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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글의 첫자를 따서 집이름을 지었다.
▲ 검화당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글의 첫자를 따서 집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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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화당 고로쇠

은퇴 후에는 돈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작심하였지만, 삼국지의 계륵(鷄肋) 같은 것이 검화당에서는 고로쇠입니다. 판매한다고 해봐야 몫 돈도 되지 않으면서 1월 혹한의 날씨에 열흘 이상을 산 속에서 뒹굴면서 '귀부산' 노예보다 못한 혹한의 채취작업에 매달려야 합니다.

귀부산은 지난 2009년경에 방영한 주말연속사극 <대조영>에 등장하는 당나라 군사들에게 포로로 잡힌 고구려 유민들이 노예로 전락하여 혹사 당하는 역사적 현장입니다. 주말 농장 시절, 대전과 지리산을 오가면서 심취하여 시청한 사극이었기 때문에 귀촌 후 혹독한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우리들의 처지를 표현하는 말로 나와 집사람 둘 사이에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나와 집사람이 살고 있는 검화당 뒷산에는 편백나무 숲과 편백숲 사이에 수령 40년이 넘은 고로쇠 나무가 200여 그루 자라고 있습니다. 1월의 극한 작업인 고로쇠 채취 준비작업을 끝내면 2월 초순부터는 고로쇠가 채취되고, 채취된 고로쇠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주말농장 시절인 2008년 1월, 집사람이 수소문하여 초빙한 장진옥씨에게서 고로쇠를 채취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장진옥씨는 3대째 고로쇠를 채취해오는 지리산 토박이로 반달곰이 산다는 문수리 이장이었습니다.

준비작업을 끝내고 나무와 연결된 투명비닐 호스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고로쇠를 모아 건배할 때는 승리자가 된 것같이 감격스러웠지만, 사실은 이 때부터 고로쇠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고로쇠 판매의 득과 실

내수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고로쇠가 쌓이기 시작하자 판매해야 할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인들에게 폐가 될 줄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여지고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은 노동력과 상당한 설치비까지 들여가며 채취한 고로쇠를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와 집사람은 자존심 손상의 상처를 감수하고 고로쇠를 채취해 판매한다는 사실을 지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또 2008년부터 만들어 관리하는 저의 블로그에도 고로쇠 판매문을 게시하였습니다.

다행히 저희를 격려해주고 구매해 주신 지인들과 블로그 친구들 덕분에 매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검화당 고로쇠 판매가 10년째 입니다. 어떤 해에는 재고가 남아 3월 중·하순에 구례 산동면 일대에서 펼쳐지는 산수유 축제장에까지 진출하여 재고를 소진하기도 했고, 또 어떤 해에는 고로쇠가 부족해 예약 받은 분들께 예약금을 돌려드리는 소동을 빗기도 했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고로쇠를 팔기도 했지만, 고로쇠 채취철인 매년 2~3월에는 집에서 마시는 물을 고로쇠로 대체합니다. 그 덕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재작년에는 '히말라야 ABC트레킹'을, 작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집사람과 단둘이서 자유여행으로 다녀왔습니다.

검화당 터에는 검화당과 같이 착공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공을 못하고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검화당을 짓고 남은 자투리 목재를 이용해 저의 취미공간인 목공방으로 사용할 생각으로 시작한 건물입니다. 치목하여 조립하고 지붕공사까지 끝내고 나니 원래 생각과 달리 건축비도 너무 많이 들 것 같은 데다 공방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고 사치스런 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집사람과 사용 목적을 조율하지 못해 공사를 중단했고 방치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황폐화되어가는 정도가 표가 날 정도입니다. 간과할 수 없어 다시 공사를 시작했지만 작년 4월 장기 여행을 떠나면서 또 중단했습니다. 올해는 여행을 거르고 여행 경비까지 합쳐 6월말까지 공방을 완공해 귀촌 생활을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단기임대 하여 귀촌증후군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공사를 중단하고 3년이 지난 공방의 모습
▲ 공사 제 시작 전 공방 공사를 중단하고 3년이 지난 공방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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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다시 시작한 공방공사
▲ 재 공사중인 공방 작년에 다시 시작한 공방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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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산티아고 가는 길 장기여행 때문에 중단한 공방공사. 6월에 돌아와 공사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다른 급한 일들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 공방공사. 내부 인테리어와 설비가 남았다
▲ 공사가 중단된 공방 작년 4월 산티아고 가는 길 장기여행 때문에 중단한 공방공사. 6월에 돌아와 공사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다른 급한 일들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 공방공사. 내부 인테리어와 설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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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몽고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거나 알래스카 오로라를 보러 갈 생각입니다. 여행 계획은 건강도 중요하지만 경비가 뒷받침되어야 실질적인 계획이 됩니다. 고로쇠 판매가 끝나는 3월 중순이 되면 고로쇠 입금 통장에 5백~6백만 원 정도의 돈이 쌓입니다. 여기에 집사람 연금과 딸이 매월 붓는 부모여행통장, 아들의 지원금을 합하면 1천만 원 정도가 됩니다.

힘겹게 모은 귀부산 노예의 봉급이 집사람과 둘이서 자유여행으로 1~2달 동안 세상구경을 떠나는 여행경비의 주춧돌이 되는 셈이지요.

부업의 긍적적인 면 

현대인들에게는 돈을 버는 재미가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고로쇠 판매가 한창인 요즈음 집사람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 실감나고 저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올해는 고로쇠 판매 안내를 카톡을 이용했습니다. 폰이 정보시대를 선도하는 위력을 절감합니다. 작년까지 간신히 채취량과 판매량의 균형을 맞춰 갔지만 올해는 주문량이 더 많아 채취되는 데로 발송하기 바쁩니다.

고로쇠는 이른 봄, 싹을 틔워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에너지의 원료인 수액이 땅이 얼어 이동통로가 막히게 되면 이동하려는 수액의 힘에 의해 나무 내부에 압력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 때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고로쇠가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저녁 최저온도가 -5°이하로 떨어지고, 낮 기온은 5°이상이며, 바람이 없는 맑은 날이어야만 채취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고로쇠를 채취할 수 있는 날은 연중 며칠 되지않으며 한 방울씩 떨어져 모인 고로쇠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4대 미네랄인 칼슘, 칼륨, 마그네슘, 나트륨을 포함하여 각종 미네랄과 영양분이 이온화된 형태로 다량 함유되어있는 귀한 약수입니다.

이런 약수를 지인들과 인터넷친구들에게 권하고 판매하는 일이 지인들의 건강을 챙기면서 여행 경비도 마련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제 저희 집 고로쇠를 기다리시는 분들도 생기고, 봄철 나들이로 검화당을 찾는 가족들도 많아집니다. 또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 받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생인 친구가 검화당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검화당 고로쇠 채취와 판매는 안정기로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고로쇠 농장 확장과 산마늘 

고로쇠 수급의 불균형을 예상한 집사람은 고로쇠 단지 윗쪽에 그동안 방치해둔 고로쇠 나무들까지 포함시켜 고로쇠 단지를 확장하기 위해 잡목들을 벌목하고 우거진 가시덤플을 제거하는 또 다른 귀부산 노예일을 시작했습니다. 내년부터 더 많은 고로쇠가 검화당 뒷산에서 채취될 것 같습니다.

가시넝쿨 때문에 성장을 멈추고 있는 고로쇠 나무들을 해방시켜 고로쇠농장을 확장하기로 했다
▲ 방치한 고로쇠 묘목들 가시넝쿨 때문에 성장을 멈추고 있는 고로쇠 나무들을 해방시켜 고로쇠농장을 확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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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검화당 뒷산 정상부근의 1000여 평의 활엽수 사이에는 강원도 태백시까지 가서 모셔온 6000그루의 산마늘(일명 명이나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산마늘은 고로쇠 채취 끝 무렵인 3월 초, 눈 덮힌 산야의 낙엽속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튀우는 나물입니다.

높은 산의 활엽수 사이에서 자라는 귀한 약초입니다만, 요즈음은 원산지인 울릉도에서도 야산의 산마늘은 귀하고 비닐하우스 밭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육지로 반입되는 실정입니다.

검화당 산마늘은 야산에서 1촉당 2잎을 올립니다. 2잎 모두를 채취하면 산마늘이  고사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촉당 1잎씩  채취합니다. 채취한 산마늘 잎은 장아찌를 담궈 밥반찬이나 불고기를 쌈해서 먹는 나물이 됩니다. 

작년에는 장기 여행 때문에 산마늘 채취 시기를 놓쳐 산마늘 장아찌를 담글 수 없었지만, 재년에 담근 장아찌를 작년 고로쇠 판매 안내문과 같이 올렸더니 하룻만에 30여 통 보유량이 매진되었습니다. 귀하고 고급인 산마늘 장아찌는 매년 200만 원 정도의 매출이 가능한 검화당 작은 효자가 되었습니다.

검화당 뒷산 끝자락에 만든 산마늘 밭, 1200만원 규모의 공사였으며 50%군비와 50%자부담으로 조성되었다
▲ 산마늘 밭 검화당 뒷산 끝자락에 만든 산마늘 밭, 1200만원 규모의 공사였으며 50%군비와 50%자부담으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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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산마늘 진달래 피는 시기에 1촉당 새싹을 2잎씩 올리는 산마늘
▲ 산마늘 초봄,산마늘 진달래 피는 시기에 1촉당 새싹을 2잎씩 올리는 산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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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벌고, 여행도 가고, 지인들과 안부도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산골의 약수와 약초 재배, 판매 등 경제활동은 귀촌증후군을 멀리할 수 있는 특효 처방입니다.


태그:#귀촌, #귀촌증후군, #귀촌증후군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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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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