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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시기의 지나친 사교육은 스트레스, 문제행동 등을 낳는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유아 시기의 지나친 사교육은 스트레스, 문제행동 등을 낳는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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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에선 예쁜 교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금발머리 외국인과 교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초보적인 대화지만 아이들의 영어 발음이 유창하다. 영상을 보는 학부모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빛난다. 나는 지금 영어학원 유치부의 입학 설명회에 와있다.

반일제 이상 유아대상 영어학원(아래 유아대상 영어학원)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처럼 오전부터 하루 3시간 이상 운영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이다. 흔히 '영어유치원'으로 불리지만 '유아교육기관'이 아닌 학원법의 적용을 받는 '어학원'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서울에 224곳이 있었고, 하루 평균 교습 시간은 4시간 57분(초등학교 기준 하루 7.4교시), 월 평균 교습비는 약 89만 원에 달했다.

하루 6교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반 이상은 영어 관련 수업으로 채워져 있다.
▲ 한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시간표 하루 6교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반 이상은 영어 관련 수업으로 채워져 있다.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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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빠른 속도로 심화되는 영유아 사교육의 핵으로 언급하기도 하고, 혹자는 5~7세 유아의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다고 우려하지만, 정작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내부 작동방식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나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내부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자, 유명 프랜차이즈인 P학원과 S학원, E학원의 입학 설명회를 참관했다.

가시적 학습 효과 위해 지나친 학습 부담 주기도

"여기 오신 분들 중에는 우리 아이 영어 일찍부터 가르쳐야겠다 생각하시고 나름 작정하시고 오신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아이 아직 어린데 영어를 해야 하나 고민하시면서 오신 어머님도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S학원 00점 원장

"아이들이 어머님들 생각하시는 것만큼 스트레스 받거나 힘들어하지 않아요. 되게 즐거워해요." -P학원 00점 교사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입학 설명회에서 나온 말이다. 아이의 영어 실력 향상을 기대하고 학부모들이 입학 설명회를 찾긴 하지만, 지나친 학습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가장 많이 나온 질문 역시 이런 것이었다.

"우리 아이는 알파벳도 못 쓰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아직 제자리에 몇 분 이상 앉아 있는 것도 잘 못하는데 괜찮을까요?"

학부모들은 유아대상 영어학원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되며 영어에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배우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제 유아대상 영어학원에서는 가시적인 학습 성과를 내기 위해 아이에게 지나친 학습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 프랜차이즈인 P학원의 경우 7세반(3년차) 1년 치 교재가 총 37권, 전체 면수는 4285면에 달하고 소재 역시 추수감사절의 유래, 근로기준법 등 생소하거나 추상적인 내용이 많았다. 또 방과후에도 과도한 양의 숙제와 단어 암기 등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이전 기사: 고3도 깜짝 놀란 영어 유치원 교재).

유아대상 영어학원 유아가 스트레스·문제행동이 더 높아

유아 시기의 지나친 사교육이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서 그간 여러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사교육 가짓수가 많을수록 아동의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며(홍은자 외, 2001; 박영양 외, 2004 등) 외현적 문제행동인 비행, 공격성 등과 내재적 문제행동인 위축, 신체증상, 우울 불안 등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것(권정윤, 2007; 백혜정 외, 2005 등)이다.

특히 홍현주 외(2011)는 경기도 군포시 소재 5개 초등학교의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시간 이상 사교육을 받는 아이는 우울증상을 보인 사례가 30%를 웃돌았으며, 특히 학습 관련 사교육 시간이 많은 경우 공격성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송정은 외(2010)는 사교육을 많이 받는 남아의 경우 외현적 문제행동의 빈도가 높아지며 이는 성인기에서 정신과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적절한 조기 개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아대상 영어학원에 한정한 연구 결과도 있다. 유아대상 영어학원에 다니는 유아와 시간제 영어학원에서 방과후 영어수업을 듣는 5, 7세 유아를 비교한 결과, 일상적 스트레스와 문제 행동 모두 유아대상 영어학원 유아가 높았다. 일상적 스트레스 중 좌절감 경험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졌고, 문제 행동 중에서는 내재화 문제(불안, 우울 등)가 컸다. (김형재, 2011)

소아정신과 전문의 60% "유아대상 영어학원, 발달에 부적합"

'영어유치원 10곳이 생기면 소아정신과가 1곳 생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실일까? 통계로 검증된 바는 없다. 하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70%는 "조기영어교육이 영유아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크게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로는 '낮은 영어학습 효과'가 60%, '정서 발달에 부정적'이 50%로 학습 효율성과 발달 적합성 모든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특히 조기영어교육의 유형 중 영유아 발달에 적합하지 않은 교육 형태로 유아대상 영어학원을 가장 많이(60%) 꼽았다.

설문에 응한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70%는 조기영어교육이 영유아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크게 미친다고 생각했다.
▲ ‘조기영어교육이 영유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문의 응답 설문에 응한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70%는 조기영어교육이 영유아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더 크게 미친다고 생각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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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영어교육의 유형 중 영유아 발달에 적합하지 않은 교육 형태로 유아대상 영어학원을 가장 많이(60%) 꼽았다.(복수응답)
▲ ‘조기영어교육의 유형 중 영유아 발달에 적합하지 않은 교육 유형’에 대한 전문의 응답 조기영어교육의 유형 중 영유아 발달에 적합하지 않은 교육 형태로 유아대상 영어학원을 가장 많이(60%) 꼽았다.(복수응답)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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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아대상 영어학원 등의 조기영어교육이 유아의 학습요령 터득이나 자신감 향상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조기영어교육의 효과에 대한 검증은 초등학교 3, 4학년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 관점에서의 연구가 미흡하다.

무엇보다 조기영어교육의 정서적·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가 많지 않다. 이부미 경기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정서적 문제에서 내재화 문제가 더욱 심각한데 이는 잘 드러나지 않아서 부모나 사회에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보다 장기적인 관찰을 수행하는 종단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아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신체, 정서, 사회성, 인지 등의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기 위한 전인교육이 필요한 시기이고, 누리과정에서도 기본 생활 습관과 바른 인성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시기 유아를 대상으로 과도한 학습 부담을 주는 일, 이제는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보도자료(http://cafe.daum.net/no-worry/1QDs/1186)로도 실렸습니다.



태그:#유아대상영어학원, #유아사교육, #영어유치원, #조기외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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