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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 기자, 그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것은 2004년 자이툰 부대 파병 반대 취재 현장과 이명박 서울시장의 수도 서울 봉헌 기사다. 그 후로도 조호진 기자 하면, '참 종횡무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부 기자로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파고드는 기사는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때가 많았고, 그의 치열함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를 외국인노동자의 집 중국동포의 집에서 만났을 때는 '참 의외다' 싶었다. 잘 나가던 기자가 <오마이뉴스>를 그만두고 이주인권단체에서 봉사한다고 했을 때, 그 속내가 궁금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순간 시인으로, 소년희망운동가로 나타났다. 버려진 아이들, 위기 소년들, 학교 밖 아이들 이야기를 들고 다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대뜸 물었다. "법자를 아십니까?"라고. '법무부 자식'이란 말을 줄인 은어로 비행과 범행을 저질러 처분과 처벌을 받은 소년원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세상이 나쁜 놈, 인간쓰레기라고 낙인찍은 소년들을 향한 조 시인의 시선은 따뜻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쁜 놈, 위험한 놈들로 태어난 소년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고 단호히 말하며 세상의 시선을 교정하기 원했다. 경찰과 검찰, 법원은 소년의 죄에 주목하지만, 조 시인은 소년의 눈물에 주목했다.

<소년의 눈물> 조호진, 삼인 출판
 <소년의 눈물> 조호진, 삼인 출판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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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은 조 시인이 눈물로 만났던 아이들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음 뉴스펀딩과 <오마이뉴스>, <국민일보>에 2015년과 2016년에 연재했던 <소년의 눈물>과 <소년이 희망이다>를 묶었다. 조 시인은 <소년의 눈물>을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제가 만나고 돌봤던 소년 중에 90퍼센트 가량은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면회 올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 면회 와주길 기다리는 소년,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인 소년, 버림받은 분노로 자해한 소년, 꿈과 희망이 뭔지도 모르는 소년들이었습니다. 죄는 미워해도 소년들을 미워하면 안 되는데, 세상은 소년들을 미워할 뿐입니다." -20.

<소년의 눈물>은 항구도시에서 만난 용서받지 못한 소년들 이야기로 시작한다. 얼굴에 버짐이 핀 초등학교 5학년 빈집털이 기술자가 빵을 훔치다 붙잡힌 대목이다. 경찰 조사에서 아이는 "빵을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게 더 쉬워서 그랬어요!"라고 대답한다.

여기에서 조 시인은 가난과 절망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피를 흘리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죄'를 참회한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무정한 죄'를 자책한다.

소년의 아픔을 외면한 학교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길 잃은 양을 돌보지 않는 교회가
사랑과 구원을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소년에게 빵을 주지 않아 훔치게 만드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조 시인의 참회는 절규에 가깝다. 세상의 매정함과 위선을 까발리면서도 자신의 무정함을 고백하는 시인은 변화했다. 사회 문제의 근원을 밝히는 냉철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난다. 그는 아이들의 상처가 가정에서 근원한 것임을 진단하며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묻는다. 여러분의 가정은 온전하십니까?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마태복음 10:36

사랑하고 미워하고 용서하는 곳이 가정이다. 그래서 원수는 집안에 있다고 한다. 조 시인은 자신만 아픈 줄 알았는데, 주변의 많은 이웃들이 가족 간의 상처로 신음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짠한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이웃이다.  조 시인이 소개하는 따뜻한 이웃들은 상처로 신음하는 소년들, 가정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던 아이들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 회복된다. <소년이 희망이다>는 그 사실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 이야기다. 일진에게 사부라 불리는 경찰, 박용호 경위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의 비행은 아이들의 죄가 아니라 어른들의 죄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아이들은 사랑해주면 천사로 변합니다. 천사로 변한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103.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집단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가족' 같은 공동체를 꿈꾸는 세상을 품은 아이들 대표 명성진 목사는 2014년 아쇼카 펠로우가 선정한 사회혁신가다. 그는 어쭙잖은 잔소리와 훈육으로는 아이들이 달라지지 않고, 그저 재수 없어 할 뿐이라고 꼬집는다.

"아이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재범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의 미래다. 재범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이들이 내 등에 칼을 꽂고 가도, 아픈 시간을 견디면서 기다려주고 손을 잡아주면 반드시 돌아온다." -136.

무엇보다 안전하고 따뜻해야 할 집이 지옥 같아서 탈출한 거라고 말하는 소년전담 판사 천종호 부장판사는 '아이들은 쓰레기가 아니라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한다. 학교와 소년원이 아픈 아이를 잘 돌봐주지 않고 방치하거나 외면한다고 지적한다.

"학교와 소년원의 각종 규칙은 관리 시스템이지 변화시키는 시스템이 아니다."

판사라기보다는 시민운동가가 할 법한 말이다. 현장을 경험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진단이다. 그리고 소년범들 태반이 결손 가정과 빈공 가정 아이들인데, 가난과 결핍이 아이들을 비행으로 내몰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른들의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 "문제 가정이 있을 뿐 문제아는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천 부장판사는 우리 사회가 놓친 부분을 이렇게 말한다.

"이 아이들도 한때는 예쁜 꽃이었습니다. 그런데 꺾이고 짓밟히는 냉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판사 이전에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묻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이 소년범이 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183.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부분은 소년 재판에 소요되는 시간이었다. 보통 10분 가량이라고 한다. 사건이 많으면 3~4분으로 줄어든다. 한 소년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대한 재판이 컵라면 하나 익히는 것처럼 급하게 처리된다니 놀랄 일이다. 그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들의 고충과 괴로움을 알 만하다. 그래서 천 부장판사는 묻는다.

"미래가 없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요?"

버림받은 아픔과 눈칫밥 때문에 가출하는 아이, 우울증에 걸린 아이, 사회가 어둠의 자식, 인간쓰레기, 양아치로 취급하는 소년원생들과 거리 소년들, 누가 그들을 만들었는지 답해야 한다. 비난과 낙인의 돌멩이를 던지기 전에 말이다.

조 시인은 <소년의 눈물>을 그 돌멩이를 맞고 쓰러진 소년들을 안아주면서 가슴을 치며 가슴으로 썼다고 했다. 당신은 <소년의 눈물>을 읽으며 민망하게 흐르는 눈물, 콧물을 감춰야 할지 모른다.


소년의 눈물 (2017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조호진 지음, 삼인(2017)


태그:#조호진, #소년의 눈물, #소년이 희망이다, #소년원, #천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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