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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는 항우울제를 삼키며 시작된다.

3개월 전,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했고 도무지 의욕이라곤 생겨나질 않아서였다. 시계추처럼 우울과 조울이 반복됐다. 의사는 6개월간 약을 먹으라고 권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미국은 항우울제를 감기약처럼 생각한다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항우울제 먹는 여성이 많아요."

위로하듯 내게 건넨 의사의 말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처해 있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 2배 높아

이혼의 주요원인
 이혼의 주요원인
ⓒ 이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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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가 2014년 '세계 자살 예방의 날(10일)'을 맞아 전국 3840 가구를 대상으로 발표한 '한국 성인의 우울증상 경험'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여성(16.5%)이 남성(9.1%) 보다 우울증상을 경험한 비율이 1.8배 많다. 항우울제를 먹는 사람 중 여성의 수는 남성 보다 2배 많다. 특히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30,40대 여성의 수가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의 우울증이 결혼과 연관돼 있음을 시사해 주는 통계치다.

40대에 접어선 나 또한 활발하게 일했던 과거와 달리, 아이들을 챙기느라 집에서 동동거려야 했던 지난 2년 간 우울증이 찾아왔다. 함께 육아를 해야 할 남편은 곁에 없고 오롯이 가사와 육아가 내 몫으로 왔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이 미워졌다.

친밀해야 유지되는 결혼

실제로 많은 부부들이 가사와 육아 분담이 잘 안 돼 싸운다. 거창한 이유로 싸우지 않는다.  결혼은 생활이다. 누군가 빨래를 하고 밥을 해야 한다. 아이가 있다면 돌봄노동까지 더해진다.

한국여성정책개발원에서 발행한 ⌜2008 한국의 성인지 통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자료에 따르면, 이혼에 대한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인다. 부부간의 문제로 이혼하는 비율이 1975년 64.2%에서 1999년 80.2%로 증가했다.

가족문제로 이혼하는 경우는 21.9%에서 8.9%로 확연하게 줄었다. 반면 성격의 조화를 이루지 못해 이혼하는 비율이 2000년 40.1%에서 2006년  49.7%로 증가했다. 이제 배우자간의 사랑, 친밀함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됐다. 여성들이 느끼는 친밀함은 요리나 육아를 함께 할 때 더욱 생긴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남편들은 밖에서는 새벽까지 잘 노는데 아내와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는 방법은 잘 모른다. 남성들이 집에 있는 놀이도구(침대, 소파, 주걱, 아이들 아내 등)와 친해졌음 좋겠다.

침대에서 베개 들고 아이랑 같이 뛰는 것도 육아의 한 방법이다. 부엌에서 부인이 요리하고 있으면, 여보 '파 같이 썰까?'라고 말하며 함께 하면 그것이 가사다. 집에서 노는 것은 육아와 가사를 빼면 없다. 그런데 아직도 육아와 가사를 여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멀리하는 사람이 많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일이라고 분리하고 멀어지는 순간, 집에 와서 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자들은 소파에 누워서 리모콘과 텔레비전만 가지고 논다. 이렇게 살다보면 나이 50, 60이 되어도 그렇게 놀아야 한다. 굉장히 심심한 일 아닐까?

한국사회에는 자기 가정에서는 안하무인이거나 무관심한 남편이지만, 친가, 친구, 직장 같은 조직사회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직장이나 사업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하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대화를 나누거나 가족의 마음을 보듬어주지 않아서, 가정에 관심 없는 남편과 아버지로 평가절하되는 이들.

이제는 남자들이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노는 것을 연습했음 좋겠다. 밖에서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을 멋지게 연결할 수 있는 파이프 리더십을 개발하면 얼마나 좋을까?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남자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 바로 파이프 리더십이다.


태그:#주부우울증, #남성육아참여, #부부친밀성, #여성의날, #이혼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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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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