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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박종철 열사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아들의 30주기 추도식을 지켜보고 있다.
 13일 박종철 열사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아들의 30주기 추도식을 지켜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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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도식에서 어머니 정차순(85)씨가 아들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13일 오전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도식에서 어머니 정차순(85)씨가 아들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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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한 줌으로 변한 막내아들을 강에 뿌리며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었다. 딱 30년 전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90세 노인이 됐다. 허리는 굽었고, 귀는 잘 들리지 않는다.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해마다 열리는 아들의 추도식에 참석한다.

"밀양후인(后人) 박종철 영가(靈駕)"

서른 번째 추도식 주인공의 위패가 모셔진 경남 양산 통도사의 암자인 성전암으로 13일 오전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세월이 새겨졌지만 영정 속 박종철 열사는 여전히 20대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 박정기씨와 어머니 정차순씨는 이날도 영정을 바라보다가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30년 전 25살이었던 누나 박은숙씨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제는 동생의 또래 나이가 된 딸이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지금도 생생한 30년 전 '그날'

13일 오전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도식에서 누나 박은숙(55)씨가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다.
 13일 오전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열린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도식에서 누나 박은숙(55)씨가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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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남짓의 추도식이 끝나고 박종철 열사 가족과 마주앉았다. 아버지 박씨의 건강부터 궁금했다. 특별한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 부쩍 힘이 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30년 전 그날, 1987년 1월 14일만큼은 지금도 이 가족에게 생생한 현재였다.

"무서웠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공분실 요원들인 거 같은데 다짜고짜 집 안으로 구두를 신은 채 들어왔어요. 그리고는 기차에 태워 서울로 가는데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기차에 탔죠. 기차 안에서야 말해주더라고요. 철이가 죽었다고..."

누나 박은숙씨가 말했다. 경찰은 누구보다 건강했던 박종철이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박종철의 사인이 폭행과 각종 고문에 의한 쇼크사란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진실을 파헤치려 했던 기자, 양심을 내걸었던 의사, 정의를 포기하지 않은 성직자의 노력 끝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독재 정권은 20대 대학생의 목숨을 뺏은 것도 모자라 한 가정을 송두리째 옭아맸다. 가족 한 명당 적어도 2~3명씩의 정보과 형사들이 따라붙었다고 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도화선이 된 87년 6월 항쟁이 불붙자 온갖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 종철이가 살아 있다면..."

13일 박종철 열사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아들의 30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3일 박종철 열사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아들의 30주기 추도식이 열린 경남 양산 성전암에서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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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하고 추악한 진실은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이었던 평범한 아버지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려고 했던 길이 옳다는 걸 뒤늦게야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인생을 아들이 못 이룬 민주주의를 위해 살았다.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이끌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이날 "열 가지 중 한 가지도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다시 위기에 처한 지금의 민주주의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누나 박씨는 "87년 직선제를 따내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일구어냈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과거로 돌아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는 과거로 회귀했다"면서 "철이의 죽음이 무색하게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고 한숨 쉬었다.

아버지 박씨가 세상을 향한 바람을 덧붙였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 민주주의를 위한 거였다면 지금 살아 움직이는 국민들은 지속적인 민주주의의 염원을 위해 헌신하는 입장이라 생각한다"면서 "지속해서 움직여 나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만약 30년 전 박종철이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 않고 오늘을 맞이했다면 어땠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누나 박씨가 말했다.

"매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을 거 같아요. 타고난 성격이 그러니까요. 평생 그런 마음으로 살았을 겁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면서..."


태그:#박종철, #6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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