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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가는 길에서 만난 매화(2월 27일)
▲ 매화 구룡포가는 길에서 만난 매화(2월 27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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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도 지났고 우수도 지났으니 봄은 당연히 왔을 터인데, 아직도 '봄'은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꽃샘추위'를 최후의 무기로 내세운 겨울은 이제 자신이 물러가야할 때임을 알고 짐을 꾸리고 있다.

남도에서부터 올라오는 봄소식, 꽃이 피었다는 소식에도 '얼마나 많이 피었겠어?' 했는데, 막상 남도의 봄을 보는 순간 '봄을 기다린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완연한 봄이 활짝 피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어사에서 만난 동백(2월 27일)
▲ 동백 오어사에서 만난 동백(2월 27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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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린 후 따스한 햇살은 봄을 더욱 빛나게 한다. 마치 가장 깨끗한 봄을 보여주려는 듯 동백잎은 푸르게 반짝이고, 대나무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은 영롱한 빛으로 동백의 개화를 축하하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봄은 이렇게 우리 곁에 있다. 자연에는 인간의 삶을 읽을 수 있는 코드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자연의 흐름과 질서를 세미하게 살피면,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이 시대가 추구해야할 바를 깨달을 수도 있다.

노지의 쪽파도 파김치를 해먹을 정도로 자라났다.
▲ 쪽파 노지의 쪽파도 파김치를 해먹을 정도로 자라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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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은 영원할 것 같았는데, 추위 속에서도 봄의 전령사들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하자 빠른 걸음으로 달음질친다. 그러면서도 미련은 남아 꽃샘추위로 오는 봄을 위협해 보지만, 이내 부질없는 짓임을 알고 봄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98주년 3.1절을 맞이한 오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의한 권력자들의 뻔한 수법 중 하나가 자신들에게 돌려지는 비난의 화살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을 이간질시키는 것이다. 그동안의 국정농단도 모자라서 끝까지 나라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고가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의 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진실을 본다.

그들이 가는 겨울처럼 지혜로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들의 군복에는 'Gott mit Uns.'(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했다. 국정농단을 하면서도 '오직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고 강변하는 이나, 그들을 지지한다고 십자가와 태극기를 들고 나와 '구국기도회'를 여는 이들이나, 성조기를 들고 나와 탄핵기각을 외치는 이들과 그에 편승하는 이들은 나치즘의 후예들인가 싶다.

아스팔트와 벽 사이의 공간에 초록생명이 봄을 알리고 있다(3월 1일).
▲ 서울의 봄 아스팔트와 벽 사이의 공간에 초록생명이 봄을 알리고 있다(3월 1일).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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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만 더 기다리면 끝나겠지, 그리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되겠지.' 이런 마음은 마치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닮았다.

입춘에 접어들었을 때, 우수가 지났을 때, 봄은 보이지 않았지만 봄이 올 것을 확신했던 것처럼, 그리고 어느 곳엔가는 봄이 와 있었고, 마침내 서울 하늘 아래, 그것도 아스팔트와 담당의 경계 척박한 곳에서 피어난 풀 중이 민초 같은 존재를 통해서 활짝 피어난 꽃을 보았을 때의 기쁨과 희열과 봄에 대한 확신처럼 국정을 농단했던 이들과 부역자들이 죄값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소망은 닮지 않았는가?

그리고 봄은 오기 시작하면, 보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스프링처럼 솟아오르니 2017년 대한민국의 봄날도 그렇게 화들짝 피어나서 지금 아스팔트에서의 반목이 치유되고, 옳지 못한 것을 지지하고 선택했던 이들이 조용히 참회하고 부끄러워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마침내 하나되는 그런 날을 희망하는 것은 헛된 꿈이 아니겠지.

작은 꽃, 잡초로 불리는 꽃이지만 봄의 전령으로 피어났다.
▲ 쇠별꽃 작은 꽃, 잡초로 불리는 꽃이지만 봄의 전령으로 피어났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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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송이 되지도 않고, 초록의 이파리보다 말라비틀어진 이파리가 더 많은 이 꽃의 이름은 '쇠별꽃'이다. 그냥 꽃 중에서는 흔하디 흔한 잡초 정도로 분류되는 꽃, 작아서 애써 보려고 해야만 보이는 꽃, 여느 꽃보다 일찍 피어났지만, 이내 다른 꽃들이 피어나면 관심조차 받을 수 없는 꽃이 쇠별꽃이다.

쇠별꽃은 민중을 닮은 꽃이다.
그냥 흔하디 흔한 사람들, 뭐 그리 잘난 구석도 없는 사람들, 이 나라를 이끌어온 주역이면서도 철저하게 배제된 사람들, 좀 배웠다는 이들이나 권력 꽤나 쥔 사람들의 뒷전에서 묵묵히 살아가지만, 마침내 새 역사를 피워가는 사람들이 민중이 아닌가?

촛불도 그렇게 이름없고 빛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바람에 곧 꺼질 것이라는 불의한 자들의 조롱을 다 이겨내고  마침내 횃불이 되어 이 겨울공화국을 봄의 나라로 바꿔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외롭게 피어난 쇠별꽃, 그러나 그로 인해 봄을 보았다.
▲ 쇠별꽃 아직은 외롭게 피어난 쇠별꽃, 그러나 그로 인해 봄을 보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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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척박한 꽃에 쇠별꽃 피었고, 이렇게 척박한 나라에 촛불이 불타오른 것은 닮은 꼴이니 어찌 촛불의 승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3.1절 아침에 담벼락에 피어난 작은 쇠별꽃을 보면서 나는 시대의 징조를 읽는다. 그 읽음 끝에 이렇게 봄이 오듯이 서울의 봄이 오듯이 대한민국의 봄도 곧 올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이렇게 봄이 오려는데 막바지 꽃샘추위의 기승이 없을라고. 그러나 그까짓 꽃샘추위쯤이야 미풍에도 곧 사그러들 것인데 아스팔트에 성조기 휘날린들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서울의 봄은 별볼일 없는 꽃, 그러나 당당하게 '쇠별꽃'이라는 단단한 이름을 가진 꽃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이 계절의 봄과 함께 역사의 봄도, 그렇게 맨 처음에는 하나의 별처럼 작았던 촛불의 바다물결을 따라 올 것이다.

올해는 자연의 봄, 역사의 봄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 참 좋다!



태그:#봄, #매화, #쪽파, #쇠별꽃,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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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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