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 해나가자'라고 얘기하라고 한다. 손을 잡으라고 한다. '함께 하라'고, '친구가 되라'고 말하는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관점은 인도적 지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진 현실을 사는 아이들을 그저 불쌍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만 보는 것은 쉽다. 그 아픔을 진정으로 함께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하늘은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질 힘을 주었다

내전으로 곳곳이 지뢰밭인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하는 것은 지뢰 구분법이다. 전국에 묻혀 있는 지뢰가 1000만 개요, 희생자가 매주 100명씩 나오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어디든 안심하고 뛰어다닐 수 없다. 어른들은 그런 상황에서 금세 절망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고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말한다. 하늘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질 힘을 주었다고.

"아프가니스탄의 캠프에서도, 옆 나라인 파키스탄 난민 캠프에서도, 어른들은 남편이나 아내를 내전으로 모두 잃고 물도 먹을 것도 없다고 나에게 호소하며 '희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하늘에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질 힘을 준 게 분명합니다. 이 아이들을 만나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은 분명 이렇게 기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괴롭히지 마세요." -94p.

누가 이런 희망을 대책 없는 긍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희망, 꿈이라도 없으면 아이들은 살아갈 용기를 어디서 얻으란 말인가?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희망을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간절한 부탁이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염원이기도 하다.

"지금 소말리아의 현실에서는 나 역시 언제든지 납치되어 몸값을 요구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말리아에도 아이들이 있고, 어머니가 있고,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에 어서 빨리 평화와 희망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123p.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돌아본 세상은 위험천만하다. 곳곳에 총성이 끊이지 않고, 지뢰가 있고, 납치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런 위험을 마다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어지간한 확신과 헌신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카불 여학교에서 학생들이 책 읽는 모습과 구로야나기 데쓰코.
 카불 여학교에서 학생들이 책 읽는 모습과 구로야나기 데쓰코.
ⓒ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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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야나기 데쓰코가 확신을 갖고 헌신하게 한 힘은 '모성'이었다.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국적이 다를지라도 내 뱃속에서 난 것처럼 안아줄 수 있는 마음 말이다.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전한 것은 어머니의 온기였다.

"마리아마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을 어머니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예상치 못했던 말에 나는 놀랐습니다. '물론이야.' 어릴 때부터 포근하게 안아주는 어머니의 온기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온 마리아마의 외로움과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전쟁이 없었다면, 평화로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는 마리아마를 몇 번이나 꼭 안았습니다." -132p.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어머니의 온기를 전하며 세상이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는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모두가 힘을 합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그 확신은 그의 간절한 기원을 뜻한다. 그런 확신이 있기에 모두가 절망을 이야기할 때 구로야나기 데쓰코는 꿈을 물을 수 있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니?"라고.

"아이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니?' 활기찬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 '야구선수입니다.' 한 남자아이는 '바다에 대해 공부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아이티의 아이들도, 일본의 아이들도, 모두 희망을 잃지 않기를." -251p.

인도주의적 지원활동은 동참을 호소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모금운동을 펼친다. 그 중 감성을 자극하며 도움을 호소하는 일은 예사다. 모금이 성공적이려면 후원자들에게 누군가를 도와줬다는 자기 만족을 주되 지나친 낙관을 경계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긴장, 당장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위기감과 절망이 섞여 있어야 모금에 효과적이다.

30년 넘게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하며 모금운동을 한 작가가 그런 빈곤 포르노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꿈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친구가 돼 달라고 말한다. 먹을 것이 없고, 양팔이 잘렸어도 '전쟁이니까요'라고 말할 뿐 불평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부탁한다.

그 부름에 응답하겠는가? 아이들의 꿈을 위해 기도해 주시라!


토토의 희망

구로야나기 데쓰코 지음, 서혜영 옮김, 작가정신(2017)


태그:#토토의 희망, #토토의 눈물, #유니세프, #인도주의적 지원활동, #구로야나기 데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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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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