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앞선 기사에서 쓴 것처럼 제가 자퇴한 지 약 4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 4개월의 시간 동안 저에게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저에게 크게 다가온 것은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제 인식이 바뀐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조그만한 자율 중학교를 다녔고, 그곳은 전체 학생 수가 어림잡아 180여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소규모 학교였습니다. 게다가 기숙사를 살다 보니 친구라는 존재는 가족과도 다름없었습니다. 집에는 거의 2주에 한 번씩 가다보니, 몇 년 동안 엄마보다는 친구를 더 많이 봤죠. 더군다나 저는 앓고 있는 질환이 있어 한 번씩 아프던 저를 친구들이 엄마 대신 보살펴 주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중학교 때 저에게 친구라는 존재는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 학년에 거의 160여 명이 다니는, 다른 고등학교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중학교를 매우 작은 곳으로 다녔던 저에게는 몇 배의 숫자로 느껴지는 자율 고등학교를 진학했습니다. 학교 특성상 다른 학교들보다 입시경쟁이 매우 심했습니다.

모두 좋았던 친구들이었지만, 중학교 때처럼 '가족'같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앞에 놓여진 '입시'라는 단단한 벽 때문이었나? 라고 요즘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손가락질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인지 솔직히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은 '사귀기'보다는 전화번호부에 '친구'라고 그룹을 지정하듯 '분류'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몇몇의 기숙사 방 친구들이나 같이 밥 먹던 친구들을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과는 그리 깊은 관계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퇴를 하던 날, 아침 자습 시간을 마치고 항상 같이 가던 친구와 같이 교실로 올라가다 친구의 볼에 볼펜이 묻어서 화장실을 오래 들렸습니다. 그 때 당시에 기분이 복잡미묘하던 저는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교실로 들어갔고, 친구들의 깜짝 이벤트를 처음 받아봤습니다. 반 친구들이 2000원씩 모아서 해준 그 선물들과 롤링 페이퍼, 몇몇의 친구들이 개인적으로 선물과 함께 긴 편지를 써준 것을 보고 집에 와서 울었습니다. 친구들의 마음이 너무 받기 과분했고 예뻐서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시 학급 실장이었던 저는 반 친구들에게 책임감 없는 실장이 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었거든요. 어쨌든 저는 그날, 한 번도 얘기 나눠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작은 쪽지도 받았고 페이스북 메시지도 받았습니다. 되게 '의외'였습니다. '이 친구가 날 이만큼이나?'하는 생각을 자퇴 당일에 제일 많이했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가끔씩 학교에 들려서 친구들과 대화도 나누고, 영상통화도 하며 연락을 계속 나누고 있습니다. 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거든요. 어찌보면 떠나간 저를 잊지 않고 가끔이라도 연락해주는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자퇴생활을 더욱 외롭지 않게 보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긴 글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가지입니다. '친구'는 '가족'과는 다른 의미라는 겁니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이어진 존재이지만, 친구라는 존재는 필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관계의 깊이도 나 자신의 행동으로 정해지죠.

이 글을 보시는 분이라면, 친구라는 존재를 너무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저것 따져보며 사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며 정말 중요하지만, 따질수록 놓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저는 느꼈거든요.

친구들을 '분류'했던 저의 태도가 제 고등학교 마지막 생활 8개월 동안 제일 큰 후회였습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많은 친구들을 놓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제가 어쩌면 주제넘게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것은 여러분은 저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는 태도뿐만이 아니라, 친구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 말입니다. '친구'라는 존재는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존재이기에 상처를 입기도, 입히기도 쉬우니까요.

정말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한 분이라도 마지막 문장을 다 읽은 뒤에 나에게 '친구'라는 존재의 크기는 어땠는지,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짧게라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이 기사의 목적은 이미 다 이룬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어떤 소재로 기사를 썼으면 좋겠는지 dkwnrmftj@naver.com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드백도, 하시고 싶으신 말씀도 다 괜찮습니다.



태그:#친구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