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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암사동에 위치한 예비 사회적기업 브로슨컴퍼니의 황형순 대표를 만났다. 한 때 잘 나가던 발레리노였고, 뮤지컬 배우인 그가 대뜸 기자를 보자 요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예술을 하기가 어려운지 아느냐고 물었다.

브로슨컴퍼니 황현순 대표
 브로슨컴퍼니 황현순 대표
ⓒ 브로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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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정부는 '문화'와 '창조경제'를 합친 것이 '문화융성'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기구(문화융성위원회)까지 설치했지만, 그 영향을 받는 이는 미미하다. 최근에 알 수 있듯이 '문화융성' 자체가 특정 개인을 위해 벌려진 사업이며, 이 정부의 문화예술적 감수성은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미천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돈을 쏟아부어 한류만 지속되면 문화예술 산업이 흥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실제 그 나라의 문화예술이 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향유할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의 삶이 풍족해야 하며, 문화예술에 대한 저변이 넓어야 한다. 문화예술이란 것은 결국 그 사회의 총체이며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삶은 종종 그 사회의 문화예술 수준을 보여준다. 예술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그 사회가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위치에 서게 되면 그 사회를 좀 더 풍족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만큼 예술가의 지위는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좋은 지표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예술가들의 삶은 어떠할까? 물론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2011년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생계를 잇지 못해 자살한 이후 '예술인 복지법'이 생겼지만, 여전히 우리네 예술가들의 삶은 위태롭기만 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위해 버티고 있는 중이다.

혹자들은 예술가가 한 번 뜨면 '대박'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지금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예술가에게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 확률은 매우 낮으며, 그런 식으로는 사회의 문화예술 산업 또한 발전할 수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안정된 기반에서 마음 놓고 창작을 하고 그것을 조금 더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기준은 좀 더 오를 수 있다.

황현순 대표는 이와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기존의 대학로나 대형 극장 중심이 아니라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문화예술을 공유함으로써 문화예술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풍요롭게 하고 이와 함께 예술가들의 수익 또한 만들어 내고자 한다고 했다. 그는 대체 지역에서 어떤 꿈을 그리고 있는 걸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발레리노에서 뮤지컬 배우가 사업을?

브로슨컴퍼니의 브로들
 브로슨컴퍼니의 브로들
ⓒ 브로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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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슨컴퍼니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곳이죠?
"브로슨컴퍼니는 지역에서 뮤지컬, 무용 등의 공연과 관련 교육을 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뮤지컬이나 연극배우도 있고요, 무용과, 성악과 나온 친구도 있고, 저는 발레와 뮤지컬을 했습니다. 극단을 운영할 만큼 규모가 되지 않아 아직 월급을 주는 형태는 아니지만 관련된 일이 있을 때 모여서 같이 합니다. 요즘 예술 분야 자체가 다 비정규직이잖아요. 그래서 다 본인의 일이 있고, 공연 있을 때만 모이는 형태입니다."

- 일본에서 발레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뮤지컬 배우가 되셨어요?
"대학교를 마치고 기회가 와서 일본 발레단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어요. 일본은 대우가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28살 때쯤 은퇴를 고민했어요. 부상도 있었고, 몸도 안 좋았고. 또 같은 발레단에 한국 형들이 있었는데 모두 은퇴한 뒤 학원을 차리더라고요. 대부분 교육 쪽으로 빠지죠. 그런데 저는 뭔가 다른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한국에 가서 뮤지컬 '캣츠' 오디션을 봤죠. 다행히 초연할 수 있게 됐고 그 뒤로 뮤지컬을 쭉 하게 됐습니다."

고아원에서의 무대
 고아원에서의 무대
ⓒ 브로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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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을 하다가 왜 갑자기 사업에 뛰어드신 거죠?
"사업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친한 분이 경기도 평택의 00고아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뮤지컬 배우들이 좀 가서 아이들한테 크리스마스 날 선물로 공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래서 뮤지컬 배우 7명이 공연을 했죠. 1시간 동안 막 놀아주고. 그때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세종문화회관, LG아트센터 등 대극장에서도 많이 공연하지만 문화적으로 혜택을 못 받는 친구들도 많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 친구들을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계속 공연해주고 싶다'.

그랬더니 그런 자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고요. 한 해에 15회에서 20회 정도 공연했습니다. 거의 차비만 받고 재능기부 형태로.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을 받으려 해도 세금계산서를 떼어야 한대요. 그러려면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하고. 그래서 얼떨결에 사업자를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용인에서 '경기도 찾아가는 문화활동'이라는 사업에 선정되어서 미혼모센터라던가 무지개지역아동센터 등에 가게 됐어요. 이후엔 CJ와도 연계되고, 점점 그런 쪽으로 일을 하게 됐죠."

사회적기업가로의 변신

브로슨컴퍼니의 공연들
 브로슨컴퍼니의 공연들
ⓒ 브로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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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을 하다가 왜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7~8명이 2년 정도 그냥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묻더라고요. 좋은 일 하는 건 좋은데 우리도 먹고살아야 되지 않냐고. 그때 느꼈어요. 내가 같이 가는 친구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되는구나. 그래서 계속 활로를 찾았습니다. 저희는 젊잖아요. 생존 방법에 대해 고민했죠. 그러다 보니까 기회가 오더라고요. CJ 문화창의학교라던가.

또 이천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1년 동안 뮤지컬 수업을 했었어요. 그래도 고민하고 있으니까 누가 '사회적 기업이라는 게 있는데 너희랑 비슷해' 그러는 거예요. 그거 하면 네가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그래서 공부해보니까 저희가 하는 일이 사회적기업과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인증받을 때 서류를 내는데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그동안 해 놓은 게 있으니까. 4년 치를 그냥 냈어요."

- 친구들은 모두 사회적기업에 찬성했나요? 어떻게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도 아닌데.
"좀 더 큰 틀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 소유가 아니라 친구들이 모여 있으니까. 뭔가 번듯하게 있으니까 친구들이 여기다 적을 두더라고요. 마음을 기댈 데가 있게 된 거죠. 그리고 예술 하는 사람들은 돈에 그렇게 욕심이 많지는 않아요. 다들 돈보다는 나와의 싸움, 내 실력 키우는 데에 집중해요. 배우는 연기력에 집중하고, 성악 하는 친구는 고음 뚫으려고 자기 자신과 싸워요. 무용하는 친구들은 몸을 쓰며 자기와 싸우죠. 돈이 아니라 좋은 콘텐츠, 좋은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자기 개발하는 게 우선이에요."

중심이 아닌 지역으로

지역과 함께
 지역과 함께
ⓒ 브로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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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놀이터 축제
 동네 놀이터 축제
ⓒ 브로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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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왜 대학로로 안 가셨죠?
"일본 있을 때 부러웠어요. 외국은 지역 안에서도 예술인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었어요. 중심으로 가지 않아도 지역 사람들이 지역 내에서 충분히 문화를 향유하는 그 분위기가 부러웠죠. 지역축제도 재미있고. 그래서 지역을 고민하게 됐죠."

- 왜 하필 강동인가요?
"운명처럼 강동으로 왔어요. 용인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니면서 강동구를 지나쳤는데 이곳은 서울 중심에서 떨어져 있으니까 싸지 않을까 착각했죠. 그래서 성내동을 거쳐 암사동으로 왔는데 살다 보니까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강동구도 대학로처럼 안 되라는 법이 없잖아요. 5호선·8호선도 있고, 선사축제도 있고, 선사유적지도 있고. 문화예술도시로서 굉장히 큰 이점이 있다고 생각돼요.

그래서 저 같은 친구들, 젊은 사람들만 모이면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것 같아요. 대학로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게 젊은 친구들이 모여 공연했기 때문이잖아요. 발전하는 데는 무조건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거든요. 이런 생각에서 저 같은 젊은 친구들을 이쪽으로 많이 데려오는 것을 목표로 잡았어요."

구청에서의 공연
 구청에서의 공연
ⓒ 브로슨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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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게 중요하죠?
"강동구만의 아이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대학로 등에서는 홍보비 때문에라도 유명한 연예인을 쓰지만 그러면 저희 같은 일반 예술가들은 점점 설 곳이 힘들거든요. 게다가 요즘 제가 제자들을 키우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아이들이 커서 갈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들을 위한 자리도 추후에 만들어줘야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지역과의 연대를 더 깊이 생각하는 중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저희 모토가 있습니다. '닥치고 열심히'. 그리고 우리가 살려다 보니 공유할 것이 생기고, 공유할 것이 생기니 모자란 친구들에게 우리가 나눌 게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네요."

황현순 대표가 지역에서 계속 그의 꿈을 키우기를 응원한다.


태그:#브로슨컴퍼니,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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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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