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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과 상하이에선 중국 고속 성장의 실상을 봤다. 화려하고 이색적인 마천루가 도심을 가득 채워 마치 영화 속 미래 세계 같기도 한, 그런 첨단 도시들을 좇아 쉴 새 없이 공사 중인 동네가 수두룩했다. 누군가는 이를 '발전'이라 하고 아름답다 느낄지 몰라도 내게는 답답하고 불안한 풍경이었다. 서둘러 쑤저우로 향한 이유다.

쑤저우는 상하이에서 기차로 불과 30분.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숙소가 있는 구수 지역, 고개를 젖히지 않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단출하고도 고운 전통가옥들, 그 위로 활짝 열린 하늘을 보니 모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도심 속을 흐르는 물은 마음 속 먼지를 씻겨주는 듯했다.

아름다운 쑤저우 풍경
 아름다운 쑤저우 풍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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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나흘을 쉬고 본격 도시 탐방에 나섰다. 아니 사흘째 저녁 무렵이다. 며칠째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나를 조금 의아하게 보던 숙소 직원이 근처에 무척 아름답고 유명한 장소가 있다며 산책을 권했다. 여전히 심신이 구깃구깃 바스락거리는 느낌이었지만,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고 무료하기도 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좁고 한산한 골목을 5분쯤 걸었을까. '아!' 갑자기 멈춰 서서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다. 눈 앞에 펼쳐진 전통거리 '핑장루' 때문. 직원이 말한 그 장소였다. 비현실적으로 고풍스러운데 동시에 활기차고 들은 대로 아름다웠다. 핑장루로 들어서는 아치 다리, 거기서부터 마치 시간의 문이 열린 듯, 흑백이었던 세상이 일순간 컬러로 바뀐 것 같기도 했다.

 쑤저우 핑장루 풍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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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부터다. 아침에 부러 이불 속을 파고들어도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 때문에 눈이 뜨이고 마음이 급해졌다. 밖으로 나가면 무언가에 압도된 듯, 홀린 것도 같은 기분이 되어 한참을 쏘다녔다.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내가 있는 도시 전체가 수백 수천 년 고대유산을 고스란히 품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었기 때문.

쑤저우의 역사는 250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 형성된 고성 지구가 여지껏 남아 있는데, 중국 정부는 이를 보존하기 위해 건축물 고도 제한과 주민 이동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일찌기 중국을 대표하는 무역과 행정의 요지로서 끊임 없이 흥망성쇠를 반복한 쑤저우가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는 건 천운이지 않을까.

세계문화유산 '사자림' 이정표
 세계문화유산 '사자림' 이정표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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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에선 수백 년 된 세계문화유산도 동네 편의점 만큼이나 흔하다. 주로 정원이 딸린 고택으로, 과거 쑤저우로 몰린 엄청난 부의 상징과도 같다. 첫 번째로 찾아간 '사자림'은 실제로 편의점 가는 길에 우연히 봤다. 현대 인스턴트 문화의 산물인 편의점과 700년 가까이 된 고대 건축물을 동시에 보는 일은 흔치 않다. 보고 있을 수록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1342년에 건립된 사자림의 정원은 당시 유명 화가와 조명 전문가가 설계했단다. 그리고 많은 학자와 시인들이 즐겨 찾았는데, 이후 주인이 계속 바뀌면서 돌봄과 방치가 거듭됐다고. 그러다 1917년 상하이의 큰 부자가 이를 사들여 개축한 뒤 1954년 대중에 공개했고,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세계문화유산 '사자림'
 세계문화유산 '사자림'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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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림 바로 옆에는 쑤저우에서 가장 큰 정원으로 꼽히는 또다른 세계문화유산 '졸정원'이 있다. 정원이라기보다 커다란 공원 같았다. 그 규모 만큼이나 사연도 많아 1500년께 개인 저택 용도로 지어진 뒤 절이 됐다가, 또 어느 관리가 사들여 혼자 즐기다 그 아들이 도박으로 날려 먹고, 한때는 세 등분으로 나뉘어 팔리기도 했다고. 하나로 다시 합쳐져 복원된 건 1952년.  

사자림과 졸정원이 있는 곳에서 10여 분쯤 걸으면 다시 핑장루. 이쯤에서 군것질이나 하면서 한숨 돌리고 싶지만 이제쯤 슬슬 지겨운 갈색 이정표가 또 보인다. 1997년 졸정원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된 '유원'이다. 건립 시기도 졸정원과 비슷한데 완공까지는 21년이 걸렸다고. 제2차 중일전쟁, 태평천국의 난 중에 파손되어 1954년에 정부에 의해 재건되었다.

졸정원
 졸정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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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중국식 정원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집 안에 만든 정원이 아니라 자연 가운데 집을 옮겨 놓은 듯 웅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관람을 거듭할 수록 씁쓸함이 커졌다. 결국 그것이 오랜 시간 돈과 힘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단 사실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특별 관리를 받으며 여전히 호화로운 그 저택들 주변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쑤저우에서 머문 아홉 날은 내내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떠날 때가 되자 서서히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의 쑤저우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원 가는 길목, 오랜 이웃인 듯한 노인들이 길에 나와 앉아 있다. 나무에 이은 빨랫줄엔 가난이 역력한 낡은 옷가지와 이불이 널려 있고. 그 옆으로 숱한 삶들과 함께 했을 수로에 물이 조용히 반짝이며 흐른다.

핑장루에서 유원 가는 길
 핑장루에서 유원 가는 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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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물도 흐른다.
 시간도 물도 흐른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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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행은 결국 나의 일상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오가는 여정.
고로 내 일상에선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하듯 천진하고 호기심어리게,
어딘가 멀고 낯선 곳을 여행할 땐 나와 내 삶을 아끼듯 그렇게.

지난 2016년 11월 9일부터 세 달간의 대만-중국-베트남 여행 이야기입니다.
facebook /travelforall.Myoungj



태그:#쑤저우, #SUZHOU, #세계문화유산, #중국여행,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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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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