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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요즘만큼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헌법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근본임에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헌법, 그 헌법을 국민들과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 기자 말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월탄핵 특검연장 박근혜 황교안 즉각퇴진, 신속 탄핵을 위한 15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청와대 포위 행진을 하고 있다.
▲ 즉각탄핵! 특검연장! 15차 범국민행동의 날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월탄핵 특검연장 박근혜 황교안 즉각퇴진, 신속 탄핵을 위한 15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청와대 포위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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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선언한다. 수개월째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을 메우고 있는 촛불 시민들은 이 구절에 음을 붙여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국민이 주인이 된다는 민주(民主)는 쉽게 이해하겠는데 '공화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공화제(共和制)를 찾아보면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공화제'를 '공화 정치를 하는 정치 제도'라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공화제는 공화제다'라는 동어반복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화'는 '두 사람 이상이 공동 화합하여 정무를 시행하는 일'이라 정의되어있어 좀 낫다. 하지만 이 역시 이해하기 난해한 것은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떤 이들은 화(和)자가 벼화(禾) 변에 입구(口) 자를 쓰는 것에 착안하여 같이(共) 쌀을(禾) 나누어 먹는(口)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상당히 그럴듯하지만 공화제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공화제'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자신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고자 백성들의 눈과 귀를 막았다는 고사성어 '오능미방(吾能弭謗)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기의 주본기에는 기원전 8세기 무렵 주나라의 려왕(厲王)에 대한 일화가 있다.

려왕은 성격이 포악했고 오만하며 사치를 좋아했다. 때문에 민심은 왕을 외면했고 백성들은 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소공(召公)이라는 충신은 왕의 폭정을 보다 못해 "백성들이 왕의 통치를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며 간언했다. 그러나 소공의 간언에 려왕은 오히려 대노하여 위(衛)나라의 신무(神巫)를 불러 백성들을 감시하도록 했다. 신무는 백성들을 철저히 감시했고 만약 왕을 비난하는 이가 있으면 곧바로 려왕에게 보고했다. 그러면 려왕은 자신을 비난한 백성을 가차 없이 죽였다.

신무를 통한 려왕의 폭정이 이어지자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마디의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었고 길을 지나다 서로 마주쳐도 눈짓만 주고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려왕은 크게 기뻐하며 소공에게 "내가 비판을 막았으니 이제 그 누구도 감히 나를 함부로 비방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오능미방의 내불감언, 吾能弭謗矣 內不敢言).

그러나 소공은 물러서지 않고 "그것은 백성의 입을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시장지야, 是鄣之也).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입니다(방민지구 심어방천, 防民之口 甚於防川). 흐르는 물을 막으면 터져서 많은 사람이 다치게 됩니다(천옹이궤 상인필다, 川壅而潰 傷人必多). 백성들 또한 이와 같습니다(민역여지, 民亦如之)"고 간언했다.

그러나 려왕은 소공의 충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폭정은 계속되었고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3년이 흐르자 결국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난을 일으켰다. 결국 려왕은 체나라(현재의 산시성 훠저우시)로 도망가야 했고 다시는 주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려왕이 체나라로 도망가자 소공과 주공(周公) 두 상(相)이 정치를 돌보았다. 이 시기를 공화(共和)라 한다. 공화라는 명칭에 대해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다소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려왕이 체나라로 도망가자 제후에게 추대된 공백(共伯) 화(和)라는 인물이 부재한 천자를 대신해 정무를 맡았다 하여 이 시기를 공화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학자들은 영어의 'republic'(리퍼블릭)에 대한 번역어를 찾다 마땅한 단어가 없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 왕 없이 나라를 다스렸던 주나라의 공화시기가 'republic'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오능미방'의 일화를 차용해 공화제(きょうわせい)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를 한국의 법학자들이 그대로 들여와 공화제가 된 것이다.

결국, 터질 것은 터진다

지난 2016년 6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세월호참사, 청와대의 KBS 보도통제 증거 공개 지난 2016년 6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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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시절 '땡전뉴스'라는 말이 유행했다. 땡전뉴스는 뚜뚜전뉴스라고도 했는데 전두환 정권은 언론을 통제하여 매일 저녁 9시 뉴스 앞머리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정이 보도되도록 했다. 매일 9시 10초 전이 되면 TV에서는 "뚜뚜뚜"하는 시계음이 흘렀고 9시 정각이 되면 "땡" 소리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라는 멘트의 뉴스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9시 정각을 알리는 '땡'과 전두환의 첫 글자 '전'을 붙여 '땡전뉴스'라 하거나 시계음 '뚜뚜' 뒤에 전을 붙여 '뚜뚜전뉴스'라 부르곤 했다.

실제로 전두환 정권은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을 통해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보도지침은 각종 사건들이 '가, 불가, 절대불가'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이들의 보도 여부뿐만 아니라 보도방향과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적혀있어 사실상 언론의 제작을 정부 기관이 주도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보고 들어야 했다.

2009년 이명박 정권은 인수위 시절부터 언론통제 의혹에 휩싸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언론사 간부와 산하기관 단체장 등의 성향 조사를 정부 부처에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인수위는 문화관광부 소속 인수위 전문위원의 개인적 돌발행동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언론 통제는 기우가 아니었다. 2009년, '언론사의 소유권 규제 완화'와 '신문사의 종합편성채널 진입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일명 미디어법이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도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에 의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종합편성채널은 조선, 동아, 중앙과 매일경제신문이라는 보수신문들에게 돌아갔고 한국의 언론의 다양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KBS 보도국장 김시곤이 길환영 KBS 사장의 보도통제를 폭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길환영 사장이 대통령과 여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삭제하고 그 자리를 대통령 동정 보도로 채우도록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사고의 보도에 대해 수시로 외압을 행사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이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전 대표의 세월호 보도와 관련 외압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박근혜 정권은 더 나아가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하여 문화예술계 인사 1만여 명을 좌파성향으로 분류해 정부지원사업에서 제외시키는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언론을 통제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데 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여 국민들의 입까지 막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결국 한국은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이명박 정권시기 세계 69위로 내려앉았고 박근혜 정권 시기에는 70위에 이르렀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자 했던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이 직접 들고 일어난 80년 6월 항쟁으로 무너졌고 박근혜 정권은 광화문을 매운 100만이 넘는 촛불 시민들의 손에 끌려 탄핵심판대에 서게 되었다.

공화국은 권력이 독점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분산된 통치 체제다. 이런 의미에서 백성들에게 왕이 쫓겨나고 권력이 분산되어 통치되었던 주나라의 공화시기를 차용한 '공화제'는 적절한 번역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권력을 독점하고 백성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던 주나라 려왕은 기원전 9세기 무렵 백성들에 의해 나라에서 쫓겨나 타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소공은 이미 2800여 년 전 백성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과 같아 결국은 터져 많은 이가 다치게 될 것이라는 충언했다. 그런데 지금 2800여 년 전 소공의 충언을 다시 끄집어내 이 땅의 통치자들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


태그:#공화제, #공화국, #촛불, #언론, #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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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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