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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씨, 그럼 이제 우리 호주에서 봐요."

2010년 9월, 아프리카에서 만난 여행자 김종훈은 마지막으로 내게 이 말을 남기고 호주로 떠났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우연히 만난 그와의 인연은 아프리카를 거쳐 한국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끈을 호주까지 연결시키려 했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그렇게 처음 내게 다가왔습니다.

2010년 6월 12일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그리스와의 16강 조별 예선 첫경기 승리 후 현지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2010년 6월 12일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그리스와의 16강 조별 예선 첫경기 승리 후 현지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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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씨, 내년 1월쯤 호주로 와요."

그가 호주로 떠나고 약 2개월 뒤 연락이 왔습니다. 고민이 됐습니다. 재수하느라 1년, 군대 제대 후 여행하느라 또 1년을 보내 이미 25살이었는데, 호주에서 1년을 더 보낸다면 또래에 비해 사회생활이 꽤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엔 남들보다 3년 뒤쳐지면 큰일나는 줄 알고 잠시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났습니다.

캥거루를 닮은 섬, 캥거루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했다.
 캥거루를 닮은 섬, 캥거루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했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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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레이드라고 들어보셨나요? 호주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인데 이곳 남서쪽 방향에 제주도 약 1.5배 크기의 캥거루 섬이 있습니다. 치약 하나 사려면 차 타고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이 섬의 외딴 리조트에서 나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우스키퍼와 주방보조로 적게는 3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 가까이, 하루 평균 6시간을 일했습니다. 육체적 노동이라 고되긴 했지만 그에 따른 적정한 보상(시급 17.5AUD, 약 1만5천원)과 넉넉한 자유시간 덕분에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Koala Walk에서 아기 코알라를 업은 엄마 코알라를 만났다.
 Koala Walk에서 아기 코알라를 업은 엄마 코알라를 만났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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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하는 스텝과 밤마다 보드게임을 하곤 했다.
 같이 일하는 스텝과 밤마다 보드게임을 하곤 했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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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님 죄송합니다. 그만두고 싶어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전공과 관계없는 요리사의 길을 10개월간 걸었습니다. 가장 바쁠 때는 하루 15시간 가까이 일하는 등 주당 평균 70시간을 주방에서 보냈습니다.

요리하는 것은 즐거웠으나 장시간 노동과 내가 좋아하는 여행, 사진, 음악 등을 포기해야 하는 삶이 힘겨웠습니다. 나는 요리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삶과 일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 직업으로서의 요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주방에서 하루 8시간씩 일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아마 나는 지금도 요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문득 호주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하루 6시간 정도 일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그의 삶이 한편으로 부러웠습니다.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춰가던 그,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했던 환경이 그리웠습니다. (물론 호주의 모든 요리사가 하루 6시간 일하고, 한국의 모든 요리사가 12시간 이상 일하지 않습니다. 호주에도 12시간 넘게 근무하는 요리사가 있는가 하면 한국에도 8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요리사도 있습니다.)

요리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요리사의 길은 쉽지 않았다.
 요리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요리사의 길은 쉽지 않았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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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리움을 갖고 있던 중 다시 워킹홀리데이가 눈에 들어왔고, 만 30세까지 지원가능한 이 제도의 막차에 올라탔습니다. 사실 호주로 첫 여정을 떠났던 때보다 지금의 상황은 나를 더 불안하게 합니다.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청년실업률(9.8%)과 더 이상 포기할 게 없는 N포 세대의 한가운데 있는 현실, 그리고 한창 경력을 쌓아나가야 할 시기에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이 나를 망설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추고 싶은 한국 청년은 늦은 나이에 다시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늦은 나이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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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캐나다에 온 목적을 다시 되뇌었다.
 토론토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캐나다에 온 목적을 다시 되뇌었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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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사는 이들이 삶과 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나가는지 나는 보고 싶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닌 나와 같이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나는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의 첫 워킹홀리데이는 타인의 권유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지막 워킹홀리데이는 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시작합니다. 이는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춰보려는 한국 청년의 몸부림입니다.

캐나다에 안착한지 이제 일주일,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춰가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
 캐나다에 안착한지 이제 일주일,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춰가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
ⓒ 최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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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워킹홀리데이 : 만 18~30세 청년이 협정 체결 국가에 체류하며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병행하며 현지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하는 제도. 대한민국은 현재 20개 국가와 워킹홀리데이 협정 및 1개 국가(영국)와 청년교류제도(YMS) 협정을 체결하고 있음. 모집시기 및 모집인원은 국가마다 상이함.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 http://whic.mofa.go.kr/


태그:#삶과일의균형, #캐나다워킹홀리데이, #30대청년, #한국청년,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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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늘 고민하는 30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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